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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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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는 새로운 언어적 실험을 보여주며, 주인공이 일관되게 내비치는 '무관심'의 태도로 독자를 무심히 이끈다.


이 소설의 저자 조르주 페렉은, 1936년 파리 태생의 프랑스 작가로 각양각색의 언어적 실험을 소설 내에서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첫 작품 『사물들』로 르보노상을 수상한 페렉에게, 독자들은 『사물들』처럼 당대 젊은이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페렉은 "가능한 모든 장르의 글을 써보고 싶다. 한 번 쓴 장르는 다시 쓰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계속하여 변모할 그의 소설적 세계와, 언어 실험의 장을 예고하였다.

 

『잠자는 남자』는 2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로, 어느날 세상에 '무관심'해지기로 한 남자의 사건과 만남이 배제된, 일상을 묘사하며 전개된다. 자기 존재에 대한 거부이자 세상에 대한 거부이기도 한 이 '무관심'이라는 태도는, 시간을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무의미한 순환으로. 공간은 그저 변모하기만 하는, 의미없는 공터로 치환하며 존재 자체의 고독을 그려낸다.

 

남자의 목소리는 텍스트 바깥에서만 존재하며, 2인칭 관찰자 화자의 목소리로 독자에게 남자의 삶을 체험시키고, 이 '무관심'이라는 행위에 동참시킨다. 그것은 남자에게 '시간'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순환적 흐름일 뿐이며, 인간과의 만남, 욕망,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의미있다'라고 생각해 채워넣은 삶의 면면을 걷어내고 나자, 이 소설에는 표면과 뼈대만을 낱낱이 진술하는, 냉혹한 카메라의 시선이 남게 되었다. 끊임없는 쉼표와, 콜론, 세미콜론은 소설을 통해 페렉이 그려내고자 하는 '무관심'을 문법적인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완성시킨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세미콜론은 자주 사용되지 않은 기호라, 원문만큼 깊이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끊어지고 이어지고, 강조되고 접촉되는 언어적 실험은 번역을 거치고 나서도 내게 매우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2. 누보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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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로망 사조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다양한 언어적 실험을 시도하는 전위문학을 말한다.

 

처음에는 로브그리예의 소설 『질투』에 대한 멸칭이었다. 그러나 로브그리예는 그 호칭을 마음에 들어했고, 자신의 출판사 '미뉘'를 중점으로 이러한 사조를 가진 문학의 실험장을 열었다.


이때 사용한 호칭이 '누보로망'이며 후일 영화의 '누벨바그' 사조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  동일한 방향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들로 구성되고 정의된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의 유파를 지칭하기 위함도 아니다.

 

- 새로운 소설의 형식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 인간과 세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시키는 편리한 호칭일 뿐이다.

 

알랭 로브 그리예, 『누보로망을 위하여』 중

 

 

누보로망은 '소설에 대한 소설'. 즉 소설의 형식 그 자체에 집중하여, 소설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 그 지평과 한계로 달려보고자 하는 사조로 볼 수 있다.

 

나탈리 사로트,  클로드 시몽,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이 이 사조에 속하는 작가라 볼 수 있다.

 

예술사는 크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두 사조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누보로망은 소설의 형식 자체에만 몰두하는, 그 균열 사이에 있는 갈래라고 볼 수 있다. 그 자체로 문학적인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난해하고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하는 점 때문에 서서히 해체되어 한 세기를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실험과 언어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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