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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로맨틱 코미디 혹은 로맨스 영화 추천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추천 리스트에 있는 다른 영화는 거의 다 봤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첫 키스만 50번째>만 계속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보게 됐다. 당시 한창 전성기였던 아담 샌들러와 드류 베리모어를 주연으로 장르까지 로맨틱 코미디라니 아주 작정하고 성공하겠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흥행이 보증되는 캐스팅과 인기 장르라고 해도 작품 자체가 재미없으면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첫 키스만 50번째>는 20년이 지났음에도 로맨틱 코미디 하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영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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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헨리는 매번 원나잇을 한 여성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진지한 관계를 회피한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헨리는 혼자 앉아 있는 루시를 보게 되고 와플로 집을 만드는 특이한 행동을 하는 루시를 귀엽게 바라보며 호감을 느낀다, 이쑤시개로 루시가 애먹던 부분을 해결해 주며 자연스럽게 다가가는데 성공한다. 다음날에도 똑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루시를 보고 다가가지만 루시는 헨리를 처음 보는 것처럼 냉담하게 대한다. 여기부터는 다들 예상하듯 알고 보니 루시는 아빠의 생일에 사고를 당해 단기기억상실증을 앓아 사고를 당하기 전날까지의 기억만을 가지고 매일이 10월 13일인 날을 산다. 헨리는 그런 루시를 포기하지 않고 매일 새로운 방법으로 루시에게 다가간다.

 

루시의 아빠와 오빠가 루시가 놀라지 않게끔 매일 밤마다 사고가 나기 전날처럼 준비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방 한편에 쌓아둔 똑같은 날짜의 신문과 루시가 매번 어떤 생일 선물을 주는지 알면서도 처음 보는 것처럼 연기하는 아빠, 그런 연극에 질렸다는 반응을 하지만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오빠를 코믹하게 연출했지만 이들이 루시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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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루시의 아빠는 헨리를 믿지 못하지만, 무작정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매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루시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헨리를 보고 결국 마음을 연다. 어찌 보면 헨리의 등장은 루시가 갑자기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의 의견이 아닌 가족 입장의 과보호이자 회피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셈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계속 사고 당하기 전날을 연출하고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영화 안에서도 오늘이 10월 13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루시가 정신없이 차를 운전하여 집에 오는 걸 창문 너머로 본 아빠가 오빠에게 ‘터졌다’고 말하며 대응을 준비시킨다.

 

헨리의 친구 울라는 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속 전형적인 감초 역할을 수행한다. 특이한 억양을 구사하며 시도 때도 없이 아내와 결혼생활에 대해 불평하는듯한 말장난을 해대고, 비디오테이프를 녹화할 때 루시 역할을 하면서 가슴에 코코넛을 달고 과장스럽게 만지는 등 도대체 어디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의 시대착오적인 행위들을 일삼는데, 영화 초중반까지는 울라 때문에 도대체 이게 왜 명작이라고 꼽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헨리가 루시에게 매일 새로운 방법으로 다가가는 과정 또한 요즘 시대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 영화는 후반부가 다 한 영화였다. 루시에게 단기 기억상실증을 전달하고 놀라지 않게 다가가는 그 과정을 정성스럽게 녹화해서 편집한 비디오테이프를 루시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올려두는 연출은 딱 비디오테이프 시대에만 나올 수 있는 감성이라 더 로맨틱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졌다. (놀라지 않게 다가간다고는 했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잠들었다가 일어났더니 갑자기 출산을 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인 어느 날의 루시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나온 영화였으면 매일 아침마다 보내게끔 걸어둔 예약 메시지로 링크 하나만 보내고 들어가 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어느 정도 통했다 싶으면 바로 베드인을 하는 미국 영화식 급발진도 없었고 너무 현실적이지도, 현실감이 없지도 않아서 적당히 기분 좋게 볼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는 루시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눈물이 고인 채로 밖에 나가 펼쳐진 설산을 배경으로 헨리, 딸, 그리고 아빠를 맞이하며 끝난다. 매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과 언제까지나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잘 살았겠거니 하는 여운을 남긴다. 극적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을 회복하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 비디오테이프를 볼 필요도 없이 헨리와 그 사이에서 얻은 딸과 함께 행복하게 지낸다는 꽉 닫힌 해피엔딩이었다면 이 영화가 명작으로 기억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매년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개봉하는데도 <첫 키스만 50번째>가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사랑받아온 이유는 그 시절 낭만과 영화 내용 자체가 가진 낭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낭만적인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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