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물품이 가득한 필자의 책상이다>
뉴트로. 'retro'에 'new'라는 단어를 붙인 말로서, 옛 유행의 요소들이 되살아나 다시 유행하게 되는 복고 현상을 뜻하는 말. 이런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현재 대한민국의 복고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른 디카, 캠코더, 빈티지 의류 등등 또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Y2K의 감성을 통해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NJZ(구 뉴진스)는 케이팝 산업의 '게임 체인저'라는 수식을 받기도 했다. 현재 이십 대 초반인 필자는 이런 레트로 빈티지 물품을 지금으로부터 약 육 년 전인 고등학생 때부터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은 카세트테이프였다.
소위 '홍대 병' 이라고 하던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 혹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실현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통칭이. 뉴트로 현상으로 현재에는 카세트테이프를 모으는 사람이 늘었으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철 지난 물품' 혹은 '낯설고 어려운 물품'이란 인식이 박혀 있었다. 홍대 병 말기였던 필자는 '핀터레스트'라는 사진 아카이빙 서비스에서 보게 된 카세트테이프 사진에 반하게 되고, '수집'을 해보겠단 다짐까지 하게 된다. 어릴 적 '튼튼 영어'라고 쓰인 카세트테이프를 들었던 경험이 떠오른 필자는 집안을 꼼꼼히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서랍의 입을 벌려도 카세트테이프를 찾아낼 순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 카세트테이프를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고, 열심히 서치를 한 끝에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유저들이 모인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사람들'. 줄여서 '카,듣,사'. 카페를 발견한 그 날 필자는 바로 가입 신청을 눌렀다.
카세트테이프는 참 요상한 물품이었다. 얇고 긴 테이프 릴에 음악이 담기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얇은 테이프 줄과 다르게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깊기 때문이었다. 오류로 인해 지지직거리는 음질과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줄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먹먹한 음악까지.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짙은 향수를, 그 시절에 영영 도달하지 못하는 세대의 이들에게는 신선함을 선사하는 빈티지 물품들은 포근한 보랏빛 향기가 나는 듯했다. 또한 카세트테이프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생겼지만, 어느 제조사의 것인지, 음악을 녹음할 수 있는 길이가 어떠한지, 그리고 음악을 담는 릴의 질이 어떠한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곤 한다. 가입한 '카듣사' 카페의 회원들도 이런 카세트테이프와 비슷했다. 둥그런 모양의 프로필을 가진 회원들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했고,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정독하며 그들이 만들어낸 하모니를 즐겼다.
평화롭게 카페 활동을 하던 어느 날, 피드에 '예술 고등학교에 떨어졌는데 카세트 플레이어 나눔이 가능할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떴다. 흥미가 생기는 제목에 필자는 글을 보자마자 클릭했다. 글을 작성한 것은 몇 분 전에 카페에 가입한 신입 회원이었다. 해당 회원은 예고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가 카세트플레이어, 일명 '워크맨'을 던져 부셨으나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듣고 싶어 카페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또한 테이프를 들으며 아픔을 치유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워크맨을 구매하지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 많고 착한 회원분들은 그 글을 보고 신입 회원에게 플레이어를 나눔했다. 필자 또한 동생을 챙겨주는 마음으로 신입 회원에게 직접 만든 자작 테이프를 택배로 보내주곤 했다.
첫 등장부터 화려했던 그녀는 요란한 카페 생활을 이어갔다. 나눔 글에만 댓글을 다는 것도 모자라 카페에 올라온 게시물의 물건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나눠달라고 요구하는 댓글을 끊임없이 작성했던 것이다. 카페 내 나눔 문화가 활성화돼 있었고, 이 정도의 행동은 조금 염치없어 보이지만 어린 마음에 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었다. 회원들의 지적에도 비매너적 활동이 지속되자, 몇몇 회원들이 그녀의 행태를 저지하기 시작했다. 비판의 물결이 거세졌고 그녀는 '앞으로는 카페에 절대 들어오지 않겠다'는 글만 남긴 채 돌연 카페를 탈퇴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아이디를 통해 나눔 글에 댓글을 달았다. 아이디는 달라졌으나 기존에 남긴 글과 댓글이 그대로 살아있기에 목덜미가 잡힌 것이었다. 그녀의 화려한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전 문구 물품을 모으는 타 카페에서 300만원 정도 사기를 쳤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초등학교 육 학년. 그녀와 SNS를 공유하고 자주 채팅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물품을 나눠주던 필자에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카페 회원들은 모든 사태를 파악 후 분개했다. 하지만 동시에 침착했다. 그녀가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요목 조목 짚어 알려주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다행히 그녀는 회원들의 글과 댓글을 정독하며 자신의 잘못을 파악하였고, 깊이 반성했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그녀는 이제 사기도 치지 않고 조용히 잘 살고 있다 한다. 무작정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그녀가 반성할 기회를 제공한 카페 회원들의 현명한 선택이 조금 과장해 그녀를 회개시킨 것이다.
낡은 물건은 변함없단 말이 있다. 필자 또한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특히 카세트테이프를 녹음하는 기계인 '데크'가 더더욱 그렇다. 변수가 많은 현대 기기와 달리 녹음이 끝날 때까지, 음원보다 조금은 느린 테이프 릴이 소리를 다 머금을 수 있을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준다. 이게 바로 연륜의 멋이 아닐까 싶다. 일련의 사건이 있고 난 뒤 주춤할 줄 알았던 카페의 나눔 문화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예전과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카페에 가입 한, 카세트테이프를 녹음하는 데크같은 마음씨를 가진 회원들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테이프를 녹음하는 데크와 다르게 카세트테이프는 변수가 많다. 음원이 씹히지 않도록 노래를 다 듣고 나면 테이프 릴을 잘 감아주어야 하고, 설정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음이 늘어지거나 빨라지기도 한다. 카페 회원들의 대처가 있기 전, 배신감을 준 그녀를 용서하지 못했던 필자는 어리숙한 카세트테이프 같았을 것이다. 작은 일에 쉽게 타격을 받는 지금 또한 카세트테이프 같은 사람이고.
하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이 언젠가 레트로 물품의 하나가 될 때쯤에는 카세트테이프처럼 미성숙한 아이들을 너그러이 품어줄 줄 아는 '데크'같은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데크에서 갓 구워진 카세트테이프는 언제나 따뜻했으니 말이다. 이번 봄날에는 따스한 보랏빛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며, 데크처럼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