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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진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우리가 보는 것 - 어떤 사물, 장면 혹은 사람 - 을 열심히 따라 그린 그림과 달리 눈에 보이는 것 그대로를 재현해 냈다.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는 특징은 더 빠르게,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었다. 덕분에 사진은 시의성과 객관성, 사실이 중요한 보도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보도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순간을 생동감 넘치게 프레임에 담아, 더 많은 독자들에게 보다 쉬운 방식으로 접근하여 현실세계를 알려 주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사진이 순간만 담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많은 것들을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장면에 얽힌 뒷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관계성, 관련된 사회문제 등이 한 장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진으로 인해 관련 기사를 찾아보게 만드는, 흥미 유발의 관점에서도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도사진은 순간을 담아,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어떤 진실을 이야기하는 장치다.

 

 


퓰리처상 사진전 : SHOOTING THE PULITZER


  

퓰리처.jpg

 

 

사진과 정치,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상이 있다. 바로 퓰리처상이다. 퓰리처상은 미국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언으로 제정되었으며, 1917년 시상을 시작으로 매 년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권위있는 시상식이다. 보도, 문학, 음악 부문에서 시상이 이루어 진다. “퓰리처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도 부문이다. 보도 부문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릴 만큼, 수상자에게 최고의 명예를 안겨준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건 사진 부문이다.

 

아마도 그건 퓰리처상 수상작에서 포토 저널리즘의 의의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때로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파급력이 클 때가 있다. 보도사진은 정지된 때로 우리를 데려가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한다. 이미지로 사실성을 강렬하게 보여 주면서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을 줄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부터 놓쳐서는 안 될 굵직한 사건까지, 수많은 주제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무척 효과적인 시각매체임을 증명한다.

 

 

[공식포스터] 퓰리처상 사진전.jpg

 

 

보도사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을 두 눈으로 직접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는 3월 30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퓰리처상 사진전>은 1940년대부터 2024년에 이르기까지의 현대사를 수많은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퓰리처상은 역사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라는 수상자 에디 애덤스의 말처럼, 포드 자동차 노조의 투쟁을 담은 사진부터 이스라엘 폭격으로 인해 무너진 가자지구의 난민캠프 모습까지 보면서 관람객은 80년의 생생한 역사를 목도하게 된다. 또한 1968년부터 이뤄진 특집 부문 (Feature)의 수상으로, 순간의 강렬함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특종 부문과 특집 부문의 수상작들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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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분류된 사진을 관람하며, 수많은 세월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 속에 반복적인 주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비극적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전시장 초입에서 본 "불행은 되풀이되는 것인가?"가 떠올랐다. 인류사에서 평화로웠던 시간이 극히 적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비극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그 주제는 많은 사진 속에서 반복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1940년대의 사진 속 메시지는 전시장 말미에 배치된 최근 수상작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1970년대의 수상작 중 하나였던 <루이빌에서의 버스 타기> 속 백인 아이와 흑인 아이가 한 교실에서 손을 맞잡는 장면이 말하는 인종 차별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다. 1980년대의 주된 주제였던 정치적 불안과 지역 분쟁은 장소를 바꿔 계속되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순간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시장 곳곳에서 뭉클함과 행복함을 안겨 주는 보도 사진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파트 앞 공터에서 해맑게 뛰노는 흑인 아이들의 모습이나 팬데믹 시절 보호 장비와 바이러스도 막지 못한 노부부의 사랑을 담은 장면 등이 그랬다.


 

잭 루비 오스왈드를 사살하다  - Alamy Stock Photo.jpg

Alamy Stock Photo

 


이처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차별, 이념의 대립, 욕심 등 여러 이유로 비롯된 비극과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주제 사이에 서있으면서, 이 수많은 사실을 전하고자 했던 보도사진기자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것들을 포착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한 장의 프레임에 이야기를 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 것인가. 일반적인 사진과는 달리, 보도사진은 시대성을 가진 사회적 이슈가 잘 드러나도록 찍어야 하면서도 사진기자가 그 상황에 의도적으로 개입하거나 조작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을 담아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했을 그들의 숭고한 노력과 희생을 가슴 깊이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보도기자들이 찍은 사진 한 장에 담긴 이야기는 어떤 말보다 큰 힘을 갖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사진전을 관람하는 우리는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로부터 순간의 이야기와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며,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님을 되새긴다. 포토 저널리즘이 가진 힘과 필요성을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 장의 보도사진에 담긴 어떤 장면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한 사람의 현재와 미래에 하게 될 생각을 전환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 더욱 선명해졌다. 순간적으로 시간 여행을 데려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고민하게 하고, 생생한 사건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하며, 역사 속 비극적 사건이 일러주는 점을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종식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모든 인류의 것이라는 점. 이것이 퓰리처상 수상작들이 세상에 던지는 거대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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