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실 예술작품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음악적으로 듣는 것을 좋아하고, 사실 미술관보다는 공연장을 더 좋아한다(공연에도 시각적 요소가 제외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을만큼 그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미술관을 극장보다 덜 좋아하는 걸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나는 (혹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특정한 예술작품에 다가갔을때, 무언가 느껴지고 그것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때 즐거움을 경험해왔다. 엄마가 음악 선생님이었던 영향 하에, 어려서부터 엄마 손을 잡고 음악을 들으러 공연장에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겨우 입장가능한 나이일 때 들어가 지금 보는 공연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때에도 그저 듣고 감상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었기에, 머리가 굳기 전부터 나에게 무언가를 '들으면서 감상하는 일'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편향된 음악애호가로 남고 싶지는 않았기에, 한국에서도 전시가 있을 때마다 국립현대미술관 등을 주로 가보기도 했고, 20대 중반에는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릴(Lille)'이라는 도시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그 감상의 지평을 넓히고자 노력해왔다.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는 예술이 흘러넘치는 나라에 가서 문화예술을 마음껏 감상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학기 코스가 끝나고 나서는 한 달동안 배낭여행을 했는데, 사실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곳은 프랑스가 아닌 의외로 (이 책에서는 소개가 되어 있지 않기는 하지만) 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리버풀에 있는 '테이트 리버풀 아트갤러리(Tate Liverpool Artgallery)' 였다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필자는 교환학생 당시 겪고 경험했던 것들의 일부를 개인 인스타그램에 기고하였었는데, 영국 테이트 모던을 감상하면서 겪었던 감상은 대략 아래의 내용이었다.
"이곳은 소재/재료에 대한 전시관이었는데, 불확실성, 상실과 수집과 새로운 배열 등의 단어들이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깨달은 결론을 말하자면, 머무르는 동안 읽었던 특정 학자의 예술론과 연결되는 것이다. 릴 교환학생 파견이 공식적으로 결정된 날, 친구들이랑 학교 앞 피맥집에서 축하 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었는데, 그날에 했었던 '틈'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하기 어렵게 된, 날 좋은 5월 트인 가게에서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여하튼 나는 그때 이미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8개월이 지나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나선 후에야 직성이 풀리게 된 것이다."
"다른 전시관에서 시각적 요소가 지배적인 미술 안에서도 음악적인 요소인 리듬을 발견해낼 수 있다는 예술의 '공감각적 특성'을 '눈'으로 또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관에서, 익숙하지만 뭔가 다른 곳을 발견했는데, 연초에는 있었던 피카소 그림의 훼손 사건으로 인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그 그림이 치워져 있었다.
또다른 전시관의 디지털 매체 전시에서는 그것의 순간적인 속성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을 보았는데, 글이 지워졌다 작성되었다를 반복하며 드러나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라디오를 쌓아올려 다양한 복합적인 소리를 내는 곳에 다다랐는데, 전에는 클래식이 주로 들렸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또다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날의 나는 다른 주제로 분류되어 있는 다종다양한 전시를 보았지만, 내가 정한 하나의 주제에 따라 전시를 관람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지만 감상과 연결된 사건에 사용된 동사들이 하나의 공통된 큰 뜻을 가졌지만 또 같지는 않고 다르게 기술되었던 날이다."
약 5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회고해보니, 역시나 '음악'과 관계될때, 그리고 그런 여타의 것들이 나에게 의미를 줄 때에 그 미술관은 나에게 유효한 미술관이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필자에게 미술관을 관람할 신선한 '인사이트'를 주는 책을 만났으니, 바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이다. 현재는 모 대학교에서 연구행정 업무를 맡고 있지만 언젠가 공연연출가 혹은 공연기획자를 꿈꾸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중요한 '경영'에 대해서, 필자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또한 그것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나긴 대학/대학원 기간을 지나 직장인이 되었을 때, 경영이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행동방식 혹은 지침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책 초반을 읽을 당시에는, 미술관을 '감상만 하는 곳'이 아닌 인재들은 '무엇으로/누구와/어떻게/어디에서/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와 관련된 경영학적 시선으로 접근하는 저자의 글을 읽어가면서 자꾸만 미술관을 가면 철학을 전공했던 전공병 습성상 자꾸만 배타적으로 '인문학적으로만' 접근하는 나 자신이 조금 편협스러워 보이곤 했다. 그러나 점차 책을 읽어갈수록 인문과 경영이 결코 배타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관계라는 것을 깨달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내가 미술관을 너무 '미술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곳 자체'로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여러가지 카테고리들의 고민을 가지고 미술관에 가서 감상을 해도 되는 것이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곤 했다.
