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잘 짜여진 스토리를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듯, 원작이 가진 호흡과 매력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새로운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실망감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과업은 어찌 보면 새로운 스토리를 창작하는 것 그 이상으로 어렵다.
그런 점에서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다분히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요시다 아카미의 원작 만화와 일본 영화계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작 영화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기반으로 경의를 담아 제작된 작품임이 여실히 느껴졌다.
네 자매의 따듯하고 잔잔한 이야기는 절제된 무대 장치와 연출, 한국의 문화적 감성으로 풀어낸 재치 있는 대사들을 통해 결코 짧지 않은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흥미롭게 이어졌다. 그리하여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내내 덜어낼 부분도, 더할 부분도 없는 사치코 아주머니의 정겹고 깔끔한 멸치덮밥을 먹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다.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 그 가치를 담은 이야기
이 이야기는 간단하고 명확하지만, 어쩌면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전한다. 각자의 어려움과 아픔을 가진 네 자매가 서로가 있기 때문에 따듯한 일상을 살아가며 치유 받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려준다.
네 자매는 모두 유년시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어야 하는 안온감을 상실해 본 경험이 있다. 아버지의 외도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는 ‘스즈’를 세 자매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아마 아직 지나지 않은 스즈의 유년 시절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미 그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상실감을 크기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즈는 기꺼이 자신 주위의 커다란 매실 나무, 내지는 울타리가 되어주는 언니들과 일상을 살아가며 비로소 ‘그 나잇대 소녀인 스즈’ 자신을 되찾는다. 작품의 후반부 더 이상 첫째 사치와 둘째 요시노의 고성이 섞인 투닥거림 속에서도 애써 눈치를 보지 않는 스즈의 모습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마저 새 어머니와 남동생의 뒤치닥거리를 하며 반 강제적으로 어른이 되어야 했던 초반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새롭게 등장한 막냇동생, 사실상 자녀와 다름없는 스즈의 존재로 인해 세 자매 또한 일상의 변화를 겪는다. 사치는 특유의 책임감과 간호사로서의 직업 정신을 발휘해 스즈를 돌보며 원망해 마지 않던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던 어머니를 이해하는 관용을 얻고,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없게 만들던 곪은 관계를 끊어낼 용기를 얻었다.
어렸던 시절 떠나 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 또렷하지 않았던 요시노와 셋째 치카는 스즈를 통해 아버지의 노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버지를 이해함으로써 얼룩진 채 덮어둔 자신들의 유년시절을 다시금 품어내는 계기를 마련한다.
세 자매의 어머니 미야코에게는 숨막히는 감옥과 같아 떠나고 싶은 공간이었던 낡은 집이 네 자매의 별 거 없지만 충만한 일상으로 인해 채워지고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는 과정, 그들의 ‘정’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매실주를 사치가 미야코에게 건내며 별다른 말 없이도 오랜 세월 꼬인 채 뭉쳐 있던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건내는 장면은 이 작품이 가진 따스한 매력을 잘 보여준다.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일상의 가치를 표현한 무대 연출
웰메이드 연극 창작의 명가 라이브러리 컴퍼니의 작품 답게 이번 연극 또한 극의 스토리와 잘 어우러지는 무대 연출이 눈길을 끌었다. 동네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책임진 ‘바닷 마을’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약간의 의문과 기대감을 가지고 방문하였고, 관람 내내 영화의 장면을 가장 적절한 무대 언어로 표현해낸 연출에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의 가장 큰 연출 장치는 승하강 리프트를 통해 나타나는 자매의 낡은 시골집이다. 바다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이나 동네의 터줏대감인 사치코 아주머니의 식당 등 넓은 공간이 필요할 때는 무대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가 집에서 이루어진 자매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줄 때는 무대 전체를 채우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토록 효율 좋은 무대 운용을 통해 연극은 ‘절제된 미’를 보여준다.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매들의 정성과 때가 묻어 그 어떤 공간보다 사랑스럽고 정겨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의 집과,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도록 보살핀 마을의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아름다움이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공연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자매의 아버지에서 사치코 아주머니, 그리고 스즈에게로 이어지며 ‘삶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벚꽃을 이용한 연출이 아직까지 가슴 한구석 온기로 남아있다. 자매의 아버지는 자신의 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벚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아마 그의 삶에서 사소하지만 아름다웠던 순간들의 집약체였을 것이다.
사치코 아주머니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른다’는 말을 남겼다. 그것은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아주머니의 삶에서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일상 속 사소한 아름다움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벚꽃을 좋아하는 학급 소년과 함께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스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참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비록 어린 나이에 삶에서 느낄 여러 고통의 풍파를 맞았지만 언니들이 있는 바닷마을에 와 비로소 제 나이의 소녀가 된 스즈 위로 흩날리는 벚꽃들, 환하게 지은 스즈의 웃음이 마음 속에 남아 우리는 조금쯤 더 우리의 일상을 아낄만한 벚꽃과 같은 순간들을 그러모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