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험난한 한 학기였지만, 아주 인상적인 수업 하나 덕분에 명확한 즐거움이 남았다. 어쩌면 대학에 와서 들은 강의 중 가장 즐겁게 들었던 과목일지도 모르겠다. 유산과 문화의 역사에 기반해 한국의 문화외교를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강의였는데,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으로서 문화란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 아니던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세계유산과 유네스코가 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들의 노력이 전 인류적인 가치를 어떻게 수호하는지 배웠던 학기의 시작부터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금 더 미시적으로 접근했던 한국의 유산과 문화의 차이점이었다. 운 좋게 기말고사 에세이 문제로 등장했었는데, 조금 더 잘 쓰고 싶었던 아쉬움이 남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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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산과 문화


 

왜 한국의 유산과 문화가 흥미로운가?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한국의 유산 산업과 영국의 유산 산업은 그 구조가 매우 다르다. 한국은 완전히 국유화되어 모든 발굴 현장을 정부가 주관하고 통제하는 반면, 영국은 상당 부분 사유화되어 개인이 발굴을 진행할 수도 있고, 심지어 외국인도 교육 이수 시 발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무엇이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드는지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구 식민지국과 구 식민 국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국은 ‘세계 최초’의 무료 국립 박물관이 존재하는 국가로, 셀 수 없이 많은 타 국가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구 식민지로서 국가의 정체성을 발굴하고 재정립해야 했던 한국의 역사적 기반과는 매우 다르기에 문화적, 제도적 차이가 생긴 것이다.

 

유물이랄 게 있는 박물관은 무조건 국립/공립이고, 유산 관련 분야를 공부하려는 학생의 태반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로 진학하는 환경에서 자란 나에게 정부가 유산 분야를 독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당연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나에겐 학문의 가장 큰 흥밋거리다.

 

이 수업이 나에게 잘 맞았던 이유이자 강의의 최대 강점이 바로 이 ‘새삼스러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새롭고 신기한 일들을 연결해 큰 그림을 바라보고. 타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정부의 문화유산 분야 속 존재감과 연결했다. 이러한 역사를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해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정부가 ‘우리 문화’를 만들고 홍보하는 방식까지 이어지는 수업의 과정이 즐거웠다.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이 아닌 토의와 발표, 과제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정책/압력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한 한국의 문화를 다시금 생각하고, 이 연결점들을 다면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이 학구적으로 너무나 즐거웠다.

 

 

 

서사의 싸움


 

수업을 이렇게나 열심히 들었다면 에세이가 쉬웠지 않았겠냐고? 안타깝게도 아니다. 아직도 글이 서툰 나에겐 연결된 사고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언제나 가장 어렵다. 그냥저냥 들었던 강의라면 나름 잘 썼다며 자기 위안 삼았겠지만, 열심히 들었던 수업이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가장 큰 후회는 “한국의 유산과 문화가 무엇이 다른지 서술하시오.”라는 질문의 답에서 미처 적지 못한 ‘서사’라는 단어다. 발표 과제였던 ‘한국의 문화외교 중 지나치게 혹은 부족하게 대표되는 분야 탐구’ 중 내 발표 주제였던 ‘한국의 시위 문화’를 언급했는데, 팀원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루며 이야기했던 시민들과 정부 간 “서사의 싸움”이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서야 생각이 나서 아쉬웠다.

 

 

   

미처 적지 못한 문장들


 

서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일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요소고, 나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누가 주로 쥐는지가 한국의 유산, 문화의 명확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유산은 부정할 수 없이 정부의 이야기이다. 당장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유산만 해도 정부의 요청 없이는 등재될 수 없고, 앞서 서술한 한국의 역사적 특성상 유산과 유산을 이용한 국가 서사는 정부의 소유다. 물론 시민이 정부의 유산 보호와 등재, 관리를 감시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며 이어나가며 큰 역할을 하지만, 그들을 지원하는 주요 참여자가 정부임에는 이견이 생기지 않을 테다.

 

그러나 문화는 다르다. 문화는 끊임없이 서사 싸움이 지속되는 분야다. 유산과 문화를 비교하는 대표적인 두 단어가 하향식과 상향식인데, 유산은 정부에 의해 발굴되고 지정되는 반면 문화는 시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의 문화’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케이팝, 혹은 케이 드라마만 해도 그 시작에 정부가 아닌 대중문화가 있지 않았는가? 이처럼 문화는 정부와는 상관없이 등장하고 사라지며, 때로는 정부의 영향에 순응하거나 반하는 형태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문화는 시민의 이야기고, 시민 사회의 독립적인 행동 혹은 시민과 정부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가 이어진다.

 

그래, 바로 이 부분에서 정부의 영향에 반하며 생성된 문화가 시위 문화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부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재, 민의에 어긋나는 정책,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며 생성된 사회 현상인 시위에 한국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녹아들어 형성된 ‘한국의 시위 문화’ 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화가 정립되어 문화유산으로 남아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평판을 만들고, 정부가 이를 홍보하며 문화외교의 자산으로 사용하는 순환이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아쉽게도 적지 못한 중요한 문장이다.

 

 

 

다음 ‘명강’을 기다리며


 

종강하고 나면 한 번쯤은 이번 학기의 ‘최애’ 강의를 생각해 보곤 한다. 애정의 기준은 ‘명강’일 수도, ‘꿀강’일 수도 있지만, 나는 보통 명강, 그러니까 내가 많이 생각하고 또 깨닫게 이끌어준 강의를 최애 강의로 꼽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또 다른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강의들. ‘이런 강의를 위해 대학에 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구적으로 흥미로운 수업을 늘 바란다.

 

그러니 매번 학습량에 허덕이면서도 흥미 본위의 강의들만 고르는 거겠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다음 학기에는 부디 미래의 내가 공부량을 고려해 신청하길 소원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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