인상적이었던 섹션은 아홉번째 미술관: 대영 박물관과 열다섯번째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에 담긴 스토리들이었다. 사실 미술관을 떠올리면 미술관을 구상하고 만들게 된 이야기까지를 살펴보기 보다 그 미술관에 무엇이 소장되어 있고,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디를 주로 보는 것이 좋은지, 또는 무엇을 기념품으로 사면 좋을지 등을 생각하면서 방문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두 섹션에서 서술되고 있는 스토리들은 미술관들이 경영학적인 의미를 제공해주는 원형이 된다는 점에서 나에게 특히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1.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 :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뤄나가는 정치력과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력
"이외에도 대영 박물관에는 전 세계 수많은 국가, 수많은 문화권에서 수집(혹은 약탈)한 엄청난 수의 유물과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영 박물관이나 영국의 과거 식민지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영 박물관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단, 영국 유물만 빼고...' (중략) 하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영국에 거주하시던 어느 학자는 '영국은 어쩌면 전시물 자체가 아니라, 그런 전시품들을 전시할 수 있었던 자신들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 세계에 걸쳐 진기한 유물과 귀한 문화유산을 마구 긁어모을 수 있었던 제국을 만들어낸 조상들의 능력과 함께, 목숨을 걸고 어렵게 모아온 수집품을 기꺼이 공공 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었던 조상들의 국가관과 시민의식, 그리고 수백년에 걸쳐 그런 유물들을 복원하고 소중하게 지켜올 수 있었던 문화 의식 등. 지금의 대영 박물관이 전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영국인의 전통', '영국인의 문화 의식'이라는 것이 그 학자의 생각이었습니다. (p.134)
그런데 정말로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대영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것은..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뤄나가는 정치력과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력'이었습니다." (p.135)
그리고 나서 책의 저자는 대영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정치력과 협상력'의 원형을 영국 웨스트민스트궁의 국회 본회의장 구조에서부터 가져온다. 저자는 영국인들이 처음부터 흔히 말하는 '젠틀(gentle)'한 형용사를 소유하게 된 나라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를 드는 예시가 바로 다음의 예시이다. 영국의 국회 본회의장은 원형 극장처럼 앉게 되어있는 다른 나라의 국회 본회의장과 달리 서로 마주 보고 앉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바닥에는 생뚱맞은 두 줄의 선(Sword Line)이 있다. 즉, 말 그대로 칼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전 영국 의회에서 견해가 서로 다른 양당이 서로 격한 논쟁을 치루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칼을 상대에게 휘두르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그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 선을 그어놓았다는 것이다. Sword Line을 그어놓은 것에서 볼 수 있듯, 다툼과 대결의 모습에서 벗어나 타협과 합의의 정신이 살아있는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많은 노력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이 남의 문화유산인 소장품들을 가지고 대영 박물관과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을 발전시켜 온 것은 타협과 합의의 문화만 가지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즉, 자신들끼리는 합의와 타협을 이뤄내지만 경쟁하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야 마는 협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영국인들은 나라와 나라 간의 협상을 할때에도 발군의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저자는 경영활동을, "기업활동을 하는 과정과 결과가 담고 있는 모든 요소와 더불어 '상대와의 타협, 협상, 배려와 관용 등 고도의 정치적인 의도와 행동이 반영되어야 하는 종합적인 활동이다"라고 도출해낸다.
2.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 어렵게 얻은 것에 대해 더 가치 있다고 인식하는 경향
"이탈리아 피렌체 중심부 시뇨리아 광장 귀퉁이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한쪽에는 한눈에도 미국 사람임을 알 수 있는 복장과 행동을 하는 무리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콧수염이 멋들어진 중년 남성과 제 몸의 두 배쯤은 되는 덩치의 중년 여성이 있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댓 명의 미국 사람들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빠른 말투의 영어를 내뱉고 있는데, 맞은 편의 두 남녀는 느긋하게 툭툭 한두 마디씩 대답할 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우피치 미술관 입구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인 무리는 당연히 이 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었고, 두 이탈리아 남녀는 미술관의 입장을 통제하는 직원들이었습니다. (p.223)
(중략) 당시 우피치 미술관의 개관 시간은 오전 9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미국인은 정해진 자신들의 일정을 더 앞당기기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입장시켜달라고 요구했고, 그에 대해 이탈리아인 직원들은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실랑이 때문에 정해진 입장 시간인 9시보다 늦어진 9시 5분이 되었는데도 아직 아무도 입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략적인 내용이었습니다." (p.225)
이에 이날의 기억이 인상깊었던 저자는 이후 미술관의 담당자에게 '그때 관람객들의 편의를 봐줄 수는 없었는지?'라는 문의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전략) 우리에게 관람객의 편의는 두 번째이고, 작품의 안전한 소장이 첫 번째입니다. (중략) 최고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그 정도의 기다림,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중략) 편하게 관람하고 싶다면 <전시 도록>을 보시면 됩니다. 온라인으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 (후략)" 하지만 이러한 다소 불친절하고 당당한 미술관의 태도에도, 저자에 따르면 우피치 미술관은 매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오고 있고 몰려든 이들은 도도한 우피치의 서비스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럴수록 우피치에 열광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이에 대한 심리학적 근거로 저자는 영국 얼스터대학교 교수이자 저명한 심리학자인 리차드 린 박사의 주장을 가져온다. 린 박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어렵게 얻는 것을 '상대적으로 훨씬 더 가치가 높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캔사스대학교의 잭 브램 교수의 '심리적 저항이론'을 가져온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면 그 대상을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소유하려는 심리적 저항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곳에 소장된 미술작품들 자체가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효과가 극대화된 우피치 내의 공간으로 '가장 매력적인 복도'라는 별칭을 붙인 바사리의 복도를 손꼽는다. 전시된 이곳이 유명세를 떨치게 된것은 무엇보다 진입이 턱없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관람도 매우 엄격한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그곳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길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미술관이 주는 원형적 의미로부터 저자는 경영학적인 시선에서, 최선을 다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되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자신감이 들게 된 인재는 소비자들에게 쉽게 문턱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경영학적인 의미를 도출해낸다.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차별화된 품질이나 제한된 접근성 등을 갖췄다면, 고객을 때로는 안달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끌어내고 있다.
** 추가적으로 이 책은 직접 그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그 미술관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거나, 혹은 방문하기 전 읽고 간다면 참 도움이 많이 될만한 책이다. 또한 전세계의 20개 미술관 각각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로부터 경영학적 의미를 도출해내고 있기 때문에, 인문학과 경영학, 그리고 예술 간의 교차된 시선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