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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니, 마지막이 될 수 없다.


기원전 12세기와 현재 2025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인간은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은 전쟁에 아파하고, 인간은 전쟁의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다.


연극 <일리아드>는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명의 배우가 ‘나레이터’로 등장해 전쟁의 서술자와 전쟁의 주인공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해준다. 나레이터가 여러 인물을 넘나드는 특성을 지닌 것처럼 전쟁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태도도 이중적이다.


연극 <일리아드>는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광기를 보여준다. 전쟁 때문에 꿈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잔인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음악을 좋아하던 17세 소년,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간 20세 소년 등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하게 한다. 한편으로, 전쟁의 쾌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갔을 때,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사람들을 죽인다. 이것 또한 진실이다. 전쟁은 너무나 참혹하고 두려운 것이지만 인간이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연극은 이러한 이중성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연극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나레이터가 전해주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기서, 노래를 부르는 나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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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나 여기


나레이터는 언제나 여기에 머무르는 존재로 보여진다. 이 연극은 이 사실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과 끝나고 난 뒤 배우는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나레이터는 무대에 머무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나레이터 옆에는 작은 카트가 놓여져 있다. 처음엔 저 카트 안에 있는 물건들이 공연 내내 어떻게 쓰일지 궁금했는데, 막상 공연 동안 쓰는 소품은 별로 없었다. 아마 저 카트에는 나레이터의 생필품이 들어있을 것이다. 연극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끝나고 난 후 이곳에서 이어질 나레이터의 삶에서 쓰일 소품이다. 나레이터가 살아갈 삶의 여백을 주는 듯한 연출이 인상 깊었다.

 

 

2) 나레이터는 나레이터야


나레이터는 나레이터이다. 배우가 모든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 연극이 진행될수록 배우가 어떠한 인물에 몰입해버릴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절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게 한다. 공연은 조명을 통해, 나레이터가 어느 한 인물에 몰입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나레이터가 인물에게 가까이 가는 몰입의 시간과 해제의 시간이 있다. 나레이터가 인물에 과하게 몰입되어 있으면, 연출은 조명을 이용해 배우가 몰입에서 해제로 나아갈 것을 알려준다. 그것은 하얀 핀 조명으로 나타난다. 하얀 핀 조명이 배우의 머리 혹은 눈을 비추면, 나레이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기하고 다시 나레이터로 돌아온다. 자신이 몰입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도 한다. 나레이터는 어느 인물에 물든 캐릭터가 아니라 끝까지 전달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고, 자신만의 ‘자아’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자신만의 입장을 이야기한다. 나레이터는 헥토르와 아킬레스가 그냥 둘이 술이나 마시라고 한다. 따라서 나레이터는 아무런 자아가 없는 단순한 서술자도 아니고, 어느 인물에 물드는 존재도 아니고, 나레이터만의 자아를 가진 나레이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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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래를 부르는 사람


나레이터는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노래를 부른다. 그는 왜 괴로워하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어쩌면 속죄가 아닐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름 없는 죽음들이 머릿속을 떠다녀서 그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그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노래는 그가 유일하게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도 다른 것을 하고 싶지만, 전쟁 때문에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을 망친 전쟁에 대한 노래일 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얼마나 슬픔에 잠겨있을까.

 

 

 

전쟁은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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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과거의 이야기이면 이 공연이 지금 올려지는 의미가 없다. 이 연극은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와 긴밀히 연결시킨다. 연결의 형태는 두 가지로 나뉜다. 고리처럼 과거의 전쟁과 현재의 감정을 이어주는 형태가 있고,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줄로 이어주는 형태가 있다. 나레이터는 9년 동안 전쟁을 이어간 사람들의 감정을 마트 계산 줄을 오래 선 감정으로 묘사하고, 전쟁에서 느낀 분노를 운전할 때 앞에 차가 끼어드는 분노로 설명한다. 또한 전쟁에서 느끼는 불안한 직감을 전화를 받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으로 이야기한다. 전쟁의 감정을 현대의 사람들에게 끌어주는 묘사이자,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단순한 고리로 이어주는 연결이다. 두 번째 연결의 형태이자 가장 인상 깊은 연출은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긴 선으로 이어주는 장면이다. 배우의 입에 하얀 조명이 비추면서 일리아드 때부터 현재까지의 전쟁을 배우가 모두 나열한다. 끝나지 않는 전쟁의 목록 앞에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 연출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방법은 정말 많지만, 그 연결이 전쟁으로 이어져있다는 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일리아드>는 헥토르의 죽음을 극의 하이라이트로 잡는다.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레이터는 말한다.


“너무 과해. 이야기하기도 싫어”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지금까지 이 공연에서 이야기한 죽음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이 났다. 이후에 있을 죽음이 이렇게나 많으니 말이다. 트로이 전쟁 뿐만 아니라, 나레이터가 읊은 모든 전쟁이 이 이후에 일어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미래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우리의 미래는 아니길 바라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나레이터의 말이 두렵게 귀에 남아 있다.


<일리아드>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연극이다. 전쟁 속에 누군가는 이름이 남고 누군가의 이름은 남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할까. 전쟁이 우리의 역사라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일리아드에서 가져갈 언어>

*문화 예술은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리아드>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소화하기 위해 던져야 하는 질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머물러서 전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현재의 전쟁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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