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어떤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세 달이 되어 간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 일을 시작할 때면 하기 싫다는 생각과 집을 나설 때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 수 없이 들지만, 결국은 해야 하는 일이고, 정해진 시간도 머물러 있다 보면 흘러간다. 대개의 일이 그렇듯 그 일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을 만난다. 오랜 시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이나 내게 대하는 행동들이 때때로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최근에는 어떤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분은 일 관련해서 알게 된 분은 아니다. 일 때문에 이동하던 중 잠시 무엇인가를 도와달라고 하신 분이었다. 그분이 도움을 요청한 건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보내야 하는데 휴대폰 키보드를 입력하는 방법을 모르셔서 그것을 대신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 그분을 도와드렸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그 어르신을 일을 하다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른 일로 그곳에 오신 것이었다. 나는 몰랐는데 그분이 먼저 나를 알아보시고 아는 척을 해오셨다. 그후로도 그분은 그곳에 올 때마다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가시거나 가벼운 간식거리를 주고 가신다.
별 거 아닌가 싶은 이 일이 나에게는 자꾸 나를 웃음 짓게 만드는 일 중 하나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최근에 각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약간의 부정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이것 또한 예민한 반응이라 한다면 할 말 없는 일이기는 한데, 함께 일하는 사람 중 하나가 작은 실수를 했다. 따지면 실수도 아니다. 주어진 만큼 일을 했을 뿐이고, 최근에 일을 시작하며 그 일을 잘 알지 못해 명령된 다섯 가지의 일만 한 거다.
그런데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그에게 왜 그 이상의 일을 하지 않았냐,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한다 등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사유를 들으며 꾸중한 것이다. 이 일을 비롯해서 일을 하며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안 좋은 일이 몇몇 있었다. 적응하던 시기라고 손 치더라도 각자 사람과 사람인데, 왜 누구는 누구를 존중하지 않는가 같은 생각을 최근에 몇 차례 했었다.
때문에 그 어르신의 모습은 내게는 더 없이 따듯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내가 먼저 도움을 드린 것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분이 계속해서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친절은 엄연히 그분의 의지일 것이다. 그분의 친절은 나로 하여금 그 하루 전체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시기도 한다.
그분을 보면서 나도 그러한 점을 배우고 싶어졌다. 받은 선행을 베푸는 것도 베푸는 것인데,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대한다는 것. 그분은 나에게 간혹 행복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씀해 주신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 그게 지속되지 않는 관계라고 해도 순간의 행복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작 내가 뭐라고 그러냐 싶을 수도 있겠다만, 작은 친절이나 아무 생각 없이 호소해 버린 악의가 누군가의 하루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사람의 모든 일은 결국 나와 남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상 한다. 고립되어 있다고 해도 나는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든, 나의 머리로든 누군가를 보거나 생각한다. 결국 나에게서 타인을 끊어낼 수 없는 지점에 나는 서 있다. 그렇다면 보다 좋은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아주 어린 시절 한때는 나에게 안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갚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선행도, 친절도, 그게 아닌 작은 좋은 마음도 결국은 좋게 흘러간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