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호라이즌_앞표지_띠지.jpg

 

 

누군가의 여행기가 이토록 시적일 수 있을까?

 

 

거품을 일으키는 저 거센 파도가 다른 어딘가에서 이 해변으로 온 것임을 아이는 이해한다. 해변에서 온화한 공기는 아이를 따사롭게 감싸고, 해안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아이의 흰 피부를 태울 듯이 내리쬐는 햇볕을 누그러뜨리며, 햇빛은 아이의 발아래 모래 속 석영 조각들에 부딪히며 부서진다.

 

- '호라이즌' p.24

 

 

이 책을 처음 마주하면 그 두께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우리는 배리 로페즈가 묘사하는 광활한 자연과 공간 묘사에 흠뻑 매료된다. 독자는 어느새 파울웨더곶을 지나 캐나다 스크랠링링 섬을, 동부 적도 아프리카의 자칼 캠프를, 남극의 흥미로운 공간을 마주할 생각에 들뜨게 된다.

 

도서 '호라이즌'은 배리 로페즈가 집필한 장편 도서로,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아프리카 케냐,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경험한 공간들과 그 공간에서 이어간 사유가 담겨 있다.


 

파울웨더곶에서 마주하는 것들, 내 앞에 펼쳐진 변화무쌍한 바다의 광대함, 허공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바다사자 우짖는 소리, 내 뒤에 자리한, 거의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듯이 빽빽한(아직 살아남은) 시트카가문비나무의 작은 숲, 이끼로 뒤덮인 개울가 바위, 해변 바로 앞바다에서 멸치 떼 위로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갈매기 떼, 늦겨울 폭풍우로 연타를 날리는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이 모든 게 아직 여기 남아 있다.

 

- '호라이즌' p.111

 

 

그의 유려한 묘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저자가 직접 눈으로 보고 온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감상의 표현이자 그가 느끼는 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진실로 그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더 깊숙한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여행과 공간이 끌어내는 질문과 성찰


 

저자에게 있어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를 따라 온 지구를 누비는 저자 배리 로페즈에게 있어 여행은 경험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공간의 의미를 확장하고, 그 공간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의미와 목적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로 규정되지 않는다.


여행이 경이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뿌리를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주지를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또렷이 볼 수 있다. 여행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본질적 특징을 넘어 인류의 출발과 그들이 걸어온 발자국을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크기변환]lighthouse-5900962_1280.jpg

 

 

물 흐르듯 이어지는 문장들은 어느새 깊은 철학적 물음에 다가가 있다. 저자는 여행하며 만나는 공간에서 인문학적 사유를 깊이 있게 끌어내는데, 그의 사유와 질문들은 지금의 인류가 서 있는 지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찰하도록 한다. 특히 인간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문제들을 끌어내며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깊이 생각하도록 한다.

 

 

때로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한없이 바다를 지켜보고 있을 때면 현대의 삶에서 정나미를 떼게 하는 윤리적 부패를 이해할 다른 어떤 방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었다. 예컨대 통치 기구가 그 내부에 깊이 뿌리박힌 비리를 관대히 넘기는 경향, 사법 외적 살인을 국가의 합법적인 도구로 포용하는 것, 특권 의식이 잔뜩 밴 권력 쥔 자들의 태도, 다른 사람들에게 광신적인 천국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종교적 광신도들의 충동 따위의 현상을 말이다.

 

- '호라이즌' p.123

 

 

저자는 때때로 파괴와 같은 인간의 행위와 순수성을 대표하는 자연의 상태를 대비시키며 독자에게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고 성찰하도록 한다. 그의 담담하고 진중한 문장들은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는 동시에 누군가는 인류가 자연에 가하는 여러 행위들을 기억하고 끄집어내야 한다고 느끼게 한다.

 

 

어떤 관점으로 보든, 우리가 더욱더 개발해 이익을 뽑아내겠다고 껍질을 벗기고, 채굴하고, 산업적으로 경작하고, 굴착하고, 오염시키고, 빨아내고, 끊임없이 조작하는 지구, 목 졸린 지구가 지금 우리의 집이다. 우리는 그 상처를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상처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중 다수는 묻는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하고.

 

- '호라이즌' p.120

 

 

깊은 성찰과 사색의 문체는 우리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한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인간이 그 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깊은 사유를 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그는 공간과 엮인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연결한다. 파울웨더곶의 묘사에서는 계몽주의 시대가 끝나가던 과도기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깊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항해와 세계 일주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제임스 쿡에 관한 교차하는 여러 평가를 소개하며 그가 방문한 공간에서 그의 삶을 자신과 인류의 삶에 투영한다. 우리는 쿡과 맥도널드, 뱅크스와 같은 과거의 인물들로부터 탐험과 항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

 

 

[크기변환]iceberg-8532935_1280.jpg


 

이외에도 저자는 캐나다, 적도의 아프리카, 호주의 남동부, 남극 대륙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방문하는 여러 공간의 이야기와,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분야를 넘나드는 사색을 진중하게 묘사한다.저자의 묘사는 때로는 예술의 역사와 그 정의를 논하고, 때로는 기계와 인간을 대비하여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특별함을 상기시킨다.

 

 

 

수평선, 그 너머의


 

이렇듯 저자의 모든 여행은 '탐구와 성찰'로 귀결되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저자에게 있어 수평선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구든 이러한 무시무시한 지평선을 마주한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쪽을 선택할 수도, 대시 아름다움에 탐닉하기로 마음먹거나 전자 기기에 주의를 빼앗긴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쪽으로 선택할 수도, 자아의 요새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고립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 '호라이즌' p.89

 

 

수평선, 지평선, horizon은 배리 로페즈에게 있어 공간의 끝이 아닌 탐험과 경계의 확장을 의미한다. 수평선은 공간의 진실과 사유를 끌어내는 또 다른 시작이다.

 

 

[크기변환]sea-4710533_1280.jpg

 

 

우리는 공간의 의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광활하고 아름다운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연의 존재를, 인류가 만들어 온 발자취를 직면하고 보다 성숙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가?

 

수평선은 배리 로페즈와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인류가 걸어가야 할 수평선 너머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보도록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잔잔하고 아름다운 공간의 묘사에 매료되었고, 동시에 현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은 자연 앞에서 아주 작은 존재임을 책 곳곳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행'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단 한 권의 책만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그 공간들에서 깊은 사유를 향유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효주.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