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출산과도 같다.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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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느덧 작년인) 2024년 무더운 여름이 한가운데 있는 8월의 어느 날, 철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2021학년도 2학기에 입학하여 2024년도 2월 졸업을 바랐으나, 그 꿈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4년도 2월에 졸업을 하려면 적어도 직전 학기인 2023년 여름에는 심사를 받고 최종 심사까지 통과해야만 했는데,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게도(경상도 사투리로 마치맞게도), 2023년도 여름은 필자에게 있어 논문 작성-통과의 루트와 난생 처음 정식 신입 직장인의 루트라는, 그 큰 두 과제를 모두 해내야만 하는 시기였다.
필자는 학부부터, 조금 치기어린 마음으로 본인을 설명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엄청나게도 좋아했다. 여타의 다른 고등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다른 과목은 재미가 없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처음 듣게 된 윤리와 사상-이하 철학- 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 느꼈던 충격의 의미를 자세히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그것이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느낀 공포가 아닌, 그것에 대해 내가 일종의 동질성을 강하게 느낀 것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이런 답도 안 나오는 고민들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어?"라는 일말의 안도감과 놀라움이 뒤섞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윤리와 사상 과목의 점수는 다른 과목에 비해 월등히 좋았고, 내 고민의 대다수의 퍼센트를 차지하는 학문을 대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면 앞으로의 나날이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 수시 6개(학교)를 모두 철학과로 지원했다. 그 소식을 윤리와 사상 과목 선생님께 알려드렸을 때 어두워졌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이 다가올 때 쯤에는 선생님이 지었던 표정의 의미를 차츰차츰 이해해갈 수 있었다.
대학교 고학년부터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졸업 이후의 진로를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누구나 그런 것이지만) 취업과 직결된 전공은 아니었기에 엄청난 고심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어떤 특정한 철학자를 전공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확히 내가 한 고민과 사고의 과정을 풀어나간 철학자를 찾고 싶은 열망이 큰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일종의 테스트를 했다. 학부를 졸업하려면 학부 졸업 논문을 쓰거나 졸업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전자를 해보고 싶기도 했고 후자의 출제 범위가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나름의' 논문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써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논문을 지금 한 번 써봤을 때, 흥미와 성취를 느끼면 그때 대학원을 가는 것으로 하자'라고 호기롭게 마음먹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리고 석사 졸업을 한 지금의 시점에서 그때를 복기해본다면, 석사 논문 작성의 체험판을 그때 겪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박사 논문을 쓸 때도 석사 논문이 박사 논문의 체험판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학부 논문 작성 후 통과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성취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때 나는 대학생 시절 계속 찾아다닌, 나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풀이 과정이 비슷한 '아도르노'라는 철학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학부 졸업 논문을 통과하고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계속 남아 있었는데, 무려 3가지나 되었다. '1) 철학과 대학원을 간다, 2) 미학과 대학원을 간다, 3)문화예술경영 대학원을 간다' 2)와 3)을 고민한 것은, 이것은 필자가 가진 가치관이기도 한데, 필자는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발견해낸 인문학적 가치들이 매체를 통해 어떻게 '수용'되는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고민 끝에 전공을 심화해서 철학과 석사를 밟는 것이 내 본연의 관심의 깊이를 증폭시키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입학하여 많은 수업을 듣고 이제 슬슬 논문을 작성해야 할 시기가 임박했을 때에도, 나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고민만이 무수할 뿐 그것에 대한 논리적 풀이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때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직장 사회에 적응해야 했던 나머지, 그 논리적 풀이를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얼버무린 채로 2023년 하계 논문 심사를 신청했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탈락이었다. 탈락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탈락'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파장이 컸고, 어쩌면 졸업하지 못한 채 수료로 남을 것이라는 비관 하에 근 두 달 간 책과는 물리적 및 심리적으로 거리를 둔 채 직장을 출퇴근했다.
그렇게 2024년이 되었고, 약 1년 전 지금 시기 즈음부터 다시 새로 써보고 싶다는 동력이 생겼고, 논문 작성에 필요한 책들을 내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염두에 두고 다시 꼼꼼히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읽었다. 그런데, 그렇게 목적을 분명히 하고 책을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 고민에 대한 풀이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근본 질문부터 풀이의 과정 전체를 책을 읽어나가면서 손으로 종이에 정리를 했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하나가 풀리지 않을 때 책을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힘들게 그 해답을 찾아갈 때면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기도 했다.
그때부터 속도가 나기 시작하여, 3개월 만에 초고를 작성하였고, 두 달 동안의 두 번의 심사를 거쳐 6월에 드디어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퇴근하고 사무실에 남아서 논문을 쓰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였었는데, 심사를 두 번 받았을 때에는 이미 체력이 고갈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최종본 제출까지 소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에', 7월 중순에 최종 출력본 제출을 목표로 있는 힘을 다 쥐어 짜내어 수정의 수정을 거치어 그렇게 최종 승인이 나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힘든 과제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 그리고 안도감이 내게 드는 주도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졸업이 임박할수록, 그리고 졸업을 하고나서는 점점 더 쇠약해지고 방향성을 잃은 채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다. 졸업을 한 지 한 달, 두 달, 세 달 그렇게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몸은 기력을 잃어 갔고, 앞으로 이끌어나갈 내 삶의 방향이 더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오히려 반복되는 출근-퇴근 패턴만이 남게 되어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반 년이 지나, 마치 작년 이맘때 쯤 다시 동력을 얻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 이맘때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다시 기운을 차리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고민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되었다. 졸업하기 전에는 '논문만 쓰면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삶이 단순했지만, 이제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나는 내가 겪고, 이루어냈던 것의 가치를 '나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임산부가 열 달동안 아기를 소중히 뱃속에 품고 키우고 또한 출산이라는 고통의 과정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존재를 곁에 두게 되는 것과 같이, 논문 혹은 숙고된 글쓰기는 일종의 정신적 출산과도 같다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는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방황을 끝낼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나아가 학부 때부터 고민했던 질문인,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발견해낸 인문학적 가치들이 매체를 통해 어떻게 '수용'되는가'의 문제를 여전히 나는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그 가치를 탐구하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그러한 가치들을 어떤 매체를 통해 표현할 것인지 그 매체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기에 있다.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라 더 이상 밝히기는 어렵지만, 다음 코스인 '매체'에 대한 공부를 통해 나에게 소중한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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