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와 어른들을 위한 완벽한 밀도의 전시 - 전시 '그림책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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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숲 도서관 ⓒ 김유진, 책읽는곰
전시회 '그림책이 참 좋아'는 상당히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한 전시회였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상당히 진지한 성격이다. 나한테 진지하다는 것은 결정하기보다 수만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는 성향을 말한다. 진지함과 즐거움은 어느 후반 지점에서 만나지만, 처음에는 상당히 서로를 어색하게 여긴다.
'그림책이 참 좋아'는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다. 그림책이 읽히길 바라는 진정한 독자의 모습을 생각할 때, 당연한 말이다. 그림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그림과 텍스트는 그들이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생생한 세계 중 하나다. 그래서 그 속에서 살아있는 무언가로 살아 움직이며 그 세계를 경험하길 바란다.
이들을 위해서 전시회는 그림책 속 주인공이 되거나, 그 안의 내용물을 채우거나, 그림을 채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제공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 전시회는 그래서 참 재미있다. 이러한 표현으로 액티비티 외의 그림들에는 아이들이 무심할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책의 그림들은 텍스트 없이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려져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마치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포장지처럼 아이들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전시회의 중간에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한 것은 영리했다. 우리를 먹이고 청소하는 거대한 달팽씨 인형이 누워있는 그림책 읽기 공간은, 앞서 구경했던 책들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어른인 나도 그곳에 앉아서 그림책을 모아 읽었는데, 어린아이들은 더욱 신이 났을 것이다.
보통 이런 '즐거운' 전시회는 '진지한' 전시회의 역할은 소홀히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림책이 참 좋아'는 진지한 전시회이기도 하다. '진지한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림책 일러스트란,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끝까지 끌고 올라가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책은 몇 줄이 안 되는 텍스트를 대부분의 지면을 차지하는 그림이 보조한다. 그 짧은 텍스트 몇 줄에서 나오는 다양한 심상을 앞뒤 맥락에 맞게, 여백이 느껴지지 않게 그려야 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흥미로워야 한다.
단순히 아름답게 그려서도 안 되고, 너무 추상적으로 그려도 안된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상상력이 아예 개입할 수 없게 만들어도 안된다. 아이들이 잡고 놀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롭고 구체적인 심상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현실과의 재현도나 명확한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여러 가지 말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어쨌든 진지한 태도로 온 나만큼이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그림책들을 찾아 읽는다. 이 전시회에 존재하는 두 가지 정체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진리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참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벽에 그려진 냉장고에 자석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그림책을 함께 즐겼다. 하지만, 이 글을 완성하는 것은 즐거운 어린이가 아니라, 즐거운 어른이기 때문에, 지극히 어른의 관점에서 흥미로웠던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은 각양각색의 작가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들이다.
도망쳐요, 달평 씨 ⓒ 신민재, 책읽는곰
우선 전시회의 가장 초반 부분에 배치되어 있던 국지승 작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 셋 꽃다발 셋'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의 순서에 따라 배치된 그림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작가의 그림들은 특별한 조명을 받는 인물들만 제시하기보다는 일상 속의 생활 속에 인물들을 숨겨놓는 방식을 택했다. 책의 제목에 따라 아버지와 꽃다발의 얼굴을 찾다 보면, 좀 더 색채를 넣어 그린 인물들이 몇 명 보인다. 이들이 앉아 있는 배경, 소품, 표정을 통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아빠들은 결국 공연에서 똑 닮은 아이들을 축하하면서 한자리에 모인다. 복잡한 도시 속에서 가족을 생각하는 부모님을 찾는 그림의 구성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진다. 노골적으로 특정 등장인물들에만 색깔을 넣지 않고 균형감 있게 칠함으로써 다양한 인물들을 상상하게 했다. 부드럽게 번진 오일 파스텔과 섬세하게 채워진 색연필과 미세한 음영과 명확한 빛의 어둡고 밝은 표현에는 보는 사람을 따뜻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그림을 만지면 색연필의 자국이 부드럽게 느껴질 것 같은 그림들이다.
