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환상을 일으키곤 한다. 우리가 외국의 어느 지역 사진을 보며, 혹은 여행을 다녀온 후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먼 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이나 다른 지역 여행 가서 본 편의점이 익숙하고, 집 근처에 있는 유적도 익숙하듯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일상과도 같으리라 짐작해 본다.
어찌되었든 그 무지한 환상에 잡시 집중해 보기로 한다. <호라이즌>은 작가가 남극을 비홋하여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한다. 바꿔 말하면 나는 알지 못하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 모르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더불어 <호라이즌>은 단순 여행기가 아니다.
<호라이즌>은 자전적 성격을 의도하고 쓴 글이므로, 그 모든 곳의 체류에는 기다란 학습곡선이 내제해 있다는 점을 강조해 두는 게 좋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또는 언제 그것을 배웠는지(혹은 배웠던 것을 언제 다시 지워버렸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내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나도 항상 분명히 인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같지만 다른 나와, 얻었다가 지워지고 처음인 듯 찾아오는 깨달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책을 읽기 전 <호라이즌>이라는 제목이 어떻게 지어졌을까를 생각해 봤다. 위 표지 띠에도 적혀 있듯 작가인 배리 로페즈가 바라봤던 여러 곳의 수평선과 지평선을 말하겠지 하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험 속에서 확장되는 시야 또한 이야기하고 있을 것을 짐작하고 책을 읽었다.
나는 바 안에 있는 남자들에게 경멸보다는 이상한 애정을 느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처한 이 환경이 덫처럼 느껴진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말할 것만 같다. 집에서는 사랑이 식어버렸고, 갚아야 할 대출이 있으며, 아빠인 자신이야 어쩔 수 없이 이 따분하고 고된 노동에 묶여 있지만 아이들만은 그러지 않도록 자녀의 대학 학비를 저축해둬야 한다. 그는 매일 일하고, 일이 끝나면 그 일이 자기 내면에 가득 채워놓은 분노와 권태를 묻어버릴 마취제를 찾는다.
이들은 고용한 채굴 업계가-정부 규제에서 자유로운 기업들, 막대한 이익률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그들의 정책, 이 모든 일을 맹렬히 돌리는 홍콩, 뉴욕, 프랑크푸르트의 주식시장이-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둘러친 폭력과 절망의 음산한 장막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여기서 펼쳐지는 세기말적 도덕극에서 누가 진짜 악당인지 판단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 중에 천한 사람이 없듯 직업에도 귀천은 없지만 때때로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곤 한다. 그가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든가.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기에는 그들의 삶의 모습이나 배경을 멋대로 상상해 버리곤 한다.
위의 문장은 내게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을 주었다. 싸구려 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 이따금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푸념처럼 꺼내고 안주 삼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묘했는데, '자신은 죽음을 멀리 따돌릴 것이라고, 길가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저 운이 없었을 뿐 자신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과 '그들은 자기가 일에서 얻는 것에 흡족해하고 있다고, 자신들과 같은 입장이 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라면 단지 아둔해서 그런 것일 뿐이라 확신한다'는 내용이 그렇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넘겨짚는다는 게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를 반성하게 되면서, 누구에게나 살갗에 닿아 있는 문제를 남의 일로만 바라보는 무관심이나 그런 삶의 비애를 동시에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나라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일에 관심이 있고, 공감하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는 건가, 하며 또 한번 멋대로 그들의 삶을 넘겨짚어 버린 것 같다. 그런 아이러니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어디든 남극 대륙에서 잠을 자게 될 때면, 나는 내 머릿속 어딘가에 항상 남아 있는 것 같은 일들을 골똘히 생각했다. 기후의 교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진 삶 앞에서 어리둥절한 채로 배회하는 아이들, 어떤 사람들은 '공유지'라고 표현하는, 태양처럼 모든 사람에게 속한 장소들에 대한 기업의 착취 뒤에 자리한 탐욕, 내가 속한 국가를 포함하여 한 국가의 정부가 지닌 거짓됨과 이기심, 후아레스에서 마약 카르텔이 수백 명의 여성을 집단 살해한 다음 마약 카르텔의 조잡한 집단 임시 무덤인 나르코포사에 매장한, 잘 보도되지 않은 끔찍한 사건, 언젠가 내가 웨양의 야시장에서 목격했던, 열악한 우리에 갇힌 동물들과 그 신체 부위들이 담긴 바구니, 이런 생각들이 불러오는 우울감으 때로 내게 공연한 죄책감과 분노를 일으켰고, 어떤 때는 이런 감정이 그날 내가 한 일에 대한 기억까지 오염시키기도 했다.
전에도 느낀 적이 때로 있었고, 요즘은 더 없이 자주 느끼지만 세상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하기도 한다. 온정을 베풀던 시대가 있었나 싶을 때도 있다. 우물 안 개구리인 나조차도 그런 걸 체감하는데,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이보다 더한 추악한 모습들을 많이 본 작가는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잠깐 했다.
그런 작가에게 남극이라는 공간은 큰 위안을 안겨준 듯했다. 때떄로 상처 받고 끔찍한 순간들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을 경이로움을 줬다는 이야기에 남극이라는 공간에 호기심이 생겼다. 책에는 작가가 남극에 머물며 경험한 것들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남극에서의 연 날리기나 남극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마냥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은 갈등이나 어려움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서전의 역할을 똑똑히 하고 있다.
이 책은 두께가 있는 편인데, 그 두께 전체를 오로지 글로 구성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지치는 기분은 작가가 여행하며 느낀 피로나 때때로의 권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목차에 따라 장소가 변화하는데, 그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마음이 가는 대로 골라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간다. 단순히 경험을 위한 경우도 있고, 보고 싶은 것이나 배우고 싶은 것이 목적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일 수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적인 게 있다면 여행에서는 뭔가를 배우고, 이전과는 달라지는 것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이다. <호라이즌>은 긴 여행 속에서 작가가 보고 느끼고, 그리고 변화한 내용들을 빼곡하게 담아냈다. 우리는 <호라이즌>으로써 지구가 품은 아름다움과 그로써 얻는 지혜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한 번쯤 주목해야 할 세상 속 어긋난 이야기도 책 곳곳에 언급하고 있다. 기후 문제를 비롯하여, 공감의 결여로 시작된 갈등들을 작가는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결코 아름다운 것에만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긴긴 글로써만 그곳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인 듯하다. 종종 사진이 있더라면 대지의 아름다움을 느껴 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잊게 만들어주는 게 <호라이즌>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자연에 대한 묘사가 꼭 그 지형을 베껴자 놓은 듯하여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내기 좋다.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안전성을 놓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커다란 지혜와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저 너머 남극이나 적도에 꼭 한번 가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