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꿈꾸던 서른은 아닐지라도 - 틱틱붐

그래도, 서른 축하해
글 입력 2025.01.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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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 대일 때 꿈꾸던 서른의 모습은 어땠나.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가지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 적어도 지금보다 나을 거라 믿음이 있었다. 빨간 자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때는 내 삶의 확신이 있고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는 중일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런 모습을 기대했던 십 대의 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서른이 된 나는 달라진 게 없다. 자차는커녕 지하철 속 콩나물처럼 인파 속에 끼이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욕을 삼키다 화가 많아졌고, 앞으로 뭐해먹고 사냐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 서른. 나는 정말로 고작 자라서 내가 됐다. 여전히 오지도 않은 내일이 불안하고 걱정도 많으며 내가 필요할 때만 온갖 신을 불러와 기도하는 선택적 독실한 신도인, 그런 철없는 내가 됐다.

 


[크기변환]martin-reisch-y6fTK4k2J6c-unsplash.jpg

 

 

서른은 참 이상한 숫자다. 이전까지는 그나마 용인되던 철없는 행동들이 이제는 정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지는 나이. 아무 생각 없이 술이나 마시던 주변 친구들도 이제는 제 밥벌이를 해 먹고사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이제는 나보다 어린!) 아이돌을 좋아하고 실없는 농담에 배를 잡으며 깔깔 웃는다. 웃다 보니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아 자세를 고쳐 잡는다.

 

서른이 되던 날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함께 서른이 되는 친구들과 7평 원룸에 둘러앉아 좋아하는 밴드 얘기를 하다가 동영상 속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친구의 연애고민을 들으며 분개했고, 열변을 토하다 보니 어느새 제야의 종소리가 울렸다.


"서른 축하해." 1월 1일 자정이 되자마자 우리는 서로에게 서른 축하를 건넸다. 매년 먹는 게 나이인데... 축하할 일이 뭐가 있나 싶다가도, 앞으로 서른이라는 나이 때문에 더욱 불안해질 우리에게 보내는 서로의 응원 같은 거라 생각하니 목소리에 괜스레 힘이 실렸다.

 


[TTB]main.jpg

 

 

그러고 보니 앞자리가 바뀌는 부담감은 시대를 막론한 만국공통 현상인 듯하다. 뮤지컬 <틱틱붐> 속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둔 존은 절규한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이 무엇이냐며, 그가 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관객석으로 날아와 별안간 나의 가슴에 꽂힌다. 그러게... 나 그동안 뭐 했지?


존 곁에는 마이클과 수잔이 있다. 같은 꿈을 꾸던 마이클은 존과 달리 꿈을 접고 대기업 마케팅부에 들어간 뒤 승승장구 하는 것 같고, 수잔 역시 무용수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 반면 존은 만년 '유망주'라는 이름표를 단 채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그것도 8년째.


'이것마저 실패하면 내 인생은 끝났어.' 아직 오지도 않은 실패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존에게는 언제부턴가 '틱-틱-붐'이라는 환청이 들린다. 틱, 틱- 시간은 가고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자신이 언젠가 붐-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상상. 무대 위 존의 이야기는 어느새 서른이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가 된다.

 


[2024뮤지컬틱틱붐] 존(배두훈).jpg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렵다고 했나, 나 역시 존처럼 무언가 정말 잘 해내고 싶을 때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잘 해내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된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확신은 옅어져 가고, 시름시름 앓듯이 나의 열정은 시들시들 연약해져만 갔다. 이러다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지. 그럼 그동안 내가 들인 시간과 마음은 어떡하라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매몰비용을 계산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참 볼만했다.


가끔은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나타나 '이 일은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니 계속해도 된단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재능 따윈 없는데, 어쩌다 한 번 얻어걸린 운을 실력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자기 의심 속에서 그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 모든 시간은 성공을 위한 거름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 일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미래에서 찾고 있었다. 현재의 나에겐 하등 쓸모없었다.


뮤지컬 <렌트>의 흥행을 알고 있는 2025년 우리가 무대 위 서른 살 존에게 '당신은 세계적인 뮤지컬을 만들어낼 재능의 소유자니, 이 일을 계속해도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90년대 존의 삶에서 존은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한, 나는 나의 인생을 평생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바라볼 수 없다. 언제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나'라는 시선에 갇혀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니 일을 계속하는 이유 역시 내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 지금 나는 서른의 세상밖에 볼 수 없으니까.

 


[2024뮤지컬틱틱붐] 존(배두훈), 수잔(김수하), 마이클(양희준), 앙상블.jpg

 

 

이번 뮤지컬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워크숍을 마친 뒤 존이 그토록 염원하던 자신의 롤모델 손드하임에게 온 전화를 중간에 끊어버린 장면이었다. 존이 손드하임의 전화를 끊어버림으로써 극을 보던 관객들은 그 전화가 단지 잘 보았다는 형식치레의 전화인지, 아니면 뮤지컬의 제작을 권하는 전화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다만 이후 이어지는 서른 번째 생일파티 속 존의 표정을 보며 짐작할 뿐이다. 존이 뮤지컬의 꿈을 품고 계속 나아가겠구나,라는 걸.


우리 인생은 2시간짜리 뮤지컬이 아니다. 뮤지컬 <틱틱붐>이 끝나더라도 서른이 된 나는 계속 나의 삶의 살아내야 한다. 때로는 귓가에서 멈추지 않은 초침소리가 나를 좀먹는 것만 같은 시간도 견뎌야 한다. 미래에도 나는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여전히 내일을 불안해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하루를 다 쓰겠지. 내가 이 일을 계속하더라도 어린 시절 내가 꿈꿨던 서른의 모습은 평생에 걸쳐도 오지 않을 수 있다.


그 속에서 내겐 무엇이 남았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제 나는 대답할 수 있다. 매 순간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던 내가 남았을 거라고. 성공의 척도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남을 테니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최선을 다해보자고 말이다.


"서른 축하해." 내가 나아갈 서른 이후의 삶 앞에서 뮤지컬 <틱틱붐>이 던지는 응원의 힘은 제법 든든하다.

 

 

[백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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