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느끼는 베르테르의 마음
사람은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이 감정을 우리는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들림 없어 보이던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무너져내리고, 현명하다 생각했던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을 볼 때 그 믿음은 깨져버린다. 감정과 충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이리 저리로 끌고 다닌다.
25주년 기념으로 돌아온 뮤지컬 <베르테르>를 이끌어 가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감정과 충동이다. 이는 극의 초반 롯데가 인형극으로 들려주던 '자석산의 전설'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배를 타고 가다 자석산에 끌려가 파멸했다는 왕자의 이야기는 앞서 말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동화 버전일 것이다. 이야기 속 왕자처럼, 베르테르도 자유로운 감성을 가지고 문학적 흥미도 비슷한 롯데에게 속절없이 빠져든다.
베르테르가 경험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차근차근 다 설명하기는 어렵기에 음악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현악기 선율로 흐르는 넘버는 '우리는'에서는 애틋하게, '사랑을 전해요'나 '발길을 뗄 수 없으면'에서는 애절하게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다가, '번갯불에 쏘인 것처럼'에서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논리적으로는 납득시킬 수 없는 감정은 음악에 실릴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관객도 그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게 된다.
어른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른
극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사랑에 푹 빠져 롯데에게 마음을 고백할 결심을 했던 베르테르는 약혼자 알베르트의 존재를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걱정하는 술집 주인 오르카에게 그는 말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졌는데, 그 돌부리가 올라오더니 이제는 가슴까지 아프게 찌르고 있다고. 베르테르보다 긴 세월을 산 오르카는 사랑은 다 지나간다는 식의 위로를 건네지만, 그 말은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베르테르에게 닿지 않는다.
앞서 본 베르테르의 모습이 사랑에 빠진 여느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면, 이 장면에서는 그가 무척 예민하고 여린 감성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순수한 인물임을 드러낸다. 순수한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백지는 어떤 색에도 쉽게 물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으며 오직 현재를 살아가는 베르테르는 이성과 논리, 계산과 규범으로 대표되는 어른의 세계에 아직 진입하지 못한 존재이다.
베르테르와 대비되는 인물은 알베르트다. 아내 될 사람이 편지로 다른 남자 이야기를 주야장천 하는데도 책망하거나 질투하는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욕망의 꽃' 씨앗 한 줌을 우편으로 보내는 사람, 발하임에 돌아와 베르테르의 얼굴을 보고서도 깍듯하고 여유롭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알베르트다. 베르테르와 달리 알베르트는 이미 이 세계에 휼륭하게 적응해 완벽히 정착한 인물이다. 그곳에서 그는 흔들리는 롯데를 바라본다.
롯데는 어른의 세계의 문턱에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이다. 사회적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은 베르테르를 향한 끌림과 정체 모를 감정 앞에서 끝없이 흔들린다. 소녀같은 해맑음과 결혼한 여인의 정숙함이 공존하는 모습은 롯데가 과도기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롯데를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이 작품을 한 소녀가 어른의 세계로 이행하기까지의 방황을 그린 작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흔들린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갈 수 있었던 베르테르의 사랑은 2막에 들어서며 심각해진다. 순수한 사랑은 그 순수성 때문에 광기를 띠기도 쉽다. 그는 충동적으로 롯데와 알베르트에게 총구를 겨누고, 마음 깊이 응원했던 정원사 카인즈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베르테르의 마지막 희망은 알베르트에 맞서 그런 카인즈를 구제하는 것이었지만, 법률과 이성이 지배하는 알베르트의 세계에 카인즈나 베르테르 같은 존재가 설 자리는 없다.
과정이 어떻든 살인자로 낙인 찍힌 카인즈를 보며 베르테르도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을 것이다. <베르테르>의 결말은 모두가 알다시피 베르테르의 자살이다. 가혹한 결말이지만, 어떻게 해도 알베르트의 방식대로는 살아갈 수 없었던 베르테르는 이 세상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을 테다. 자신에게서 솟아난 감정은 타인을 해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서간체로 철저히 베르테르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베르테르만이 광기에 휩쓸렸던 것은 아니다. 알베르트는 여행을 떠난다는 베르테르에게 왜 이유도 묻지 않고 총을 빌려줬을까. 그릇된 방식으로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건 아닐까. 모든 일이 끝나고 알베르트는 롯데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가? 세 사람은 모두 베르테르가 일으킨 폭풍에 세차게 흔들렸다.
많은 관객이 머리로는 베르테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극을 보다 보면 그의 대사 한 마디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그의 죽음에 알 수 없는 애잔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역시 꼭 사랑이 아닐지라도 살면서 어느 순간에 특정한 감정과 충동에 속절없이 휩싸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우리가 오래 전에 봉인하고 떠나왔다고 믿은 세계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원작이 지금까지 읽히고, 뮤지컬도 25주년을 맞을 만큼 사랑받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세 사람을 연민하게 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드는 감정이 두려웠던 인간은 이성으로 집을 지어 그 안에 들어가 문을 잠갔지만, 거기서도 매 순간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다. 자물쇠를 부수며 다가오는 것들을 우리는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까? 베르테르, 롯데, 알베르트 사이에서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