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테르'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깊은 감정과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내 삶과 묘하게 맞물려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고, 이번 25주년 공연은 그 감동을 더욱 강렬하게 새겨주었다.
뮤지컬을 보기 전, 이미 원작을 알고 있었기에 스토리 자체가 주는 신선함은 덜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막이 오르자마자 그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 연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져 감정선을 세밀하게 표현해냈고,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몰입하게 되었다.
특히 엄기준 배우의 연기는 탁월했다.
그는 베르테르의 순수함과 열정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사랑의 고통 속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그의 눈빛, 손짓 하나하나가 베르테르의 감정을 대변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롯데 역의 류인아 배우 또한 인상적이었다. 롯데의 내면적인 갈등과 성장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음악 역시 감동적이었다. '반가운 나의 사랑'을 비롯한 여러 넘버들은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등장인물의 심리와 서사를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장조와 단조를 오가며 베르테르의 감정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한 곡들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감미롭고도 격정적으로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연출 또한 돋보였다.
무대 중앙의 다리는 위와 아래를 나누며 베르테르와 롯데, 그리고 알베르트의 대비를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등장인물들을 꽃으로 표현한 연출 또한 작품의 상징성을 더했다. 특히 해바라기를 통해 베르테르의 사랑과 운명을 표현한 방식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총소리 대신 해바라기가 쓰러지는 장면은 베르테르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을 정직하게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한 흔들림, 열정, 좌절, 그리고 순수한 감정을 베르테르와 롯데를 통해 풀어냈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하며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특히 극 후반부로 갈수록 베르테르의 감정선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 알베르트에 대한 질투와 존경이 뒤섞인 감정, 그리고 결국 삶을 포기하는 과정까지 그려지는 서사는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의 감정선이 점점 무너지는 모습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고, 극이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이 남았다.
처음에는 베르테르라는 인물에 공감하지 못했던 나였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그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로는 논리적이지 않으며, 인간은 누구나 흔들리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베르테르'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었을 감정의 기록이었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었다. 사랑과 감정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그 여운은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