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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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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타이니 오케스터라는 단어의 조합에서 그간 봐왔던 재즈와는 다른 형식의 공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잠깐 스쳤다. 단순했다. 연말이니 재즈를 보러 가는 것, 마음이 풍요로워져 많은 감정을 허용하게 되는 요즘이야말로 재즈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때가 아닐까, 그뿐이었다.

 

재즈라고 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단상 또한 흔하디 흔하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가끔 라이브 공연을 보며 자연스레 와인을 기울이고 복잡한 생각보다는 당장 나의 귀를 울리는 리듬에 한껏 몰입하며 이따금 박수를 치는 것. 무언가 할일이 있을 때 가사없는 음악으로 배경처럼 틀어두는 것. 잘 안다고도 할 수 없지만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이름만은 친숙한 장르가 재즈였다.


재해석의 음악인 재즈의 본질.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JTO)는 대편성 재즈 앙상블의 구조적인 재작곡(Re-composition)을 통해 새로운 재해석 작업에 집중해 오고 있다. 오리지널을 주제로 즉흥연주 중심의 연주를 선보이는 소편성 재즈 앙상블의 보편적 연주 형식과는 또 다른 원곡의 완전한 해체와 구조적인 재구성. JTO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담은 새로운 오케스트럴 재즈로 재창작 하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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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JTO는 이것을 오리지널 곡의 편곡(Arrangement)이 아닌 재작곡(Re-composi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본 공연에서 JTO는 이러한 스탠다드의 재해석을 통한 Joe Henderson, Charlie Parker, Miles Davis 등과 같은 재즈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를 비롯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만의 오리지널 곡들을 현대적 감각의 라지 앙상블 음악으로 선보인다.

 

지휘자이자 빅밴드 혹은 타이니 오케스터의 프로듀서인 최정수의 친절한 소개는 곡에 대한 정보와 함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익숙지 않은 레이블들을 따라 비밥, 하드밥, 쿨재즈 등의 장르를 구분하며 듣기에는 벅찬 부분도 있었다. 이 곡의 어떤 부분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까 생각하려다 보니 곡을 감상하기보다 어느 순간 습관처럼 분석하는 자신이 느껴졌다.

 

그런 관점보다는 재즈가 시간이 갈수록, 혹은 시대에 따라 사랑받거나 뮤지션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변화라는 큰 틀안에서 바라보며 들리는 음악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재즈가 아닌가. 하며 처음이지만 낯섦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되려 편안함을 갖고 순수한 오디언스로서 공간을 감싸는 다채로운 리듬의 변화에 어느 순간 몸을 내맡겼다.

 

간단히 앞서 언급한 재즈 장르간 다른 점은 결국 궁금해 찾아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비밥은 빠른 템포와 복잡한 화성을 특징으로 즉흥 연주가 중심이 된다. 이전까지 좀더 대중적이고 댄스음악으로 활용되었던 스윙재즈와 달리 음악적 표현에 무게를 두었다는 점이 다르다.

 

이후 하드밥 재즈가 비밥의 발전된 형태로서 더 강렬하고 감정적인 표현, 그루비한 요소가 가미된 재즈로 등장하였다. 쿨재즈는 비밥과 대비되는, 좀더 느리고 서정적 스타일이 돋보이는 음악이다.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이 전반적이며 긴 선율과 섬세한 연주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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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으로는 총 5곡 정도가 연주되었다. 비밥, 하드밥, 쿨재즈가 시대순에 따라 연주되었고 그 다음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Nach Vien과 Quasar라는 곡이 이어졌다. 앞선 세 곡이 장르적 특징을 감각하고 재즈라는 음악의 다양성을 느껴볼 수 있어 좋았다면, 다른 두 곡은 어떠한 심상을 주제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더 흥미롭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

 

Nach Vien은 ‘빈으로’라는 제목처럼 빈을 향해 가는 길목의 자연과 설렘, 일순간의 떨림도 담고 있었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살랑 들게 하는 부드러운 선율은 리듬의 잦은 변화가 아닌 조금은 느린 속도, 발걸음을 따라가는 듯한 편안한 박자감으로 조금의 긴장마저 떨쳐주었다. 에측할 수 없는 즉흥성만이 재즈의 매력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려주었다. 가사없이 읊조리는 보컬이 가장 돋보인 곡이기도 했다.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아도 목소리라는 악기로 곡을 연주하는 듯한, 다소 생소한 스타일의 보컬이 뚜렷한 존재감을 기분좋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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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멀리 떨어진 은하.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모두 흡수하는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다는 거대 발광체를 말하는 Quasar는 굉장히 잘게 분절된 리듬들이 얽혀 또다른 강한 몰입감을 주었다. 독특한 분위기로 귀를 사로잡는 기타와 플룻의 멜로디를 필두로, 무한대의 외계로 인도하는 듯한 오케스터의 사운드는 일순간 재즈라는 장르에 느꼈던 어려움 대신 사운드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흡입력을 발산했다. 언젠가 지구를 멀리서 바라볼 날이 온다면, 거대한 세계 속에서 모든 걱정을 작게 하고싶을 때면 내 귀에 바로 그 우주를 들려줄 수 있을 음악이었다.

 

오리지널 곡의 다양한 재작곡, 한껏 끌어올린 음악적 완성도, 쉽게 볼 수 없는 빅밴드 구성의 풍성한 사운드.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독자적인 스타일로 그려가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재즈를 오래도록 찾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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