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연휴는 끝났지만, 아직도 나는 ‘쉼’에 머무르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뭘 해도 집중이 어렵다.

 

그래서 무작정 유튜브에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작업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도 단순히 집중을 위해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나는 나의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있었다. 작업할 때 듣는 BGM부터 감상용 플레이리스트까지, 나의 하루를 채우는 음악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최적의 작업용 음악 : ‘동물의 숲’ & ‘스타듀 밸리’


 

노트북 작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BGM은 단연 '동물의 숲' BGM이다.

 

닌텐도의 유명한 게임 시리즈인 '동물의 숲'은 힐링 게임으로,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동물들이 사는 마을에서 살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대출금을 갚으며 집을 확장할 수도 있고, 마을 주민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pc 게임이나 콘솔 게임 등 각종 게임을 조금씩 경험해 왔었는데, 그 중에서도 '동물의 숲'은 지금까지 추억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평화롭게 마을에서 동물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고, 나름 복잡한 현실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로 느껴진다.

 

 

 

 

이러한 게임의 독특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게임 내의 BGM으로 완성된다. 특유의 반복적인 리듬과 음은 통통 튀는 동시에 잔잔하고 부담 없이 듣기 좋다. 특히 게임은 게임 내의 시간대별로 각각 다른 BGM이 흘러나오는데, 오전과 낮에는 주로 밝고 경쾌한 음악이, 저녁과 새벽에는 잔잔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이제는 노트북을 열고 뭔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유튜브에 들어가 ‘동물의 숲 BGM’을 검색한다. 헤드셋으로 음악이 들리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아주 조금은, 경쾌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가끔은 BGM이 아닌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을 ASMR처럼 틀어놓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BGM뿐만 아니라 유튜버들이 실제로 해당 게임을 플레이하며 녹화해 둔 영상도 업로드되어 있다. 게임 내에 자극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없어 게임 플레이 영상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BGM이 된다. 캐릭터의 발소리와 바닷물이 찰랑이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새 나 역시 ‘동물의 숲’ 세계관에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크기변환]제목 없음.jpg

▲유튜브에 업로드 된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들

 

 

한편 게임 ‘스타듀 밸리’는 ‘동물의 숲’처럼 롤 플레잉과 시뮬레이션 장르로 비슷하지만, 에릭 바론이 제작한 1인 개발 게임으로 배경이 농장이다. 고단한 회사 생활을 하던 플레이어의 캐릭터 주인공은 과거 할아버지가 살던 한적한 스타듀 밸리의 마을로 이사를 와 농사하게 된다.

 

사실 ‘스타듀 밸리’는 게임의 BGM을 먼저 듣고 게임에 흥미를 가지게 된 케이스이다. 노트북 작업 시에 들을 만 한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스타듀 밸리’의 BGM을 모아 둔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고, ‘동물의 숲’처럼 특유의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음악에 꽂혔다.

 

 


 

 

모든 트랙이 잔잔하고 듣기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Spring (It’s a Big World Outside)’를 가장 좋아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의 싱그러운 분위기와 판타지적인 게임의 분위기가 잘 녹아있어서 그런지, 어떤 작업을 하든 나름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항상 긴장 상태로 힘을 주고 하는 나에게 두 게임 BGM은 조금이나마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로운 가상 세계에서 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두 BGM은 작업할 때 가장 많이 손이 가는 음악이다.

 

 

 

웅장함 속에서 집중하기 : ‘쥬라기 공원’ & ‘셜록’


 

일반적인 작업보다 좀 더 진지하고 몰입감 있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영화 ‘쥬라기 공원’의 OST나, BBC 드라마 ‘셜록’의 OST를 듣곤 한다. 두 OST 모두 웅장하고 단단한 분위기가 강해, 좀 더 강렬하고 깊은 집중이 필요한 경우 주로 듣는다.

 

영화 ‘쥬라기 공원’은 매년 모든 시리즈를 정주행하며 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중 가장 처음 제작된 ‘쥬라기 공원 (1993)’ 시즌 1의 OST는 듣기만 해도 웅장하고 으스스한 쥬라기 공원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장면을 직관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OST는 아마 ‘Journey To The Island’일 것이다. 공룡이 실재하는 섬으로 이제 막 여정을 떠나는 두근거림과 설렘을 웅장함과 함께 잘 녹여낸 OST이다. 하지만 눈앞의 공룡을 실제로 맞닥뜨리고, 그 경이로움에 눈이 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OST는 역시 ‘Theme from Jurassic Park’이다. John Williams와 Vienna Philharmonic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부드럽지만 강인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끔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 ‘Theme from Jurassic Park’를 1.8배속으로 듣기도 한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빨리 감기 하며 들으면 저절로 마음이 급해져 나도 모르는 새에 일의 속도도 빨라진다.

