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가운 땅 위 고요한 투쟁 - 하얼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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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위해 목숨을 불사른 독립운동가들을 후세의 한국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많은 매체 속의 독립 투사는 강인하면서도 민족을 사랑하는 정 많은 인물로 그려지는 일이 흔하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민중의 한 명으로 이들을 조명하면서 동정심을 자극함으로써 이들의 고결한 정신을 강조하기도 한다.
뜯어 보면,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냉철한 이성이 아니라 일상의 폭력에 대한 분노다.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 날에 독립이 오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기꺼이 죽음에 달려드는 모습은 어찌 보면 비이성에 가깝다. 독립 운동을 소재로 다루는 매체가 감정의 폭발을 쉽게 유도하는 것은 이러한 독립 운동가들이 주역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독립 운동 영화는 성공했던 작전을 소재로 서스펜스를 선사하면서 관객이 사전에 알고 있는 결과를 영상으로 재구성해 카타르시스를 효과적으로 유발한다. 같은 역사를 경험한 관객들은 스크린 너머로 뜨거운 감정을 전달받고 역사 의식을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독립 영화의 민족주의적인 특성상 감독은 배우의 입을 빌려 독립 운동가들의 긍지와 존재 의의를 선언하는데, 이러한 말은 후세를 계몽하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관객은 영화와 무척 가까이 있다고 느끼기 쉽다.
최근 개봉한 <하얼빈>은 기존에 봐 왔던 독립 운동 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너른 빙판 위를 혈혈단신으로 외롭게 걷고 있는 안중근의 모습을 비추는 시퀀스는 안중근의 모습보다도 화면 가득 찬 자연의 모습에 숨이 막히게 했다.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의 광활한 풍경과 그 가운데 작은 소품처럼 놓인 인간을 보며 영웅의 풍모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군말 없이 행동하는 모습은 맹목적으로 보여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얼빈>은 대사를 줄이고 빛과 자연, 액션으로 채워진, 단조로움과 담백함 사이에 선 묘한 매력을 지녔다. 안중근과 동포들은 오래 작전에 관해 논의하거나 심하게 다투는 일 없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들의 얼굴에는 내내 긴장과 근심이 서려 있고 암약하는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는 것인지, 죽은 동포를 기리려는 것인지 늘상 어두운 색의 복식을 하고 있다. 어둠에 가려 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이러한 점에서 감독이 스펙타클보다는 이들의 내면에 침잠해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에 더욱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많은 죽음과 무기력에 지쳐 있으면서도 임무를 위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하얼빈>은 이러한 역설을 이용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공포를 거스르고 독립 운동가의 길을 걷는 이들의 의지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하얼빈>에서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활용한 점은 특히 눈에 띈다. 영화에서 빛과 어둠을 그리는 방식은 <하얼빈>의 차갑고 건조한, 그러면서도 결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연출의 축이다. 태양 아래 몸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꿈꾸는 독립 운동가들은 조선의 누구보다도 어두운 곳에 있다. 창으로 드는 빛은 이들을 마치 뒷골목의 마피아로 착각하도록 조각하는데, 실제로 소탕해야 할 범죄 조직으로 취급받았던 현실을 표현하는 듯한 연출이다.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의 물리적인 핍박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긴다. 이들은 암담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죽음에는 이골이 나 있으며, 오감이 예민해진 상태다. 때문에 빛은 희망의 상징이라기보다도 감시 혹은 먼 미래에 대한 환상과 가까운 의미로 다가온다.
안중근이 제공받은 거처에서 최재형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그는 침대에 앉지 않고 창틀 옆 좁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기도하듯, 애원하듯, 사죄하듯 무릎을 꿇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에게 빛은 먼저 세상을 뜬 동포들의 시선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진다. 빛이 드는 침대에 앉기보다는 굳이 불편한 바닥 구석에 앉아 죄책감을 자극하는 빛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계획을 단행하자며 읍소하는 그의 얼굴에 드는 빛은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동포들이 있는 세계로 가기 위해 안중근이 계획하고 있는 그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견된 계획 성공의 장면을 고대하며 가슴이 뛰기보다도, 따뜻한 상영관 좌석에 앉아 스크린 너머 한기를 느끼며 마음이 씁쓸해졌던 것은 런닝타임 내내 제시되는 이러한 죽음의 메타포 때문이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하얼빈 또한 그 자체로 어둠과 죽음의 상징이다. 하얼빈이 대한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중국의 땅이면서도 당시 실질적으로 러시아가 지배했다는 점,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조망한다.
겨울을 넘기면 봄이 찾아온다. 안중근은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끝은 하얼빈의 겨울에 있었다. 안중근은 암울한 겨울을 이겨내고 조국을 구하는 난세의 영웅보다도 공포의 추위 속 떨면서 스러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싸우겠다는 의지를 공표하고자 스스로 손가락을 자를 정도의 초월자로 보이면서도, 그가 지닌 두려움의 편린을 계속 엿볼 수 있다. 내면의 두려움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결심하고 어떻게 죽을지를 선택한 그의 모습 앞에서, 독립을 맞이한 후세의 생(生)은 더욱 생생해진다.
<하얼빈> 속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해야만 했던 투사들의 차가운 땅 위 고요한 투쟁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는 현재, 그 어떤 독립 운동 영화보다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서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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