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 갤러리아포레까지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시외버스에서 미루고 미루던 「시네마 천국」을 봤다. 따뜻하고 노곤해서 그냥 잠들어버릴까 고민하다가도 정신을 차렸다. 전시의 근본이 되는 영화의 내용을 모르고 가면 소외감이 들 것 같았다.
그렇게 패딩에 파묻혀서 영화가 전부였던 소년 '토토'를 만나게 됐다.
토토와 알프레도
50년대,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동네에서는 침체된 분위기가 흘렀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편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삶은 여전히 팍팍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웃음을 찾는 공간이 있었다. 바로 광장에 있는 낡은 극장 '시네마 천국'이었다.
소년 토토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극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영화를 좋아했지만, 토토는 조금 남달랐다. 다들 스크린을 보며 집중하는 와중에 뒤돌아서 영사기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영사 기사인 알프레도와 눈이 마주쳤다.
알프레도는 처음에 어린아이를 귀찮게 여겼다. 성당 신부의 검열 때문에 키스신이나 노출신의 필름을 잘라내고 있는데 불쑥 들어와서 구경하니 좋을 리가 없었다. 당장 나가라며 겁을 주고 홀대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영사실 출입을 허락하게 된다. 그리고 골칫거리 같던 아이에게 영사 기술을 알려주다가 정이 들었다. 그렇게 토토가 청년이 될 때까지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때로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었고, 가끔은 영화를 사랑하는 동료였고, 대부분은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토토가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서 좌절하게 된다. 다시는 없을 첫사랑이었다. 슬픔에 빠진 그에게 알프레도는 진심으로 조언하기 시작했다. 이제 마을에 남을 이유가 없는 토토에게 오랜 생각을 꺼내놓게 된다.
여기를 떠나라! 로마로 가! 넌 젊어, 세상을 거머쥘 수도 있어. 난 늙었다. 이렇게 너랑 수다 떨기 싫어. 멀리서 네 명성만 듣고 싶다.
재능 있는 토토가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별 볼 일 없어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사랑하던 영화를 배우기를 바랐다.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결국 진심을 받아들인 토토는 마을을 떠나게 된다. 몇 번이고 당부받은 대로 알프레도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으며 30년을 보냈다. 그쯤에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알프레도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그제서야 당부를 어기고 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알프레도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전시
「시네마 천국」을 현실로 끄집어낸 몰입형 전시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특별전이다. 총 1,000평의 대규모 전시장에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옮겨왔다. 성수동에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특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전시관은 크게 Analog, Analog & Digital, Digital 3개 구역으로 나뉜다.
1구역인 Analon에서는 'Nostelgia & Memory'를 주제로 한다. 어떤 장소나 시간, 또는 삶의 한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노스텔지어를 자극한다. 2구역인 Analog & Digital은 현실과의 불가피한 만남과 시간의 흐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기억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과거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교차할 때 비로소 현실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지막 3구역 Digital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시네마 예술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한다.
영화의 장면 속으로 뚝 떨어진 듯
아무래도 몰입형 전시의 꽃은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영사실에 발을 들인 순간, 「시네마 천국」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토토와 알프레도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공간을 한참이나 넋을 놓고 구경했다. 안 그래도 15분 전에 영화를 본 사람에게 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구성이었다. 과몰입이 심해져서 시칠리아 어딘가에 그들이 존재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즐거움은 커져만 갔다. 영화와는 조금 다르지만 작고 귀여운 영화관, 알프레도가 사람들을 위해 빔을 쏘아주었던 거리, 그리고 토토가 엘레나와 행복하게 뛰어다니던 밀밭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은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실제 촬영 소품들과의 만남
감동을 이어 나간 것은 실제로 영화에 사용되었던 소품들이었다. 제작사의 희귀 소장품부터 이탈리아 시칠리아 박물관의 소장품과 스케치까지 약60여점이 공개되었다.
영화의 의상과 세트 디자인은 '베아트리체 볼도니 불가리'가 맡았었다. 그녀가 직접 그린 영화 등장인물들의 의상 스케치와 실제 영화에서 구현된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서 흥미를 끌어낸다. 여기에 시칠리아에서 날아온 오리지널 의상들까지 더해져서 영화 팬들의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사용했던 자전거에 가장 관심이 갔다. 토토와 알프레도가 앉았었던 바로 그 자전거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보관 상태가 좋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었는데, 영화의 오랜 시간이 느껴져서 오히려 좋았다. 새삼스럽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1990년에 나온 영화가 2025년까지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극장판과는 다른 감동을 선사하다
사실 「시네마 천국」은 155분의 장편 영화였다. 그리고 개봉 당시에 흥행에 실패하며 거의 모든 극장에서 조기 철수를 했었다. 제작사는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긴 상영 시간을 지목하며, 감독에게 영화를 축약할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처음 구상했던 결말과는 크게 다른 극장판이 나오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작사의 반대로 삭제되었던 마지막 부분을 특별히 공개했다.
추가된 장면으로 인해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감상이 크게 바뀌어서 놀랐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단순한 성장 이야기에서 로맨틱한 서사로 격상시키는 핵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엘레나와의 사랑에 더욱 집중한 감독판이 더 좋았다.
삭제된 내용을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감독판과 극장판을 비교해 보고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해서 깊이 사유하는 전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특히나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전시장 근처에 카페거리가 있으니, 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감상하고 곧바로 전시를 보러 가면 완벽할 것 같다. 「시네마 천국」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시네마 천국 이머시브 특별전」은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오는 3월 30일까지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