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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같이 주세요!"


 

지난 주 일요일, 성북구 정릉동 '지하서재'에서 열린 '2024 파이퍼 논픽션 작가전'에 갔다. 올해 여름에 ISP 작가님의 "향수 수집가의 향조 노트"를 재밌게 읽었기에 다른 작가님들의 책도 재밌고 유익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강연을 들어보니 기대 이상이었고, 현장에서 책만 세 권을 사왔다. "향수 수집가의 향수 노트(ISP)", "음악의 쓰임(조혜림)" 그리고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정진영)"였다.

 

"향수 수집가의 향수 노트", "음악의 쓰임"은 강연도 좋았지만, 작가님들의 사인을 받고 싶어서 사왔다. 그러나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는 순전히 제목만 보고 산 책이었다. 목차나 책 내용도 살펴보지 않았다. 그날 정진영 작가의 강연은 없었기에 책을 구매한 이유가 사인 때문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경험상 제목에 이끌려서 구매한 책은 읽다 보면 그럴 만한 이유를 곧잘 찾아내곤 했었다. 유난히 공감이 많이 되는 말이 많아서 밑줄을 많이 긋게 되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렬하게 원하거나 피하던 무언가를 타자의 입으로 직면할 수 있게 되어서. 그래서 이번 책에서도 제목에 이끌린 이유를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단박에 찾았다.

 

 

 

"하지만 소설 창작에 있어선 다양한 실패가 큰 자산이 된다."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는 '소설 쓰는 방법'이 아니라 '비전공자가 소설을 쓰는 삶'을 다룬다. 일종의 시행착오를 통한 성장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소싯적 로커를 꿈꿨고,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다가 글쓰기를 시작했다. 음악을 하다가 뒤늦게 법학을 전공해 대학에 다니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지만, 신춘문예, 문예지 신인 공모, 장편소설 공모는 본심에 오른 적이 없었고, 출판사 투고는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소설을 놓고 싶지 않아 밥벌이로 신문기자를 택했다.


 

더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글밥을 먹고 살고 싶다는 마음은 포기가 안 됐다.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문득 기자라는 직업이 떠올랐다. 기자로 일하면 글밥을 먹을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었다. (...) 다양한 경험, 그중에서도 실패한 경험이 많을수록 소설을 쓰는 데 좋다. 소설은 얄궂게도 실패를 먹고 자란다. 나는 마음이 평안하고 살림이 넉넉한데 소설을 쓰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p15)

 

내게 소설을 쓰는 게 꿈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았다. 본인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면 책 수십 권은 나올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도 있었고, 요즘 소설은 시시하다고 깎아내리며 쓰기만 하면 화제가 될 소재가 있다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왜 안 쓰세요? (p25)

 

 

정진영 작가 본인이 생업과 소설을 동시에 가져간 만큼, 저자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일단 쓰라고 말한다. 사실 저자의 말은 소설 쓰기가 아니어도 도움이 많이 될 만한 이야기이다. 해보고 싶으면 해봐야 한다. 그래야만 열리는 새로운 세상이 그 사람을 있어야 할 곳에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나 또한 모 회사의 작사가 오디션에 지원한 경험이 있다. 꿈이 작사가라서는 아니고,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내게 작사가라는 직업을 권한 사람이 몇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 문장이 어디까지 닿을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작사 시안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했다. 늘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지만, 멜로디가 선행되고 텍스트가 후행되는 가사는 일반적인 글쓰기와 얼마나 다를지 떠올려보는 것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진심이 전해졌는지, 감사하게도 회사는 내게 2차 시안을 작업할 기회를 줬다. 그래서 기본 중의 기본인 음절 따기조차 모르던 상태에서 시안을 작업해서 제출했고, 당연하지만 떨어졌다. 단 한 번의 작사 시안 작업은 내게 큰 깨달음을 줬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은 좋지만, 꼭 가사가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목소리를 표현하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왜 이 책을 사 왔을까?"


 

목차도 읽지 않고서 이 책을 사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선, 저자의 경험은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글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을 여러 번 거쳐서 언제든 쏠 수 있는 총알을 장전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5장 '자기 치유를 위한 글쓰기'에서는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때로는 내가 아니라 타인의 말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사람마다 크고 작은 상처가 있고, 나 또한 그렇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글로 심정을 토로하고, 정리해서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리해 두고는 했다. 그 방식이 소설이 아니었을 뿐, 나는 일기든 시든 무엇이든 적고 있었다.

 

 

일상과 감정을 기록하는 행위는 자기 치유에 효과가 있다. 글은 말보다 정돈된 내용을 담는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제삼자의 눈으로 어머니와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소설 쓰기는 오랜 세월 깊게 상처 입은 채 남아 있던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p62)

 

 

"소설은 실패를 먹고 자란다"는 실전 소설 집필 과정이 궁금한 사람, 글 쓰기를 업으로 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거듭되는 실패를 잘 다루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깔끔한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에 앉은 자리에서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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