 

한편 영국 BBC 드라마 시리즈인 ‘셜록’ 역시, ‘쥬라기 공원’만큼 여러 번 정주행한 드라마이다. 유명 추리 소설인 ‘셜록 홈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로, 캐릭터와 연출 모두 21세기 셜록 홈즈에 걸맞아 평단의 호평을 받은 드라마이다.

 

특히 원작의 설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이 매우 흥미롭다. 원작의 이동 수단인 마차가 현대에서는 택시로 변했고, 왓슨은 21세기에 맞게 홈즈의 사건 해결 이야를 블로그에 올려 연재한다. 주인공 셜록 홈즈와 왓슨의 캐릭터도 원작의 특징을 잘 살렸으며, 주변 인물들 역시 입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이 점이 이 드라마의 매력을 한층 키웠다고 생각한다.

 

 

 

 

‘쥬라기 공원’의 ‘Jurassic Park Theme’ 으스스한 공원의 분위기를 살렸다면, ‘셜록’의 OST 중 'The Game Is On'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무게감 있는 사설탐정의 특징을 음악에 녹여냈다. OST를 듣고 있으면 왠지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사건을 파헤치며 즐거워하는 셜록의 표정이 떠오른다.

 

드라마 ‘셜록’의 사운드트랙 대부분은 그리 길지 않아서, 사운드트랙을 연속적으로 재생한 상태로 일이나 작업을 하면 특히 좋다. 같은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질리지만 다양한 테마 곡으로 구성된 사운드트랙을 이어 들으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문화생활을 위한 최적의 플레이리스트


 

앞에서는 주로 노트북을 활용한 작업 시에 듣는 음악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문화생활을 하며 듣는 두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소개한다. 주로 책을 읽거나 나만의 글을 쓸 때, 혹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주로 이 플레이리스트를 이용한다.

 

작년에 잠시 다녔던 일터는 지하철을 타고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굳이 장점을 꼽자면 출퇴근 시 지하철역의 거의 끝과 끝을 오가기 때문에 대부분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시간이 아까워 나는 방 책꽂이에 있던 소설책 ‘오만과 편견’을 들고 다니며 읽었다. 그 답답한 지하철 속에서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들었던 플레이리스트가 바로 이 '(playlist) 노르웨이 숲으로 가자, 가사 없는 노래'이다.

 

 

 

 

가사 없이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플레이리스트는 책을 읽으며 듣기에 매우 적합했다. 잔잔하지만 그렇다고 울적하지는 않은 피아노곡들은 연애 소설에 가까운 ‘오만과 편견’과 아주 잘 어울렸다. 지하철 속에서 출퇴근하던 나는 이 음악만 들으면 바로 소설의 엘리자베스와  제인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었다.

 

한 달간 매일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반복하며 들으니, 지금도 이 음악을 들으면 저절로 ‘오만과 편견’의 책 내용이 떠오른다. 음악은 참 신기하다. 나를 단번에 기억 저편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최근에는 내 취향의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다. OF STUDiO라는 채널의 'Playlist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 The green ray (1986)'이다. 사실 이 플레이리스트는 영화 ‘녹색광선’을 재구성한 플레이리스트로, 영화의 실제 사운드트랙과 관련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음악들을 들으며 아직 시청하지도 못한 영화 ‘녹색광선’의 이미지와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부터 영화 ‘녹색광선’을 보고 싶어 나의 ‘영화 리스트’에 적어두었는데, 시간이 여의찮아 보지 못했고, 기분이라도 내고 싶어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했다가 찾게 된 영상이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약간의 감정이 필요한 일을 할 때 자주 듣고 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202_111339880.jpg

▲모네, '산책, 양산을 든 여인' ('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中)

 

 

특히 최근에는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화가 모네의 작품들을 보고 있다. 우연히 책을 읽다가 모네의 그림을 보고 인상주의 화풍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음악과 함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게 된다. 부드러운 음악에 감성적인 목소리가 더해져서 그런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에 나를 끌어다 놓고 싶을 때 자주 듣게 된다.

 

사실 이전까지는 예술작품을 감상해도 그 작품에 깊게 빠지는 경험을 하기 어려웠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별도의 지식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니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은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문화예술 향유 방식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는 점을 새롭게 깨달았다. 앞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듣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하나씩 만들어 가보고 싶다.

 

*

 

우리의 일상에는 얼마나 많은 음악이 자리 잡고 있고, 또 스쳐 가고 있을까. 삶의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있을지 모른다.

 

나의 삶 이곳저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음악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나는 내 생각보다도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양한 상황에서 듣고 있었다. 내가 듣는 건 케이팝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클래식부터 영화 OST, 밴드와 게임 음악까지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다.

 

앞으로도 나는 새롭고 다양한 음악과 함께 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나가고 싶다. 이렇게 나만의 BGM을 찾아가면서, 더 좋은 음악을 만나게 될 생각을 하니 무척 기대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효주.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