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잊혀졌던 '사랑의 본질' - 영화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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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루시아>, <크로닉> 등 작품으로 칸영화제 3관왕을 달성한 것을 비롯해 <뉴오더>로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영화계 거장, 미셸 프랑코 감독의 첫 로맨스 영화가 개봉했다. 국내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주목한 젊은 거장으로 관심을 모았다. 잊지 못하는 여자와 잊어 가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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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영화 <메모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관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 <메모리>가 시작되기까지 끊이지 않던 의문이었다. 그리고 1시간 반 가량의 러닝 타임을 거치고 깨달았다.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과 의지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더 온전히 알아가는 순간 속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하던 것이 '그럴 수 있겠다'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나는 그것이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가장 중요한 본질임을 잊고 있었다. 나에게 익숙했던 사랑의 모습 만을 기억한 채 말이다.
SYNOPSIS
뉴욕에서 딸과 단둘이 사는 실비아는 고교 동창 파티에서 사울을 만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비아의 집까지 따라온 사울은 말없이 집 앞에서 밤을 새우고
실비아는 그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며칠 후, 과거에 사울을 만난 적이 있다고 확신한 실비아는 그를 찾아가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사울은 혼란스러워하고
실비아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며 그와 점점 가까워지는데…
<메모리>는 잊지 못하는 여자 '실비아(제시카 채스테인)'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사울(피터 사스가드)'의 사랑이야기다. 성성인 요양원에서 일하는 '실비아'에게는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어릴 적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그녀는 누군가와 쉽게 친해질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소란스러운 파티장에서 만나게 된 실비아와 사울. 실비아는 자신을 응시하는 사울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자리를 피하지만, 사울은 그런 실비아를 뒤쫓아온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사울의 행동에 실비아는 당황하고 불안해하지만 곧 그가 치매 환자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울’의 병을 걱정했던 가족들은 요양사였던 실비아에게 사울과 시간을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고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실비아는 사라져가는 기억 탓에 오히려 모든 것을 집중하려 노력하는 사울에게 스며들게 된다.
사랑을 잊게하는 '오만'. 그것을 꼬집는 영화
혹시 당신은 누군가를 '아주 잘 알고있다' 단정 지어본 적은 없는가? 때로 나는 내가 한 사람에 대해 가진 작고, 파편적인 기억들을 두고 내가 아는 그는 분명히 이런 사람일 것이라며 자만할 때가 있다. 게다가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리고는 이런 논리 속에 상대를 미워하기까지 한다.
어떤 미움과 갈등은 오해에서 비롯되고, 오해는 내가 상황과 누군가를 잘 안다는 자만과 납작한 시선에서 출발할 때가 있다. (아마 사랑의 권태로움도 이런 지점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한다.) 실비아와 사울도 가족과 그런 문제를 겪는다. 실비아와 사울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극 중 실비아의 엄마는 자신의 큰 딸(실비아)은 학창 시절부터 방탕하며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등장으로, 실비아가 가진 트라우마와 기억에 대해 몰입하고 있었던 관객의 믿음은 느리게 전복되며 흔들린다.
사울의 가족은 사울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의 판단을 의심하고 나아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 가족과 있으면 사울은 '통제하고 관리해야하는 비이성적 환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극 중 사울은 사울의 핸드폰을 빼앗고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감시하는 가족들과 기본적인 사생활 조차 지켜주지 않는 간병인과의 생활로 우울감에 빠지며 분노와 답답함을 분출한다.
확신을 빙자한 그들의 오만 속에 관객 조차 실비아의 기억이 진실된 것인지, 사울은 이성적 판단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심하지만 그녀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것은 사울 뿐이며, 그를 의심하지 않는 것 또한 실비아 뿐이다. 특히 실비아의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 그녀의 말을 받아 적고, 그녀와 관련된 일은 결국 잊지 않는 사울을 보며 관객은 그들의 사랑에 동화될 것이다.
함부로 '안다'고 단정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 노력하는 태도에서 모든 사랑은 순식간에 가능해진다. <메모리>는 이것이 사랑의 기본임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관람 포인트, 실비아의 변화 포착하기
아, 영화의 묘미는 실비아의 집 속 자물쇠의 변화를 포착하는데에도 있다.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았던 실비아는 자신의 집에 무려 세 개의 잠금쇠를 잠궈둔 채 생활한다. 잠깐 방문하는 친구, 심지어는 가족이 방문 할 때 조차 잠금쇠를 신경쓰며 잘 잠겼는지 잠금쇠를 재차 확인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실비아가 예민하고 다소 강박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는 점과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그녀의 심리를 반영하는 요소다.
사울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실비아는 깊어지는 마음을 경계하고, 회피하는데 ‘사울’은 그러한 ‘실비아’에게 계속해서 다가간다. 영화 중반, 두 사람이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벗어나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관계를 이뤄낼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극하지만 어느 새 느슨해진 실비아의 잠금쇠를 보면 우리는 그녀의 마음 상태를 쉽게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면.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은 사람보다 잘 기억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제외한 채 모든 것을 잊어가지만 실비아와 있었던 일 만큼을 잊지 않으려 적고, 또 잊지 않는 사울을 통해 이 영화는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잊지 못하는 여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의 어디서도 보지 못한 사랑 이야기로 하여금,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잊고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이 어렵다면.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면. 사랑하고 싶거나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올 겨울, <메모리>를 관람해보기를 바란다. 영화는 1월 22일 개봉.
[최태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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