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존재와 효용에 대한 질문 -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차가운 물질주의에 내던져진 그 삶의 끝에 우리를 투영해본다면
글 입력 2025.01.2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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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개막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리얼리즘 희곡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아서 밀러의 대표작이다. 194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해당 작품은 연극계 3대 상으로 불리는 퓰리처 상, 토니 상, 뉴욕 연극비평가 상을 모두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었다. 큰 호응과 찬사를 받았던 2023년 초연에 이어 명배우들과 함께하는 두 번째 국내 상연이다. 나는 지난 1월 11일 (토) 19시 공연을 관람했다. 해당 일시의 캐스트는 손병호 (윌리 로먼 역), 예수정 (린다 로먼 역), 박은석 (비프 로먼 역), 고상호 (해피 로먼 역) 배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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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2025), 연출: 김재엽

출연: 손병호, 예수정, 박은석 외, 원작: 아서 밀러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20세기 중반, 대공황 직전 미국의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대서사시의 영웅이 아닌 그저 초라한 ‘세일즈맨’의 이야기는 과연 기존의 틀을 깬 현대 희곡의 센세이션이었다. 아서 밀러는 당대 소시민들에게 잔인하도록 차가웠던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현실, 그리고 케케묵은 불화와 녹슨 소통 관계가 만들어낸 한 가정의 파국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관객들의 감탄과 눈물을 자아냈다. 나는 이 연극의 감상평과 함께 여러 관전 포인트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먼저 이 이야기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가가 득세하던 1920년대 후반기에 세일즈맨은 활발한 물자의 생산을 수요자와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직업이었다. 주인공 윌리 로먼은 그들 가족이 정착해 살고 있는 뉴욕에서 보스턴 등 미국 곳곳을 오가며 무려 34년간 한 회사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해왔다. 당시만 해도 윌리는 나름 성공한 세일즈맨으로서 새 집과 차를 가진, 두 아들의 존경을 받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윌리 인생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대공황이 가까워지고, 급변하는 자본 시장 아래 그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더 이상 세상은 나이 많은 세일즈맨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니. 자랑스러웠던 두 아들들 역시 자리잡지 못하긴 매한가지였다. 특히 첫째 ‘비프’는 모종의 사건과 오랜 소통의 부재로 아버지 윌리와 크게 갈등을 겪고 있었다.


관객들은 윌리 가족이 처한 현재와 과거 전성기를 번갈아 보여주는 연출을 바탕으로, 점차 그들이 어째서 현재의 심각한 경제적, 심리적 문제를 끌어안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연극은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당대 자본에 의해 잔인하게 내팽개쳐지는 소시민들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를 상징하는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꼭 거시적 은유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미시적 단위 속에서의 소통과 관계에 주목해 연극을 관람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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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를 비난할 자는 아무도 없어. 세일즈맨은 꿈꾸는 사람이거든.”

 

로먼 가족은 큰 소통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이상향’만을 바라보았다. 이상과 희망, 그것은 달콤하고 고통스러운 꿈이었다. 윌리는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 시절의 자신과 가족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무엇이든 해내는 자랑스러운 두 아들을 바라던 윌리는 있는 그대로의 보잘것없는 아들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아들 비프가 그의 이상에 발맞추기를 헐떡이던 모습, 이내 폭발하고 마는 모습을 마주하고 나서도 도저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윌리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불안과 결핍이 있다. 그는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자신의 삶에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 그리고 가차없는 자본은 이런 그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한심한 나를 봐 달라며 울분을 토하던 비프조차도 ‘여기서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라며 윌리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지독하게도 서로 어긋난 가족이었다.

 

로먼 가족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개념은 ‘효용’이다. 효용은 경제학에서 주관적인 만족을 측정하는 단위이다. 우리를 효용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효용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가?

 

개인의 효용에는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본과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윌리는 그 어떤 것에서도 자신의 효용을 느끼지 못했을 때, 결국 자살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 앞으로 남는 보험금이 그들의 생활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가족과의 소통에 있어서 윌리는 현실을 외면하고자 과거로 도피했고, 그의 이러한 정신적 문제는 남은 가족들, 특히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인 비프를 고통으로 몰고 갔다. 그는 결코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극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로먼 가족의 삶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는 ‘나를 효용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손에 쥐고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윌리처럼 가족들의 의지와 관심, 버팀목일 수도 있으며, 비프처럼 가족들의 기대로부터 벗어난 온전한 자유일 수도 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존재의 효용, 관계의 효용에 관한 파국적, 비극적 고찰을 통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우리가 효용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효용 없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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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커튼콜 사진

 

 

<세일즈맨의 죽음>은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관람시간이 장장 180분에 달하는 연극이었다. 초반부가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었지만, 인터미션 이후부터 완전히 몰아치는 연기의 파도는 관객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치닫는 갈등 상황에서 특히 비프 로먼을 연기한 박은석 배우와 윌리 로먼을 연기한 손병호 배우의 폭발적인 감정연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극의 막바지, 린다 로먼 역의 예수정 배우의 독백은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자유”를 외치며 흐느끼는 린다를 마지막으로, 감상자는 결코 자신의 이상향으로부터, 사회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한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가 우리 모두를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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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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