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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오브 더 자칼>은 1960년대 샤를 드골 대통령 암살을 의뢰받은 살인청부업자 자칼의 이야기를 담은 원작 소설 <자칼의 날>을 현대식으로 재해석 한 드라마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로만 두 번 제작됐는데 드라마로 한 번 더 만들어질 만큼의 매력이 뭘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1편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각본이라도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받쳐주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는데 <데이 오브 더 자칼>은 좋은 각본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 거기에 찰떡같은 음악 선정 모두 어우러진 드라마였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서 맡았던 어리숙하고 내성적인 뉴트 스캐맨더 이미지와 어딘가 불안하고 유약한 역할을 주로 맡던 에디 레드메인이 첩보물 주연으로 나오는 <데이 오브 더 자칼>. 영화 내용상 액션 비스무리한 건 나왔다쳐도, 이렇게 대놓고 액션 첩보 장르에 나오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신기했다.
오리지널 드라마인 줄 알고 검색해 보다가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충 줄거리를 읽어보니 설정만 따온 수준이라 다른 작품으로 봐도 될 것 같았다. 원작의 자칼을 쫓는 형사 루베르는 없어지고 비앙카라는 캐릭터가 생겼으며, 가족 없이 홀로 생활하던 자칼에게는 가족이 생겼다. 비앙카라는 캐릭터를 추가한 건 납득이 갔다. 하지만 자칼에게 왜 가정이 있다는 설정을 추가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반적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정은 짐만 될 뿐이다? 직업(살인청부업을 직업이라고 하기 뭐 하지만)과 일상과의 간극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추가한 설정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에게는 왜 굳이 저런 설정을 추가했을까, 사이코패스 기질 다분한 살인청부업자가 계속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건 가정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그럼 살인청부업자에게 제거당한 타깃들은 가정이 없나?라는 의문만 줬다.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인 비앙카는 총기 마니아에 워커홀릭,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은 보통 마초 형사 캐릭터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여성 캐릭터에게 준 게 흥미로웠다. 초반에 자칼이 타깃을 암살했을 때 사용한 총을 제작한 인물인 노먼의 정보를 얻기 위해 심장병이 있었던 정보원의 딸을 구금해 죽게 만들고 언젠간 이렇게 될 거였다고 말한 건 좀 헉스럽긴 했다.
그래서인지 따지고 보면 정부 직속으로 일하며 정재계 주요 인물에게 위협이 되는 자칼을 잡으려는 선 역할인 비앙카를 응원해야 하는 게 맞는데,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자칼을 응원하게 됐다. 자칼이 드라마 내내 고전했던 타깃을 제거했을 때는 그러면 안 되지만,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칼은 운도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도 그럴게 어떤 기간 내에 암살을 완료해달라는 의뢰를 받아도 그날 풍속, 타깃의 움직임 등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데 자칼은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의뢰를 해결한다. 미래를 향해 총을 쏜다는 제목도 은퇴한 저격수가 자칼이 타깃과 3,815m 떨어진 위치에서 정확히 머리를 맞춰 죽인 것을 듣고 한 말이 인상 깊어 가지고 왔다.
자칼이 어떤 계기로 살인청부업자의 길을 걷게 됐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청부업자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라크 파병 때 처음 살인청부를 의뢰받고 큰 보수를 얻자 본격적으로 살인청부업자로 신분 세탁을 하기 위해 당시 함께 살인청부를 의뢰받았던 동료를 제외한 부대원들을 폭발물로 죽인다. 보통 파병 군인을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대부분 PTSD에 시달려 힘들어하는 연기가 나오던데, 자칼은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꽤 긴 시간 함께 했을 동료들을 죽이고도 조금의 죄책감, 미안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타깃을 제거하기 위해 최소한의 사람만 죽인다거나 하는 것 없이 관련 없는 사람들을 꽤 많이 죽인다는 게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놀랐던 건 타깃이 출시 발표를 하는 에스토니아 탈린의 콘서트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을 들어가기 위해 직원에게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번호를 교환하고 원나잇까지 한다. 원나잇이라고 하기에는 꽤 정이 들었을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 직원까지 죽인다. 죽인 방법이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졌던 게 에스토니아를 떠난 줄 알았던 자칼을 다시 홀에서 보고 아는 척을 했더니 자칼이 볼을 감싸길래 오 그래도 정이 있다고 키스라도 하려나 했는데 목을 꺾어 죽였다. 살인청부업자인 걸 아는데도 이제 사람 좀 그만 죽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살인청부업자라는 역할이라는 게 잘 살리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는데 조금이라도 연기가 과해지면 오글거리게 된다. 에디 레드메인은 이런 역할도 역시나 잘 소화했다. 원래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 걸로 아는데 배역을 위해 근육을 키운 것 같았다. 탈의 장면에서는 근육이 꽤 있는데 또 옷을 입으면 내가 아는 마른 체형이 돼서 항상 예민함을 유지해야 하는 살인청부업자라는 역할과 잘 맞았다.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다행히 시즌 2 제작은 확정이라고. 드라마 중후반부에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는 몽타주를 보고 자칼의 주변 인물들과 자칼과 한 번쯤 스쳤던 사람들이 찰떡같이 알아보는, 내 기준 유일한 옥에 티 말고는 첩보물 클리셰도 있고 예상 밖의 전개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세련된 첩보물을 찾고 있다면 <데이 오브 더 자칼>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