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기묘한 세상에서 만나는 법정 재판 –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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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의 2013년 작품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가 10년만에 새로운 표지와 본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책은 피고인의 변론을 맡은 ‘소크라테스 변호사’와 피고인을 무작정 처벌하려는 ‘욱 검사’,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는 ‘염라대왕 판사’ 간의 공방을 통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법의 원칙을 22가지의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동화 또는 역사 속 인물들을 저승 법정에 불러내어, 그들의 유무죄를 가려내면서 현대의 법 개념을 코믹한 터치로 알기 쉽게 해설하는 이 책은 청소년 교양 도서로도 선정되며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법 상식 교과서’로 인정받았다.
- 책 소개 中
법은 우리 일상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으며 함께 하는 분야 중 하나다. 어쩌면 가장 친숙한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데, 친밀하다고 말하기엔 또 너무 어렵고 낯설기도 하다. 이는 법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법은 일상 곁에 있다고 이야기하기엔 딱딱하고 무거운 텍스트로 이루어져있다. 책을 열면 이론적인 학문이 쏟아지고, 내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에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법을 재미없는 미남과 비슷하다고 표현한다. 곁에는 두고 싶은데, 가까이하면 한없이 지루한 존재로. 신문 기사에서, 논리 대결에서, 시사 토론에서 법률 개념이 툭툭 튀어나오고, 견디지 못하고 좀 알아보려 책을 펴면 수면제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눈꺼풀이 덮이는 존재로. 하지만, 마냥 지나치기엔 법을 절대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는 이렇게 법에 대해 알고는 싶지만, 어려운 법에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하기 좋은 도서이다. 책은 특이하게도 400년 동안 지옥계를 다스린 염라가 연옥계의 재판관으로 임명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때, ‘연옥계’는 천국, 지옥과 함께 천계를 이루는 세계 중 하나로, 천국과 지옥으로 가기 전 재판을 받는 중간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지옥계를 탈출하는 것이 오랜 염원이었기 때문에 발령에 정말 기뻐하였는데, 문제는 그가 법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옥계에 돌아가기 싫었던 염라는 판사로서 판결을 내리기로 결심하고, 그러다 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총명한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변호사로서 일할 것을 권유하게 된다.
즉, 이 책에서 법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가 ‘염라’고, 이야기를 하고있는 책이자 저자가 ‘소크라테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저자가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에 감탄을 했다. 무작정 이론을 설명한다고 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중도 또한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수업을 진행할 때, 사례나 경험을 통해 이론을 가르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는데, 이 책이 바로 이러한 사례를 녹여낸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내 어려운 법적 개념과 재판을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책 속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도로시’이나 ‘성냥팔이 소녀’처럼 동화 속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김선달’이나 ‘고흐’처럼 실제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태원 살인사건’, ‘O. J. 심슨 사건’처럼 실제로 등장한 사건을 다루기도 한다.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법과 최대한 친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 덕에 우리는 잘 모르는 법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 속 재판장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각자의 사건에 맞게 여러 시각에서 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형사재판의 원칙에서 등장했던, 미란다는 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인물인데, 책에서는 아동을 납치하여 법정에 서게 된다. 검사는 범인이 자백도 했고 증거도 완벽하다며 자신만만해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묵비권에 대해 이야기 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체포 당시 묵비권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수사 동안 어떠한 불법 행위가 있었을지 모르며, 법을 어긴 수사로 얻은 증거는 무효이기 때문이다. 염라는 미란다가 마음에 들지 않고 정말 싫지만, 이 사실 때문에 결국 무죄를 선고하게 된다. 이런 방식처럼 저자는 이야기나 역사 속 사건을 재판으로 재구성해 법의 기초부터 심화까지 천천히 다룬다.
민사 재판의 경우, 돈의 시각과 관련하여 이야기하는데, 소제목을 ‘거의 모든 재판에는 돈 문제가 걸려 있다’라고 지을 정도로 돈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민사’라는 것이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가 벌어졌을 때 벌어지는 재판인데, 대다수가 재산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이기 때문이다. 정말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적은 금액의 문제가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돈이 얼마나 재판과 연관이 많은지 알 수 있다.
책에서는 ‘베니스의 상인’의 이야기를 재판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원작에서는 샤일룩이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서는 1파운드의 살을 가져갈 수 없으므로 패배하는 내용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이는 원작만의 결말로, 이 재판에서는 조금 다르게 다뤄진다. 소크라테스는 ‘살을 1파운드 가져간다’라는 계약은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한다. 현대로 예시를 들자면 신체 포기 각서를 받고 돈을 빌리거나, 불법인 도박으로 진 빚은 같은 법적 원칙에 따라 무효인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이처럼 형사, 민사 등 다양한 법의 분야에 맞게 재판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방식이 참신하고 재밌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책은 이야기를 서술로 구성하는 것이 아닌 재판에 참여하는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그대로 옮겨적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여기에 더해 톡톡 튀는 재판장 속 인물 덕에 더욱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적인 소크라테스, 인간적인 염라, 자신만만한 검사들의 티키타카를 보다 보면 금세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식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이 등장하면 이를 볼드체로 처리하여 명확하게 지식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책의 섬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여담으로, 출판사에서 <사소한 불행에 인생을 내어주지 마라>라는 책을 함께 보내주셨는데, 이 책은 52가지의 이야기와 해설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철학 또한 법과 마찬가지로 일반인이 접하기엔 벽이 높은 학문인데, 입문자들을 위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매주 한 편씩 읽고 쓰고 마음에 새겨 52주 동안 철학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책으로 다음엔 이 책을 읽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정소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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