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보고 나온 영화가 얼마나 좋았고 싫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돈하여 글로 쓰고, 그 글을 어디엔가 올린다. 혹은 그냥 나만 볼 수 있는 수첩에 적어두거나.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경험하곤 이에 대해 한참을 떠들기도 하지만 영화와 관련한 경험들은 꽤 자주, 나와의 독대를 통해 이루어지곤 했다.
그 과정에서 지루함을 느꼈던 것인지, 혹은 지난 오프라인 모임에서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호기롭게 4개월간의 취미 모임을 약속했다.
나 또한 아트인사이트의 일원이지만, 이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존경이 있다. 저마다의 바쁜 일상 에서도 꾸준히 무언가를 느끼고 이를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런 점에서 참 성실하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집단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새로운 만남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이 정기적인 모임을 약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기서 활동하는 누군가에 대한, 일종의 믿음 덕분이었다.
첫 모임은 10월의 홍대에서 진행되었다. 마침 상영하던 <청설>을 같이 봤다.
우리는 마침 세 명이었으며, 마침 여자 둘 남자 하나였고, 마침 또래였다. 의도했던 영화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랬다. 상영관에 나란히 앉아 짧은 통성명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이 절묘한 우연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곤 속으로 조금 웃었다.
영화가 끝나고 들어간 식당도 마침, 다찌 석만이 남아있었다. 연남동의 한 식당에 아까처럼 나란히 앉아 잘못 나온 메뉴를 먹으며, 또 이 우연한 구조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날은 서로를 알아가는 첫 만남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들을 나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오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절묘한 우연이 만든 유대가 있었는지, 이야기는 잘 흘러갔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 계획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인 것이, 두 번째 모임을 가지기 전 허리를 삐끗했다. 그토록 기대했던 <서브스턴스>를 보기 하루 전이었다.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두 번째 모임엔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고, 기대했던 영화는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심지어 한동안 나는 영화관에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세 번째 만남은 온라인 미팅으로 진행되었다(두 분의 너른 양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과 픽사의 영화들, 현재 상영 중인 한국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들, 영화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들을 통화하듯 나눴던 세 번째 만남은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던 대화들이었다.
결국 2월, 마지막 만남은 다행히 신촌의 영화관에서 이뤄졌다. 한동안 부상과 그에 잇따른 우울 때문에 힘들어하던 차에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디렉터스 컷>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이 영화의 주인공 로이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인물이다. 우연 참 절묘하다, 절묘해. 10월의 홍대에서 들었던 생각은 2월의 신촌에서 반복되었다. 와 닿는 영화를 보고, 참 좋은 영화였다면서 짧은 소회를 남기고, 늦은 밤 급히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 몇 개월을 회고해보니, 그 절묘한 우연들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흥미롭기도, 애석하기도 했던 그 우연들.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로 인해 혼란했던 4개월,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준 두 분께는 여전히 죄송함과 고마움이 남아있다. 미처 보지 못한 <서브스턴스>는 꼭 보기로 약속했으니, 난 이를 핑계로 조만간 영화관에 한 번 더 방문하기로 한다.
한 달에 한 번, 그 짧았던 만남이 그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