국지승 작가의 표현 방식이 대조적인 김은재 작가의 그림들이 나열된 것은 아마 의도된 결과일 것이다. 김은재 작가의 '수크를 찾습니다'도 국지승 작가의 그림처럼 이야기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수크를 찾습니다' 역시 가족에 대한 주제(부모님이 아이를 찾는다)를 다루고 있고,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오일 파스텔과 색연필로 그려져 번짐이 있는 국지승 작가와 다르게 과슈와 펜으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윤곽선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두드러지는 그림자 표현은 없지만, 또렷한 윤곽선을 채운 과슈가 묘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표현은 증기나 열기 또렷한 윤곽선 위에 얹히거나, 스푼과 포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눈물에 윤곽선을 주어 좁쌀같이 보이게 만들어 재미있게 과장한 것이다. 사실 이런 기법의 표현보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주방 기구들이 재미있게 움직이는 아이디어가 더 놀랍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으로는 윤정주 작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어린아이에게는 보물창고와 다를 것이 없는 냉장고, 아이스크림 가게 등에서 시작한 '꽁꽁꽁' 시리즈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만큼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만 표현하기는 아쉬울 정도로, '꽁꽁꽁' 시리즈의 장면 장면은 놓치기 아까운 디테일로 가득 차 있다.
꽁꽁꽁 댕댕 ⓒ 윤정주, 책읽는곰
윤정주 작가의 그림은 어렴풋이 해봤을 상상력을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특정한 정면이 연출되지 않는 부분에서 서로 손잡고 있는 요구르트, 우유 종이팩을 벌려 소리치는 우유, 편하게 누운 파들은 명확한 초점을 두지 않고 이야기의 맥락 없이 개성적으로 표현된다. 꽁꽁꽁 좀비나 꽁꽁꽁 아이스크림에는 만화의 한 장면처럼 역동적인 구도로 그려졌다.
섹션 2에는 디지털 작업물들도 함께 소개되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작가는 유지우 작가와 황K였다. 사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의 마음들을 울리기 충분한 작품이다. 강아지를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구름 공장'은 강아지와 함께 행동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생동감 있는 표현이 돋보인다. 거기에 깃든 복잡한 마음은 동화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 ⓒ 황K, 책읽는곰
황 K 작가의 '꽃에서 나온 코끼리'는 초등학교 교재에도 실릴 만큼 독특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꽃에서 코끼리가 나왔다'라는 묘한 소재와, 얇은 선과 아름다운 색 배합으로 완성된 소년과 코끼리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마저도 손에 들고 있기 조마조마할 정도로 소중하고 작은 것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김성미 작가의 '인사'도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두 작가의 작품만큼이나 생생한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불쾌하지 않고, 인간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다. 작가는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검은 펜선으로 묘사된 단순한 배경과 색채로 표현된 늑대와 여우는 다양한 이유로 모른 척 하면서도 서로를 강하게 인식하는 상황을 잘 묘사한다.
거북이자리 ⓒ 김유진, 책읽는곰
그림과 글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김유진 작가의 '거북이자리'와 '엄마의 여름방학'도 인상 깊었다. 앞서 내가 소개한 작가들이 다소 사물들을 단순화하여 묘사하는 데 비하여, 김유진 작가의 그림은 색감과 질감이 풍부하다. 그래서 초반의 발단 부분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회상 장면이나 절정 부분에서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다. 작가 특유의 넘실거리는 감성은 '느린 아이가 거북이에게 선물한 종이접기', '어머니의 추억을 공유하는 딸'이라는 맥락을 타고 더욱 매력을 발산한다.
이 외에도 묘한 감상을 남겼지만 구체적으로 언어화되지 못한 수많은 작가가 있다. '그림책이 참 좋아'에는 하나하나 수많은 감성을 깨우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들이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짓는다는 생각이 있어서일까? 아직은 많은 것을 체험하지 못한 존재들을 위해 보여주는 의무가 그들의 소중한 감성을 일깨우기 때문일까?
내가 이들을 작품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그 가치를 표현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그런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냉정하고, 상상력이 부족해서 융통성 없이 딱딱하게 보이는 세계에서도 예술가들은 수많은 것들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너는 어떤 나무가 태어나는 아이라고, 어떤 색의 감정을 느꼈겠구나 라고 이야기해 주는 그 상상력의 힘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말을 하는 어른들을 살아가게 만든다. 아마 그것이 이 전시회가 유독 나에게 인상 깊게 느껴졌던 이유일 것이다.
인사 ⓒ 김성미, 책읽는곰
[이승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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