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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솔직히 말해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간결한 질문에 간결하게 대답할 수 없다니.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몇 단계를 거쳐보았다. 생각을 단계별로 거치다 보니 어떤 결론에 도달하긴 했는데, 여전히 좀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그래도 일단은 지금의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만이라도 도달해 보기로 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단계. 스스로 생각하기


 

주제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아주 어린 시절 꽤 많이 들었던 곡이다.

 

 


 

 

행복은 그냥 말만 있는 거고

모두가 원하는 Dream일뿐이라고

말도 안 되는 얘긴걸

믿고 싶지도 않아서 yeah

yeah I just want it 

simple simple oh


- 우지, 'simple' 中


 

지금 와서 가사를 음미해 보니 이 노래의 화자는 어쩌면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행복하지 않은 미래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기에 모든 게 그저 간단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어릴 땐 행복은 정말 그냥 말만 있는 거고, 모두가 원하고 닿고 싶은 꿈일 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 혹은 닿아야 하는 어떤 미래의 상태로 여겼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내게 없는 것. 아주 먼 미래에 가야 느낄 수 있는 것.


그렇게 행복을 특정 조건이나 미래의 상태로 정의하는 순간, 나는 현재의 행복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을 신격화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되니 현재에는 불행한 나만 남았다.


조금 더 살다 보니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그런 결과적 측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조금씩 느꼈다. 그렇다면 행복은 과정인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의 과정에 행복이 끼어 있는 건가?

 

 

 

2단계. 조언을 구하기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행복에 대해 도무지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유튜브로 가 법륜스님의 '행복의 정의'에 대한 영상을 시청했다.

 

 



 

법륜스님의 말씀을 등호로 표현해 보면 이렇다.


행복 = 괴롭지 않은 것 = 윤회를 벗어나는 것 = 열반(니르바나) = 지속 가능한 행복 = 고요한 상태 = 별일이 없는 상태


결국 행복은 괴롭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쾌락'과 '행복'을 구별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쾌락적 감각을 행복이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고 신나야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즐거운 감각이며 행복은 그보다 좀 더 장기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쾌락과 행복을 잘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즐겁고 유쾌한 감각이 대충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확실히 둘은 다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유튜브로 강의를 듣긴 했는데, 피부로 와닿는 느낌은 아니었다(물론 법륜스님의 말씀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강의를 다 듣고 나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입히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단계. 생각 입히기


 

그러면 대체 '괴롭지 않은 상태'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행복은 괴롭지 않은 상태라는데, 솔직히 괴롭지 않다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다 아주 어린 시절, 아빠가 내게 말해준 '중용'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아빠는 철학적 사고하기 및 말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아마 아빠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이야기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아빠는 중용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중용은 말 그대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간 상태를 말한다. 동양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이 개념에 관해 이야기했다. 동양 철학에서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도리에 맞는 것을 '중(中)', 평상적이고 불변적인 것을 '용(庸)'이라고 한다.[1]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지견에 의해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정의했다.[2]

 

왜 이 단어가 생각났냐고 하면 나에게 있어 '균형'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내가 늘 극단적인 상황에서 괴로웠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중간적인 평범한 삶'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조건적인 측면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는 매우 중요하다. 적당한 경제적 활동과 적당한 휴식 시간, 적당한 운동과 적당한 수면 등 겉으로 보이는 외부적 조건들의 균형도 당연히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더 깊게 들어가서 나의 내면이 균형을 이루지 못했을 때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외적 조건들이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에서는 무언가 곪아가고 있을 때, 내가 나를 챙기지 못하고 나를 외면했을 때, 반대로 지나치게 나에게만 관심을 쏟았을 때 등. 특유의 극단적인 면모를 조율하지 못하고 그렇게 삶을 대했을 때 나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나에게는 그 중도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려웠으면서도, 동시에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지켜나가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가끔은 권태롭기까지 한 그 과정이 어쩌면 행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단계. 행복한 삶을 정의하기


 

그러니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균형 속에서 찾은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 혹은 그 과정'일 것이다.


이것이 법륜스님이 말씀하신 '별일 없는 상태'이자 '괴롭지 않은 상태'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내 안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단단할 때, 혹은 균형이 깨졌음을 알아채고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할 때 나는 어렴풋이 행복을 느낀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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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이게 맞나?' 싶은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정말 위의 정의에 맞춰 살고 있는 순간들일까? 가끔은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기도 하지 않나? 또 가끔은 내면의 평화보다 외적인 조건의 균형을 더 중시하지는 않나?


확실히 행복한 삶을 정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실질적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단계. 실질적 방법 찾기


 

뭐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어느 부분에 구멍이 뚫렸는지, 어느 부분에 과도하게 힘을 주고 있는지를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상태를 알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바로 '감사'인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송혜교 배우의 인터뷰를 보며 떠올린 방법이다. 송혜교 배우는 5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감사 일기'를 작성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쓸 말이 없어 고민하기도 했다는데, 결국 어느새 5년 동안 쓰신 셈이다.


내가 지금 무엇에 감사하는가는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질문 같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다 보면 비로소 내가 가진 것들,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되면 과하게 집착할 것들이 사라지고 내가 메꿔야 하는 구멍들이 보이는 것이다. 구멍이 보이면 천천히 메꾸면 되고, 과도한 욕심이 느껴지면 그 이면의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역시 실천이 가장 어려운 법. 내가 행복을 정의했다고 해서 바로 영원히 행복한 사람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 또 지금처럼 윤회의 굴레에서 괴로운 순간을 맞닥뜨리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분명하다.

 

*

 

그래도 행복한 삶에 관해 정의함으로써 나는 나를 행복한 상태로 만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그만큼 무거웠지만, 또 그만큼 가치 있고 의미 있었다. 나의 경우 쾌락과 행복의 개념을 구별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큰 관문을 지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기분을 느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한 번쯤 자신만의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설령 지금 행복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행복을 정의해야지만 진정한 행복한 사람이 되는 첫발을 내딛는 것이기 때문이다.

 

 

[1], [2] -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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