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선이라는 판옵티콘 [영화]

영화 '서브스턴스' 속 바디 호러의 실체
글 입력 2024.12.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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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타인의 시선을 느낀다. 오싹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어쩐지 시선을 느껴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어 어리둥절했던 적 또한 한 번쯤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가 느끼는 시선의 실체와 주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시선을 우리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느끼는가?

 

이러한 시선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의 실체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타인의 시선이다. 공포 영화를 보고 난 직후, 신경 쓰이는 사람과 한 공간에 있을 때, 늦은 시간에 밖을 돌아다닐 때 등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우리는 이러한 시선을 상상하게 된다.

 

즉, 이러한 시선은 실재하는 시선이라기보다는 내면의 불안에서 파생되는 시선에 대한 의식이다. 이 의식은 공포스러운 경험을 통해서만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게 평가당하거나 비웃음을 사는 일 등 모멸적인 경험이 인간의 머릿속에서 허구의 몸과 자아를 가지고 그를 감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현대인에게 쉴 새 없이 노출되는 미디어는 친근한 오락거리면서 효과적으로 현대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이러한 시선에 대한 의식을 당연하게 만든다.

 

단식과 자해 등을 통해 연예인처럼 극단적으로 마른 몸매를 추구하는 여성 청소년 중심의 '프로아나' 문화는 미디어가 어떻게 사람의 인식을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미디어가 창조하는 시선의 허구성에 관한 담론에 있어, 최근 개봉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특히 여성에 관한 논의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신체를 구속하고 해체하는 시선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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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는 한때 화려하게 이름을 날렸던 과거의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오랜 기간 진행해오던 에어로빅 TV 쇼에서 하차하게 되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서브스턴스'를 통해 한시적으로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손에 넣은 후 다른 몸으로 쇼에 서면서 맞게 되는 파국을 바디 호러로 그리고 있다.

 

영화는 초반부터 여성의 미모가 불멸하기를 주문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데, 감독 코랄리 파르쟈는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주제의식을 확실하게 짚어주기도 했다. 그는 중년 여성으로서의 당사자성이 밑바탕이 되었음을 고백했다.

 

파르쟈 감독은 40대에 접어들며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가 지워질 것만 같은 절망감을 느꼈고, 여성이 나이가 들어갈 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고 자신의 가치를 단정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더불어 자신이 느꼈던 내면의 폭력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호러 장르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강력한 동기를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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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젠더 연구, 특히 영화 분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선에 관한 개념이 하나 있다. 바로 남성 시선(Male Gaze)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카메라에 남성의 성적 욕망이 투영되었을 때 카메라의 시선을 남성의 시선이라 부른다. '서브스턴스'는 이러한 시선과 동화되는 노골적인 카메라 워킹과 콜라주 기법을 택한다.

 

영화에서 내내 엘리자베스를 옭아매는 시선은 50대에 접어드는 엘리자베스 자신이나 젊고 아름다운 또 다른 자신 '수'의 시선도 아닌 방송국 사장 '하비'의 시선이다. 엘리자베스는 오랜 기간 카메라 앞에 서 온, 선망의 대상이 되는 배우였다. 엘리자베스는 방송인이라는 TV 속 페르소나를 실제 자기 자신과 분리하지 못한다. '하비'가 엘리자베스의 외모와 나이를 폄하했을 때, 그가 느꼈을 좌절감은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자신을 좇는 시선이 없다는 것은 곧 엘리자베스 본인이 사라진다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혼자 있을 때조차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그는 거울로 자기 자신을 감시하듯 주름과 몸매를 집요하게 관찰하는데, 자신의 몸을 조각내듯 작은 부분까지 응시한다.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그는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 되어가는데,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금기를 어겨 엘리자베스의 외형은 추한 모습이 되어 버린다. 이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서글픈 징벌이자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자신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여성의 정신 상태의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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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가 맞이하는 비극을 수가 젊은 몸으로 살아갈 때 자신에게 쏟아지는 애정에 도취되어 금기를 범한 대가로 그려낸다. 계기가 어찌 되었든 엘리자베스 본인에게로 모든 일의 대가가 회귀하지만, 책임의 소재가 반드시 엘리자베스에게 있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미 엘리자베스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외로웠고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증오했다. 이러한 자기파멸적인 감정은 타인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다.

 

엘리자베스가 품은 것은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심이 아니라 대중에게서, 타인에게서, 남자에게서 영원토록 마르지 않는 애정을 갈구하는 지극히 타자화된 욕망이다. 타인의 욕망 어린 시선 없이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행복은 엘리자베스를 둘로 만들고 현재의 자신을 향한 애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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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에게 분명 수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일 게 분명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전광판과 TV, 사진 속 수가 자신을 응시할 때 자신의 모습을 비웃는 듯한 수치심을 느낀다. 사진 속 수는 정말 수 그 자체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수의 젊고 탄력 있는 몸과 미모를 탐미하는 남성의 시선이 짙게 반영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TV 쇼에서는 수의 몸 곳곳을 노골적으로 확대한 샷을 이어 붙이는데 엘리자베스는 이러한 시선이 유도하는 대로 아름다운 여성, 또 다른 자기 자신인 수에게 매료된다. 그러면서도 수와 비교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늙어가는 엘리자베스는 수를 죽이고 싶은 충동 또한 느낀다. 수를 손 쓸 도리도 없이 망가뜨림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손수 묻고 현재의 자신이 더욱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엘리자베스의 욕망은 점점 커진다. 서로의 시선이 서로를 감시하는 동시에 서로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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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그러지 못한다. 자신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수로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이 타인으로부터 오는 끊임없는 애정의 공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는 수로 영생하기를 바랐다. 법칙과 순리를 거부하는 순간 붕괴할 것이라는 쓸쓸한 결말을 예감했지만, 여성의 가치가 젊음과 외모를 축으로 결정되는 산업에서 수의 선택은 차라리 모두의 시선을 받는 가운데 스러지는 것이었다.

 

세상의 어둠 속 한 줄기 빛을 힘겹게 찾아내 희망을 제시하는 것도 우리를 살아가는 영화가 있는 한편, 어둠 중에서도 가장 짙은 심연을 보여주며 이러한 심연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하는 영화도 있다. 서브스턴스는 후자다. 서브스턴스 속 바디 호러는 곧 여성의 몸이 겪는 괴물화이며 시선이라는 판옵티콘에서 벌어지는 바디 호러는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에게 현실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그러면서 서늘한 목소리로 묻는다. 어떻게 여성으로 살아가고 죽을 것인가. 우리는 그저 미디어에 노출될 뿐인 선량한 대중인가. 도처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성이 이러한 호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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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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