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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규칙은 간단해.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 소개가 끝나면 다른 친구들이 어떤 게 거짓인지 알아맞힐 거고. 그럼 나머지 네 개는 자연스레 참이 되겠지?"] (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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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작년 8월에 출간된 이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반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2월 22일 부천아트센터에서는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2025 부천의 책’ 선정을 기념하여 김애란 작가의 북토크가 진행되기도 했다. 이하의 본문은 행사 현장에서 직접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구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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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계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가 된 김애란이지만, 장편소설은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로 무려 13년 만이다. 해당 사실의 언급에 김애란 작가는 마케팅을 위해 13년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착수한 것은 3년 정도라고 밝히며 웃었다.

 

 

 

비밀로 연결되는 세 아이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각각 지우, 소리, 채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청소년이다. 열여덟에서 열아홉으로 넘어가는 겨울의 시간을 담았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지만 막역한 사이는 아닌 셋은, 부모 그리고 죽음과 관련된 상처를 비밀처럼 품고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우는 어머니의 자살 혹은 사고사 이후 새아버지와 남겨졌고, 소리는 어머니를 투병 끝에 떠나보냈으며, 채운은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다 그를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어머니는 대신 교도소에 가게 되어 이모네 집에 얹혀사는 중이다. 다소 드라마틱한 불행들의 조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부모와 삶, 죽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특히 작가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아이들은 정서의 피부가 가장 얇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못다 풀었던 청소년 이야기를 더 해보기 위함이라고도 덧붙였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인 '아름' 역시 청소년이지만 조로증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가족애에 더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청소년기의 혼란과 가족의 이면, 새로운 의미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반려동물이라는 존재


 

그 의미의 일부로 제시되는 것은 반려동물이라는 존재다. 작가는 아이들이 원가족에 머무는 것과 벗어나는 것의 중간 지점을 고민하던 중 반려동물을 떠올렸다고 답했다.

 

지우는 용식이라는 이름의 도마뱀, 채운은 뭉치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키운다. 각각 인간에게 가장 낯선 동물과 가장 친숙한 동물로 설정해 대비를 주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소설에는 용식과 뭉치에 대한 언급이 많으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어떤 한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존재들로 묘사된다. 가장 사랑받아야 할 가족의 울타리가 부재하게 되었지만, 아이들이 그 밖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또, 서사적인 역할로는 세 인물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소리는 유일하게 동물 대신 일종의 초능력이 있다. 손을 잡았을 때 눈앞이 흐려지면 상대방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들어있는 한 스푼의 환상은 언제나 반가운 법이다.

 

소리는 이 능력과 용식, 뭉치를 매개로 지우, 채운과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소리와 지우, 채운을 몸통과 날개 같은 이미지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야기의 가치


 

"공들여 거짓말을 하는 일. 제 직업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에요." 김애란 작가의 한마디가 청중을 웃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문학작가, 그리고 세상의 모든 창작자는 공들여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반려동물 외에도 아이들의 또 다른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 역시 '이야기'다. 지우는 만화를 그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하고 있고, 소리와 채운은 그 독자들이다.

 

만화가 아이들에게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는, 직접 말했을 때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 훼손되는 부분이 적은 어떤 마음'. '손끝에서 무언가 새로 태어나는 듯한, 비록 큰 변화는 아니나 이따금 가슴에 바람이 불고 볕이 드는 기분. 운이 좋다면 상대의 마음에도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미풍'.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는 것은 가장 인간답고 생명력 있는 행위다. 이는 창작자 본인에게도, 향유자에게도 위로이자 치유가 되어주곤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 가치는 고스란히 전달되며 서로를 이어지게 해주었다.

 

 


세 아이의 결말


 

그들은 일련의 사건들 이후 각기 자신만의 결말을 맞는다.

 

소리는 엄마의 무덤에 손을 대며 인사하고, 또 비로소 아빠의 손을 잡고 돌아간다.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마다 자꾸만 세상이 흐리게 보이던 것은 허물을 벗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부분은 간직하며 소리는 여전히 자신인 채로 커나갈 것이다.

 

채운은 지우가 새롭게 올린 만화를 통해 자신이 오래 억눌러온 감정과 사실을 마주한다. 작가는 채운의 곁에만 어른이 없기도 하고, 사건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채운이 직접 사건 속으로 들어간 경우라 가장 마음이 쓰인다며 응원의 뜻을 표했다.

 

크게 방황하던 지우는 새아버지인 선호 아저씨와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의 안정과 행복으로 끝나는 보통의 이야기들과 달리, 이 소설은 대단하지 않지만 분명한 변화와 함께 끝난다. 무언가가 되지 않은 채 돌아가도 괜찮다는 결말은 현대인들에게도 다정한 메시지로 와닿는다.


 

삶은 가차 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작품의 지향점은 작가의 말에서도 인상적인 문장으로 다시금 강조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은 지우, 소리, 채운처럼, '다 잘될 거야'가 아닌 '잘되지 않아도 괜찮아'를 기억하는 봄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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