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5년 2월 중순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는 단연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다. 지난 2019년 개봉한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쾌거를 거둔 뒤 첫 신작인 만큼,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국내외 많은 이들이 기대를 보이고 있다.
봉준호는 언제부터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을까?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까지 봉준호의 장편 연출작은 총 8편이다. 순서대로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미키 17>이다. 모두 제목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그중 생소하게 다가오는 한 작품이 있다. 바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다.
<플란다스의 개>는 2000년도에 개봉했으며, 당시 10만여 명의 관객수를 기록해 흥행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봉준호가 보여온 모든 시선과 색깔이 이 작은 규모의 영화에 이미 다 녹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 역시 "봉준호는 시작부터 빛났다."라는 한줄평을 남기기도 한, 이 오래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첫 번째 개, 여자아이의 시츄
영화에서는 총 3마리의 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첫 번째는 주인공 윤주(이성재)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여자아이의 시츄다.
윤주는 시간강사인 자신의 처지 탓인지, 아파트에 울려퍼지는 개 짖는 소리에 크게 신경질을 낸다. 어느 날은 급기야 복도를 돌아다니던 시츄를 붙잡아 옥상에서 죽이려 하다가, 무를 말리는 할머니 때문에 실패하고 지하실에 가두어놓는다.
또 다른 주인공 현남(배두나)은 관리사무소 직원이다. 현남을 찾아온 여자아이는 아파트 게시판에 붙일 전단지라며 허가 도장을 찍어달라고 말한다. 전단지에 있는 것은 윤주가 잡아 가둔 시츄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실 그 시츄는 성대수술을 받아 짖지 못하는 강아지였다.
아파트에서는 계속해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며, 윤주는 그제야 시츄가 아니었음을 알고 지하실로 달려가 상황을 엿본다. 하지만 시츄는 이미 경비원(변희봉)이 보신탕으로 끓여 먹고 있었다. 관리소 주임에게 천연덕스럽게 그것을 숨기며 미소 짓는 경비원은 이 영화의 첫 번째 풍자의 대상이 된다.
두 번째 개, 할머니의 치와와
윤주는 자신을 괴롭히던 소리가 옥상 할머니의 치와와가 내는 소리였음을 깨닫는다. 그는 할머니를 따돌리고 치와와를 납치해 이번에는 정말로 옥상에서 던져 죽인다.
현남은 건너편 옥상에 있다가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했고, 윤주의 얼굴까지는 보지 못한 채 그를 추격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경비원에게 치와와 사체를 묻어줄 것을 부탁하고 할머니를 도우러 떠나는데, 경비원은 기뻐하며 이 치와와도 보신탕으로 끓여 먹는다.
일말의 죄책감 없이 계속해서 위선과 악행을 저지르는 경비원을 다시 강조하는 한편, 이번에는 윤주에게도 더욱 경악하게 된다.
윤주가 치와와를 던지기 전 망설이는 모습은 그의 현실 속 상황과도 맞물린다. 그는 1500만 원을 학장에게 주면 교수로 임용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를 죽이고 마는 행위는 윤주가 자신의 양심을 이중적으로 저버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세 번째 개, 윤주의 푸들
세 번째 개는 윤주의 아내가 사온 푸들 '순자'다. 자신의 퇴직금으로 윤주에게 줄 1500만 원을 마련하고 남는 돈으로 산 것이었다.
윤주는 그것을 매우 싫어하며 억지로 산책시키다가 개를 잃어버리는데, 그 이후엔 다시 애타게 푸들을 찾아나선다. 이는 여전히 양심을 두고 갈등하는 윤주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타인의 개는 죽여버리지만, 자신의 개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주를 돕던 현남은 푸들을 잡아먹으려던 노숙자 최씨를 발견해 붙잡고, 윤주에게 개를 무사히 돌려주게 된다.
노숙자가 현남에게 "아가씨 개야? 아니면 반반 나눠먹자."라고 제안하거나 구치소에 가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말하는 모습 등을 통해, 영화는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조명한다. 그는 경비원처럼 위선적이지는 않으나, 마찬가지로 도덕 관념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
끝으로 다시 되새겨보는 제목 <플란다스의 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만화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만화 <플란다스의 개>는 잘 알려져있듯, 서로를 아끼며 선하게 살아온 소년 네로와 개 파트라슈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는 내용이다.
반면 같은 제목을 사용한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는 선하지 않은 주인공 윤주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인물의 실상을 현남이 끝까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다가간다. 윤주는 정말 교수가 되고, 현남은 노숙자를 잡는 과정에서 난동을 피운 탓에 해고되는 결말이 그 효과를 더한다.
현남을 통해 '선한 사람의 비극'이라는 기존 <플란다스의 개>의 모티프를 유지하면서도, '악한 사람의 희극'이라는 새로운 스토리 라인을 더해 한층 풍성한 영화를 선보인 것이다.
봉준호의 기반
이처럼 윤주, 경비원, 노숙자에게서 각각 모순, 위선, 부도덕을 미묘하게 결을 달리하며 비판해내는 솜씨는 봉준호가 '풍자의 대가'로 불리는 기반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비인간과 인간을 대조하는 주제의식은 <옥자>, 진실을 추격하는 형식과 관객을 응시하는 엔딩은 <살인의 추억>과 <마더>, 옥상, 복도, 지하실에 이르기까지 아파트의 수직·수평적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설국열차>와 <기생충>을 연상하게 한다.
이는 그만큼 감독의 영화적 시선과 색깔이 처음부터 확고하게 쌓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미키 17>에서는 그것이 또 어떤 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되었는지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