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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 해의 끝자락을 절에서 보냈다.

 

작년에는 전남 강진의 백련사, 그리고 올해는 도봉구의 천축사에서. 겨울의 산사만큼이나 소란스럽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공간은 또 없었기에, 도봉산에서의 템플스테이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지난 절에서의 1박 2일의 기억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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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사는 도봉산 정상에 위치한 절로, 한 시간가량을 걸어 올라가야 비로소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날 내린 소복한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산을 천천히 오르면서부터 템플스테이의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르며 딱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비워야 비로소 가볍게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잡념들을 하얀 눈 속에 차곡차곡 묻으며 무사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절에 도착하면 방을 배정받는다. 천축사는 절 주요 건물에서부터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위한 전용 숙소 건물이 있다. 산을 올라오느라 꽁꽁 언 몸을 따끈한 온돌방 위에 좀 녹이고, 방 안에 놓인 템플스테이 옷으로 갈아입었다.

 

보온은 보온대로 뛰어나고, 절의 분위기를 닮은 정갈한 옷과 함께 템플스테이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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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일정으로 먼저 절의 주요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꽝꽝 얼어버린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오르고, 또 내리면서 그동안 절에 들러 구경하기만 했던 공간들의 이름과 쓰임을 하나씩 알아갔다.

 

그리고 이어 타종체험에 나섰다. “2024년 한 해의 스트레스와 고민을 모두 날려버리라”는 돋움에 힘입어 모두 제각기 힘차게 종을 울렸다. 막상 세게 치지는 못했지만, 바로 옆에서 느끼는 웅장한 울림과 진동에 정말로 한 해의 나쁜 기운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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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 체험 후에는 각자의 방에서 충분한 휴식을 보내고 저녁 공양이 있었다.

 

흔히 ‘절밥’이라고 불리는 공양은 육류를 제외한 채소류 반찬 위주로 만나볼 수 있다. 이 또한 절마다 다르지만, 고기만큼이나 맛있는 버섯과 마른반찬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평소보다도 훨씬 덜 기름지고, 덜 자극적인 식사를 하면서 마음뿐만 아니라 그간 해로운 것들을 소화하느라 바빴을 몸에게도 간만의 휴식을 선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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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는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별도의 아늑한 ‘차담’ 전용 건물에서 스님과의 차담을 나누었다. 사실 이야기가 오가는 대화라기보다는,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감에 있어 갖춰야 할 마음과 행동과 같은 스님의 ‘인생조언’이 9할을 차지했다.

 

어쩌면 상징적으로도, 또 실제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가만 듣고 있다 보니 세 발자국 정도 뒤에 서서 여유 공간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욕심을 버리라던지, 무언가에 정진하라는 무난한 조언보다도 세상의 이치에 기반한, 훨씬 넓고도 유익한 ‘인생’ 지침들을 들을 수 있었다.

 

차담 이후 9시경부터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따듯한 방바닥 위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2024년을 돌아보는 질문 리스트를 함께 작성했다.

 

산을 오르느라 노곤해진 몸을 안아주는 이불속에서 가장 여유롭고 따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행복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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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6시. 새벽예불로 템플스테이의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종소리에 겨우 눈을 뜨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온풍기에 몸을 녹이며 반야심경을 함께 읊고 절을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잠이 빠르게 달아났다. 일어날때만 해도 이불 속에서 미적거리며 잠에 미련이 많았는데, 막상 박차고 일어나 대웅전에 오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예불을 마치고 바라본 산 봉우리의 풍경에서는 일출이 모두를 반기고 있었다. 깜깜한 보랏빛 새벽하늘을 몰아내듯 퍼지는 주홍빛이었다. 그리고 일출을 바라보다 벌써 7시. 아침 공양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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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공양 후에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남은 잠을 청했다. 따듯한 방 안에서 나른하게 부족한 잠을 청하는 시간이 템플스테이에서 느낀 두 번째 ‘확실한’ 행복이었다.

 

퇴실 시간에 맞추어 템플스테이 사무실로 향하니 템플스테이 사무실에 옹기종기 참가자들이 단주(불교팔찌)를 꿰고 있었다. 나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템플스테이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팔찌를 만들었다. 그리고 2025년 새해에 절 한 공간에 달리게 될 연등의 소원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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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년째. 연례행사가 될 것만도 같은 템플스테이를 통해 나는 ‘비움’을 얻었다. 항시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고민과 걱정에게 잠시나마 ‘방 빼’라고 선언할 수 있을 만큼 다른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 덮인 겨울산의 정취, 시리도록 차지만 맑은 새벽공기, 절의 평온한 종소리와 향. 보고, 듣고, 들이마시고 맛본 모든 것들에 집중하느라 고민걱정에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또, 먹고 자는 당연한 일상의 행위 또한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음을 느낀 1박 2일이기도 하다.

 

평소 절의 차분함을 좋아하는, 혹은 절에 방문하여 평안을 얻으리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절에서의 하루를 권하고 싶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좋아하는 절의 차분함을, 또 기대하는 평안을 느끼기에 충분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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