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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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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미술관에 구비되어 있는 오디오 가이드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지만, 의도를 작가에게서 직접 듣고 싶은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그의 전시 오프닝 파티에 가거나, 동시대 인물일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을 그저 나의 마음, 혹은 약력으로 짐작하고 말뿐이다.

 

예술을 감상하고 난 후의 아쉬움, 그리고 찝찝함. 그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을 열 때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같은 책들은 그러므로 꽤 귀중한 경험이다.

 

마이라 칼만은 이 책에서 멀게는 역사 속에 남겨진 이름들, 스쳐 지난 타인, 가깝게는 내 가족과 지인, 그리고 본인의 삶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며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욱 풍부한 상을 제공한다. 이야기가 결합한 작품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은 뜬구름 같기도, 또 어떤 것은 나의 이야기인 양 공감이 되기도 했다. 시와 수필 중간에서 우리를 홀리는 그녀의 간결한 코멘트는, 특유의 강렬하고 따뜻한 색감의 작품과 함께함으로써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언뜻 그다지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강렬하거나 아름답고, 또 조금은 슬프기까지 한 순간들을 포착하고 상상해 낸 칼만의 그림을 보며 카메라를 떠올렸다. 마치 그녀의 눈이 카메라가 되어 인생을 프레임 단위로 찍고, 그것을 복사하듯 그려낸 것 같았다. 그 카메라는 모두가 갖고 있지만 그녀의 것은 조금 독특해서, 복사된 작품들 역시 모두 어딘가 남다른 각도와 채도, 그리고 명도로 재구성되어 있다.

 

그녀가 재구성한 삶의 단편들은 여자의 인생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의 아주 평범한 모습들이 그 카메라의 대상이 된다. 가령 질투하고, 행복하고, 따분하고, 당당하거나 화가 나고, 남모르게 속을 삭이는 모습들. 모든 감정은 극히 평범한 것임과 동시에 작품이 된 여성들 고유의 것이자, 그 순간들을 그려내던 칼만의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이 평범함은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여운을 준다. 그 여운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포착한 순간들이 실은 모두의 것이었음을,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흐르는 강을 만든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마이라 칼만을 잘 알지 못한다. 얼핏 들어보기나 했을 뿐, 그녀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트북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이 처음이다.

 

책은 아주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어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턱턱 마음에 걸리는 표현이나 그림들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을 그 페이지에 할애하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녀의 삶이 그리 순탄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과 슬픔이, 그것을 이기려던 어떤 의지와 약간의 냉소가, 그리고 아주 많은 사소한 즐거움이 보였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의 원제는 'Women Holding Things'다. 원제 그대로, 이 책에는 무언갈 쥐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녀들은 그것을 쥐고 있기도, 또 놓치기도 하면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1949년생인 마이라 칼만의 삶의 강의 길이를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으니, 그녀가 무엇을 'hold'하고 하지 않았을지는 나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녀가 포착한 수많은 다른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것들을 유추할 뿐이다.

 

책에는 작품마다 정확한 주석과 설명이 달려있지 않다. 그러므로 작품을 기계적으로, 혹은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칼만의 먼 듯 가까운, 남 이야기인 듯 자기 것인 혼잣말에 가까운 설명으로부터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다. 그것은 시대적 배경과 사조, 전해지는 작가의 인생을 읊어주는 오디오 가이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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