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
언젠가 친구에게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는 생각을 좀 해보겠다며 답변을 미루었죠. 시간을 두고 다시 찾아가 무엇이 문제냐고 물으니, 친구는 저의 예상보다 많은 이유로 전시 관람을 고민하고 있던 참이더군요. 우선 당연하게도 그림을 잘 아는 편이 아니니, 그림을 한 번 보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냐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인 듯했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그림을 관람하는 것 만이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림을 보러 가기까지의 수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전시회가 규모 있는 대도시에서 집중적으로 열리는 편이라, 소도시에 사는 저의 친구로서는 전시회를 보러 오기까지 편도로만 대략 2시간을 지하철과 버스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에 수반되는 교통비도 적다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루 날을 잡아 몇 시간 동안 그림을 보고 오는 것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름답고 예쁜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하겠지만, 어차피 전시장에서 나오면 그 감정도 모두 흩어져버리는 것 아니냐고요. 친구의 입장에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일례로 저의 친구의 경우를 들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그림과 친해지기 어려워하지요. 사실 저도 친구의 앞에서는 전시회를 아주 좋아하는 척했지만, 실은 전시회를 보고 나서 늘 아쉽게 여긴 점이 하나 있었어요. 우습지만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림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오래 자리를 잡고 서 있는 편인데, 전시회 중간에 앉아서 잠시 쉴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처음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도 뒤따랐지요.
이러한 아쉬움을 보완해줄 방법이 없을까 궁금해집니다. 적당한 설명과 그림을 함께 살피며 나의 속도대로 천천히, 또한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법은 없을까요? 휴일과 주말 하루하루가 아쉬운 우리가, 조금 더 일상에서 그림의 기쁨을 마주할 수는 없을까요? 이러한 고민들을 품고 있던 어느 날, 저는 대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술 전시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책, <화가들의 꽃>입니다.
앉아서 미술관 거닐기, <화가들의 꽃>
이 책은 일반적으로 그림을 주제로 하는 책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대개의 미술책을 떠올려보면, 미술에 해박한 전문가들이 등장해 화가의 일생, 그림의 화풍과 특징을 세세히 설명해 주곤 하지요. 그런 책들을 읽으면 그림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 좋지만, 그림을 살피는 것보다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기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그림의 크기가 크지 않아 아쉬울 때가 있지요.
반면 <화가들의 꽃>은 지식의 전달보다 독자 개인의 그림 관람에 초점을 둔 책입니다. 대략 25명의 화가의 이야기와 108가지의 꽃 그림이 담겨있는 이 책에서는 절대적으로 그림이 우세합니다. 그림과 화가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내용만 압축적으로 담아 글자의 분량이 많지 않은 대신, 더 많은 그림을 인쇄하는데 나머지 페이지를 할애했지요. 특히 인상적인 점은 각각의 그림이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울 정도의 커다란 크기로 인쇄되어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미술관에서 거대한 그림 앞에 가까이 섰을 때의, 그림의 크기에 압도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또한 이렇게 그림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구성의 책은, 마지 독자로 하여금 직접 걸음을 옮기며 전시회를 구경하는 것과 같은 감각을 상기시키는데요. 이 책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25명의 화가를 기준으로 챕터가 구분되고, 각 챕터는 화가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과 그림 몇 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중간중간 화가들이 꽃과 예술에 대해 남긴 명언이 적힌 페이지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전시회를 거닐다 화가의 명언이 쓰인 벽면을 마주한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시회에서도 관객이 그림을 보며 자기만의 관람 경험을 만드는 데 초점을 준 듯이, <화가들의 꽃>의 특징적 내용 구성도 유사한 경험을 선사해줍니다.
동시에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다 보니 누군가의 방해나 몸의 피로감도 없이, 저만의 속도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요. 제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그림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니. 만약 실제로 전시회를 방문하는 것이 실습이고, 그림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이 이론서라면, 위와 같은 점에서 <화가들의 꽃>은 마치 그림 전시를 나만의 방식대로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실습서(實習+書) 같다고 느끼기도 했답니다.
그림이 주는 기쁨을 일상으로
이 글을 작성하며 책상에 꽂힌 책을 살펴보니, <화가들의 꽃>을 비롯해 대부분의 책이 그림, 예술에 관한 책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림을 잘 안다거나 예술과 친하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어째서 저는 그림에 관한 책을 가까이 두는지 이상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독서 중에 적어둔 메모를 다시금 살펴보았습니다. 책 위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메모지 가운데 저의 마음을 깊게 건드린 것이 있었습니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노란 튤립>이라는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에 꽂힌 것이었지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분명한 행복을 느끼다니 이상한 일이다’라고 저는 적었습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며 행복하다거나 기쁘다는 감정을 느꼈던 경험이요. 화가들이 온갖 시련을 겪으며 꽃을 피우듯 그려낸 꽃 그림을 보며, 저는 너무나 분명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앙리 마티스의 <창가의 사프라노 장미>가 그랬고,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가 그러했습니다.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은 생경하지만 분명합니다. 많은 설명이나 잡다한 표현 없이, 단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이유 모를 기쁨을 샘솟게 합니다. 꽃이란 너무나 아름다워서 행복하고, 그 꽃에 둘러싸인 그림 속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여 기쁩니다. 그리고 이내, 그러한 꽃과 사람과 예술이 있는 우리의 삶이란 것이 사실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림과 예술이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으로 시선을 되돌리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저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습니다. 화단의 꽃을 무심코 밟듯, 우리도 피로와 짜증에 하루하루를 낭비하지만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또 다른 시선으로 보면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과 겸손을 책 표지를 볼 때마다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일상을 영위해 나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일 해야 할 일, 책임과 의무의 부담감으로 하루가 빠듯하니 예술을 즐기는 일에는 다소 소홀해지기 마련이지요. 더군다나 ‘예술의 아름다움’이라는 엄숙한 그 단어는 참으로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림과는 거리가 멀고, 매일을 아등바등 사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저의 책장 한 편에는 <화가들의 꽃>이, 그리고 예술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행복이 놓여있습니다. 그 책은 펼치기만 하면 저에게 너무나 분명한 행복을 선사해 주지요. 예술의 아름다움에 익숙하지 않은 당신에게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노란 책 한 권이 선사하는 분명한 행복이 찾아가기를, 나아가 예술의 즐거움을 알려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