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인 마이라 칼만은 '마술적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강렬한 색채로부터 깊숙한 울림을 남기는 시적인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한 마이라 칼만은 2008년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명예의 전당에 오르며, 2017년에는 그 시대 가장 뛰어난 예술가에게 수상하는 미국 그래픽아트협회 메달을 받았다.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지난 세월 동안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책을 30권 넘게 출간한 마이라 칼만의 최근작으로, 무언가를 들고 있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그림 86점과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2022년 [뉴욕 타임스] '최고의 아트북'으로 선정되었으며,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며 인생에 관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그녀의 정수가 담겨있다.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은 첫 장부터 한국의 독자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두려워 마세요." 그와 동시에 갖가지 그림 사이 때로는 기분 좋은, 때로는 가슴 아픈 사연을 함께 수놓으며 그림에 대한 시각을 즉각적으로 변하게 한다.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으로부터 그 안에 어떠한 인생을 담고 있을지 절로 유추하게 한다. 컵, 책, 풍선 같은 물건부터 과일, 채소, 케이크 등의 음식까지 다양한 사물을 보여주는데, 이는 단지 '무언가'가 아니었다.
여자들은 무얼 가지고 있나?
집과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음식.
친구 관계.
일.
세상의 일.
그리고 인간다워지는 일
기억들.
근심거리들과
슬픔들과
환희.
그리고 사랑.
원제인 [Woman Holding Things]처럼 특히 여자들이 가진 것들은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로 탄생했다. "우리 주변의 것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다. 모든 걸 갖는 건 힘든 일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다."라고 서술했듯 무한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물이었다. 그녀들의 애정이 깃든 무언가는 손에 있거나, 입고 있거나, 근처에 있는 등 주변부에 위치하며 그녀들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자리했다.
마이라 칼만은 거트루드 스타인, 버지니아 울프, 안톤 체호프 같은 유명 예술가부터 가족, 친구, 주변인, 심지어는 사물까지 다루며 그들(그것들)의 삶의 목적을 짐작하게 했다. 책 속에서 가만히 멈춰있는 인물들은 짙은 채도와 뭉툭한 질감으로부터 활력을 얻고 무어라 말하는 듯 보였다. 특히 투박한 선으로 표현된 이목구비는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이 소유한 무언가를 통해 지난 과거를 상상하며 그로부터 쌓아 올린 현재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했다.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이라 칼만의 곁에 있는 따듯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던진 조언이다. 본인을 넘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큰 세계를 발견한 그녀에게 한 친구는 "어휘집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면, 행복해질 거라고."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가장 중요한 게 뭐지?"라고 묻곤 하며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그들은 잡을 수 없는 걸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저자 진은영 시인 또한 이 책을 옮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나의 재능과 힘을 의심하면서 내가 얼마나 할 수 있고 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무엇을 가질 수 있을지, 무엇을 담을 수 있을지, 세상을 얼마나 힘껏 껴안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중략)
삶에도 검력계가 없다.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만큼 끌어당길 수 있는지는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해보는 만큼만 알 수 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무게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직접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원하는 게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쥐고 버티라는 말과도 같다. 물론 끝나지 않을 고난을 버티는 건 외롭고 힘들고 지치겠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꼭 버티세요."라는 마이라 칼만의 말처럼 꿋꿋이 나아가야만 한다.
마이라 칼만이 그린 초상화의 인물들이 인생에서 가진 것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들과 이를 위한 노력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쳤어도 지금에 다다르니 깨닫는 게 많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접한 시간들 말이다. 소중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이 꽤 적지 않다. 하지만 콘텐츠 소비를 아까워하지 않았기에 그 기억들은 지금까지 살아 숨 쉬며, 선택의 순간 튀어나와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 나의 인생이 품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 품을 것들을 위해 두려워하지 않고, 꼭 버텨야겠다고 다짐한다.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마땅히 들어 올리리라.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이라는 책이 증명했듯 나 역시 그녀의 그림 속 한 명의 인물로 분해 걸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