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세상을 바꾸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인해 희생, 영광, 무기력, 삶을 경험한다.
그들은 사진기자이다.
퓰리처상은 다른 모든 상이 그렇듯 상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퓰리처상이 특별한 이유는 상 속에 수상자의 삶뿐만 아니라, 수상자가 새롭게 만든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같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본 전시는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전시가 아니다. 퓰리처상이라는 상의 가치를 자랑하는 전시도 아니다. 본 전시는 우리가 어떤 역사를 지나왔고, 어떤 역사를 지나가려 하는지를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해 내는 전시이다.
지구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살아가는 우리로서, 우리는 모두 퓰리처상 전시를 봐야 한다는 과감한 말을 얹고 싶다. 그래야 지구에 살아가는 우리가 확실한 길은 아니더라도 잘 못 된 길을 걸음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전시장에 의문이 들었었다.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전시장에서 사진촬영을 금지한다는 건 조금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이런 의문은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사진기자가 하나의 사진을 찍는 데에는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그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상이다. 세기도 어려운 사진 기자의 삶 하나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셔터 누르는 시간을 만든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들의 삶이 담긴 사진을 감히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함부로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사진이 그냥 사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나아가는 길과 역사로서 남은 사진들을 찍기 위해 사진기사가 온 마음을 담아 찍은 사진을 나의 모든 마음을 바쳐 이해하고 싶어졌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그런지 전시장은 매우 조용했다 사진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함 참을 서있었고, 간혹 가다 나처럼 메모장의 무언가를 열심히 써 내려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이나 메모장 내용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사진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림을 느끼고, 이때의 감정과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바삐 나의 감정을 오타 가득한 문자로 옮겼다.
[필라델피아의 노숙자 – 톰 그랄리쉬] - 모든 사진이 나의 마음을 울리고 배움을 알려주었지만,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사진은 [필라델피아의 노숙자 – 톰 그랄리쉬]였다.
비가 오는 거리, 박스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노숙자는 나에게는 흔한 모습,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동안 노숙자를 보면 멀리 길을 돌아가거나 모른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걸어왔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나에게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는 이들에게 나 혼자 무례한 불편을 나타내고 있던 것이다.
사진을 찍은 톰 그랄리쉬는 “노숙자들은 사회와 규범을 경멸하죠, 그래서 노숙자가 수용시설을 싫어하는 거예요. 그들은 스스로를 마지막 자유인이라 여깁니다”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마지막 자유인’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쿵’이라는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내가 행복을 추구하듯 그들도 그들의 자유라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사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 – 케빈 카터] - 가장 마음이 아파지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독수리에게 시선을 받고 있는 소녀때문에도 마음이 아프지만, 이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의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문드러져갔다.
본인의 삶을 희생하여, 수단이라는 나라를 세상에 알리고, 무기력에 빠진 케빈 카터.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직업을 잘 모르면서 너무 많은 말을 얹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그 이야기의 선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단점만 보기보단, 장점을 보고. 장점만 보기보단 통합적인 상황을 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상이든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에 다시 한번 빛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캐롤 구지가 이야기 한 말이다.
우리가 퓰리처상 전시를 보고 느껴야 할 것은. 단순히 단면적인 사회 문제, 세계 전쟁 문제등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와 더불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런 세상을 알게 해 주는 이들을 기억하고 존중할 수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