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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뮤지컬 〈위키드〉의 실사영화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를 원작으로 한다.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를 사악한 서쪽 마녀(엘파바)와 착한 북쪽 마녀(글린다)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이야기이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오즈의 마법사와는 달리 위키드는 전체적으로 현실에 대해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풍자가 깔려있다. 난 이 영화를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기존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 음악, 배경과 소품들 그리고 인물들까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온통 엘파바뿐이었다.

 

 

 

에메랄드 소녀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를 가진 소녀이다. 헐크같이 온몸이 초록색인 사람. 먼치킨랜드 영주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심지어 그의 친아버지에게도 멸시를 받는다. 엘파바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영특한 두뇌와 침착한 성격,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마법의 힘까지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엘파바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거나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서 엘파바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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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파바에게는 네사로즈라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엘파바에게 매정한 아버지는 네사로즈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하다. 네사로즈가 쉬즈라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걷지 못하는 막내딸이 걱정되었던 아버지는 다짜고짜 엘파바에게 학교에 남아 동생을 돌보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자신에겐 학교를 다니겠느냐 권유한 적도 없으면서 동생을 보살피기 위한 명목으로 학교를 남으라는 명령과도 같은 통보에 오히려 엘파바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다리가 불편한 여동생의 곁을 지킨다. 엘파바가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학생과 교직원들은 엘파바를 보며 기겁을 한다.


 

뭘 쳐다봐? 내 이빨에 뭐가 꼈니?

그래, 짚고 넘어가지 뭐.

아니, 난 어디 아픈 곳 없어

아니, 난 어릴 적에 풀 뜯어 먹은 적 없어

맞아, 난 항상 초록색이었어

 

 

모두가 자신의 피부를 보고 놀란 줄 알면서도 엘파바는 태연하게 이빨에 뭐가 꼈느냐고 물어본다. 이것은 엘파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하게 겪어왔던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답변이고, 그의 상처받은 유년 시절이다. 엘파바가 가진 초록색 피부에 대한 관념은 그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강한 에너지로, 찔리면 움찔하게 되는 아픈 곳이다. 엘파바는 학생들에게 이 상황이 지금까지 많이 겪어왔던 상황이라는 듯 학생들의 예상 질문을 스스로 묻고 답함으로써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러나 엘파바의 과장된 고백은 오히려 그녀의 열등감을 확인시킨다.* 우연히 자신이 분출한 마법의 힘이 학교 총장인 마담 모리블 눈에 들게되고 엘파바는 난생 처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온다.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자신을 조수로 들일거라는 말에 엘파바는 몹시 기뻐한다. 그 마음이 「The Wizard and I」에서 잘 드러난다.

 

 

현명하신 그분께선 세상의 바보들처럼 겉모습만 보시고 날 판단하시진 않겠지

...

아버지의 자랑스런 딸 자랑스러운 언니 오즈의 모든 사람들 모두 날 사랑할 거야

...

어느 날 내게 묻겠지, 

엘파바, 넌 정말 뛰어난 소녀야 

너의 내면에 어울리는 외모는 어떤 것일까? 

멍텅구리 세상 사람들은 외모로 사람을 본다니 

예쁜 초록 피부를 좀 바꾸면 어떨까?

 

위키드 The Wizard and I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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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파바는 남들이 무어라 해도 기죽지 않고 자존심이 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하고 무리에서 튀지 않고 평화롭게 융화되기를 원한다. 글린다와의 우정이 돈독해지고 오즈로부터 초대장을 받는 순간 엘파바는 그의 꿈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허울뿐인 평화와 몰상식한 오즈 그리고 마담 모리블에 실망한 엘파바는 그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위기에 처해진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엘파바는 그 순간 내면의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한계는 무너졌어 내 길을 갈거야 

시도하기 전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너무나 오랫동안 두려워 한 것 같아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랑을 잃을까봐!

...

나를 찾으려거든, 서쪽 하늘을 봐! 

누군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 누구라도 날아오를 자격이 있잖아! 

비록 홀로 날지만, 그래도 나는 자유로워! 

나를 끌어내리려는 저들에게 내 말을 전해

전해줘 나 모든걸 떨쳐내고 저 끝없는 세상을 본다고! 

나는 꼭 돌아온다고! 

이 오즈에, 그 누구도 어떤 마법사도 나를 끌어내릴 순 없어, 이젠!

 

위키드 Defying Gravity 중에서

 

 

엘파바는 그렇게 날아오른다. 아무도 없는,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황량한 땅으로. 엘파바가 공중에서 노래를 부를 때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엘파바가 사랑받고자 하는 열망을 버림으로써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는 게 가슴 아팠다. 마치 아무리 애써봤자 미움받는 초록마녀로 남을 거라면 차라리 나쁜 마녀가 되어주겠다는 결심과도 같아 보였다. 이 외로운 마녀의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시간들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엘파바에게 찬란한 삶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엘파바에게 무한한 사랑과 격려를 보낸다.

 

 

*홍미옥, [뮤지컬 <위키드>의 인물 및 서사 구조 분석 :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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