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창작자들의 나침반, 지브리 팬들의 망원경 -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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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필리버스터' 인레, 그리고 이누해 작가
10살도 채 되기 전,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보았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보았지만, 보고 난 직후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처음이었다. 어린 소녀 센의 모험은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고, 그 이후로 지브리는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은 많은 이들의 유년 시절을 책임졌고, 세상에는 지브리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X(구 트위터)에서는 지브리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신작이 나오면 가장 먼저 떠들썩해지는 곳도 바로 X였다.
처음 이누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X가 아직 트위터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던 때였다. 지브리는 워낙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만큼 항상 그 숨은 의미나 제작 과정으로도 이야기가 오고가는데, 그때는 유독 그 목소리가 시끌벅적했던 기억이 난다. 일명 '지브리 괴담'이라고 불리는 이야기들이 살에 살이 덧붙여져 트위터에서 오갔다. 그 안에는 동심을 파괴하는 것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도 더러 있었다.
그때였다. 허무맹랭하지만 그럴 법한, 음모론과도 같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인레'라는 유저가 등장했다.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차곡차곡 해체해 우리에게 하나씩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괴담이 아닌,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미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 SNS 글은 현재 이누해 작가의 포스타입 게시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결말을 두고, 코하쿠는 죽었을 거라느니 치히로는 기억을 잃었을 거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사실,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 <은하철도의 밤>을 오마주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기차라는 소재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
<은하철도의 밤>은 워낙에 모호해 뚜렷한 주제의식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성장’과 ‘희생’의 메세지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판 <은하철도의 밤>인 셈이죠. 이 미야자키 하야오 버전의 <은하철도의 밤>에서 하쿠가 바로 ‘캄파넬라’입니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친 고귀한 희생자입니다. 치히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지요.
그렇게 시작하게되 이어진 인레라는 트위터 유저의 글은 순식간에 화제의 글로 떠오르게 되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의 글은 단순한 영화 후기가 아니었다. 그는 인터넷에 떠도는 몇 가지의 조각들만을 보며 영화의 여운을 즐기던 우리에게 지브리의 깊이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섬세함과 정교함을 지닌 그의 흥미로운 시선은 우리가 미처 연결 짓지 못했던 점과 점을 연결 지어주는 선의 역할을 했고, ‘이 모든 것이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구나’라는 깨달음과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외에도 다수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을 담아 다채롭게 해석하고 분석했다. 그는 점차 ‘지브리 필리버스터를 하는 사람’ 혹은 ‘지브리 선생님’으로 칭해지며 트위터에서 굳건히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나는 방대한 영화적 지식과 창의성, 그 모든 것을 연결 지어 작품의 내적 의도를 통찰할 수 있는 분석력, 그리고 이를 쉽고 간결한 언어로 풀어낸 그 친절함을 보며 그의 글이 마치 성인 독자를 위한 동화책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그의 글을 읽다보며 어느새 독자들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으로 되돌아 갔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안 본 눈'을 그를 통해 갖게 되며, 영화를 새로운 시선에서 한 번 더 바라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작자를 위한 교과서, 지브리 팬을 위한 메이킹북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인레라는 트위터에서 지브리에 대해 심화된 고찰을 풀어낼수록, 그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커져만 갔다. 가장 큰 의문은 그가 왜 이러한 통찰들을 책으로 엮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는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공통된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누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의 마음은 반가움이 가득 찼다.
그러나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들어가기에 앞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도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은 지금까지 이누해 작가가 SNS에 작성해왔던 글, 즉 내가 앞서 설명했던 글과는 전혀 다른 결의 내용을 담고 있는 도서다.
앞서 내가 인레라는 이름으로 그가 올렸던 글을 '동화'와도 같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번 도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를 그와 같은 동화를 기대하며 읽는다면, 이 도서를 읽는 내내 그 기대는 크게 엇나갈 것이다.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러한 논리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지브리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이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이는 그가 SNS에 올린 글이 선사해 주었던 것과는 또 다른 감동울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마치 마법과도 같았던 지브리의 힘을 확실한 논리 구조 속의 규칙으로 풀어서 소개해 주는 것은, 내가 영화를 보며 어떻게 그 뭉클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마주해 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아 창작자로서 지브리의 영화를 어떻게 마주하고 자신의 창작물에 적용시키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하는 조언서 내지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다. 이누해 작가는 책의 서두에 프롤로그에서 읽는 이들에게 확고하게 자신이 이 책에 담은 의지를 전달한다. '당신의 실패를 응원한다'는, 그 무엇보다도 냉정하고,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힘이 되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의 방법을 연구하고 공부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와 같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를 모방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
이 책은 그런 당신의 실패를 응원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찾는 여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쓰였다.
이 책의 제목은 [청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오직 '창작의 이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추천하는 책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는 콘텐츠의 매니아층은, 콘텐츠가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이라고. 나 또한 흔히들 이야기 하는 '오타쿠' 중 한 명이기에 그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다 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좌석에 앉아 영화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SNS에서 떠도는 다른 사람들의 관람평을 낱낱히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제작자들의 인터뷰 내지 기사 글 읽기, 그리고 평론가의 글을 읽는다. 그쯤 되면 영화를 본 시간보다 영화 후 여운을 곱씹은 시간이 배로 많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편이 공허할 때가 있다. 그 공허함은 이 다양한 후기들 내지 내가 몰랐던 정보들을 소장하지 못한다는 물욕에서 시작할 때도 있고, 앞으로 같은 제작자의 영화를 찾아볼 때 해당 정보들을 보다 자세히 기억해서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팬심에서 시작할 때도 있다. 끝이 예견되어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영원히 자신의 삶을 함께 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될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은 지브리 팬들이 항상 갖고 있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필요한 디딤돌이다. 창작자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씹어 삼켜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기회이자 자신의 창작물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나침반이 되는 책이지만, 지브리 팬들에게는 다각도에서 영화를 섬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는 망원경이 된다.
그렇게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며 헤맸던 팬심을 눌러 담아 소장하고, 영화와 함께 차근차근 읽으며 뼈까지 꾹꾹 씹어 먹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에서,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을 그 프롤로그에 적힌 제목으로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 [우리가 사랑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이라고 말이다.
[김푸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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