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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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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맥주의 맛을 알게 된 건 친구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지금은 꼭 전생처럼 느껴지는, 내가 맥주를 좋아하지 않던 시절. 친구의 설득에 억지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한 모금씩 찔끔찔끔 마시던 중 나눈 대화였다.

 

“사람들은 맥주를 왜 마시는 걸까?”

 

“탄산음료랑은 다른 시원함이 있잖아. 왜, 느끼한 걸 먹었다거나 음식이 좀 물린다 싶을 때 맥주 한 모금을 딱 마시잖아? 그러면 정말 속부터 싹 씻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야. 아예 다른 차원의 시원함이랄까.”

 

이 말 한마디에 문득 나도 맥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맥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친구의 말이 정확했다. 콜라나 사이다와는 차원이 다른 청량감. 달거나 진득한 맛이 아니라 입 안을 정리해주듯 씁쓸한 맛이 나는 시원함! 나는 그 매력에, 맥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럼, 보통 우리가 그 시원함을 원하는 때는 언제일까? 맞다, 여름이다! 여름은 우리가 맥주를 즐기기에 가장 최적화된 계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맥주와 여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다시 말해 단짝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계절에 마셔도 맛있는 맥주지만, 여름에는 정말 그 맛이 두 배가 된다. ‘맥주’라는 단어 하나에도 귀가 쫑긋 서고,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날씨 탓에 온종일 땀 뻘뻘 흘리고 퇴근하는 길에 누군가 ‘우리 맥주 한잔하고갈까?’라고 하면 꼭 사랑 고백을 받는 느낌이다. 이것만큼 낭만적인 조합이 있을까. 여름밤과 맥주라니.

 

가게 안에 들어가자마자 바깥과는 아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완전한 단절감이 느껴지게끔 만들어주는 에어컨 바람. 그리고 자리에 제대로 앉기도 전에 허겁지겁 내어주시는 간단한 기본 안주와 메뉴판. 이때 메뉴판을 펼쳐보기도 전에 마치 정해져 있다는 듯, 생맥주 두 잔을 주문해야 한다. 그게 맥주 고수의 원칙.

 

무엇을 먹어야 맥주와 잘 어울릴지, 더 맛있게 마실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으면 뒤에서직원분이 조심스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맥주 두 잔을 건네주신다. 살짝 얼어있는 컵과 귀엽게 솟아오른 거품. 눈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맥주 두 잔이 있으면 주문은 일단 뒷전이다.

 

딱 기분 좋게 무거운 500cc 잔을 들고 ‘짠~’ 부터 외친다. 둔탁하게 ‘탁’ 소리가 나며 부딪힌 잔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간다. 벌컥벌컥벌컥. 연달아 세 모금 정도 마시고 나면 눈이 번쩍 뜨인다. ‘아, 진짜 여름이구나!’ 싶다. 맥주의 시원함이 반가우면 그게 곧 여름이다. 그리고 그 시원함이 다 녹아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다시 메뉴판을 보고 안주를 고르는 데 집중한다. 여름에는 주로 뜨겁지 않고, 가벼운 안주에 자연스레 끌린다. 예를 들어 콘 튀김, 크림치즈에 크래커 같은.

 

그렇게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다 보면 신기하게도 세 번째 잔부터는 적당히 취기가 올라온다. 편한 친구와 좋은 분위기에서 마시는 맥주는 쉽게 취한다. 이게 지금 술에 취한 건지, 행복에 취한 건지 분간이 잘 안 갈 정도로.

 

이렇게 취하는 건 정말 기분이 좋다. 딱 적절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주류로는 쉽게 만들 수 없는 상태다.

 

귀가하는 길에는 발걸음이 왠지 한결 더 가벼워진다. 여름밤에만 느낄 수 있는 간간이 부는 바람의 소중함을 만끽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워 흘린땀 탓에 촉촉히 젖은 앞머리를 내멋대로 마구 뒤로 넘기고, 가방은 마음 가는대로 이리저리 휘두른다. 여름 신발이 (예를 들어, 쪼리나 샌들) 벗겨질까 조심조심 걸어가는 건 잊지 말기.

 

이런 평범하고도 특별한 여름밤을 즐길 수 있게 해준 나의 친구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맥주 킬러의 자리를 물려준 것도! 다음 맥주 킬러는 이 글을 읽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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