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안을 세상에서 제일 감미롭게 받아들이는 법 -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 My Real Book Vol.2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가 향유하는 새로운 재즈 세계관
글 입력 2024.12.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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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날이 추웠던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 18일, 성수아트홀에서는 다이나믹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인 재즈가 흘러나왔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재즈의 신지평을 열어가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재즈 하면 보통 트리오(trio)나 쿼텟(quartet)으로 진행되는 소규모의 악단을 떠올리게 되는데,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에는 무려 10명의 멤버가 존재한다. 이는 빅 밴드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빅 밴드와는 결이 살짝 다른 조화를 자랑한다. 이름에 ‘오케스터’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인데, 그만큼 다양한 악기 구성이 특징이었다. 드럼과 피아노, 베이스부터 트럼본, 색소폰, 트럼펫과 클라리넷, 플루트까지. 이 앙상블이 만들어 내는 풍부함이 홀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많은 인원과 함께하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는 재즈의 재해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들만의 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편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이 작업을 ‘재작곡(Re-composition)’이라고 칭한다. 그만큼 완전한 해체와 재구성을 거쳐 새롭고 현대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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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공연을 관람하기 전 약간의 우려가 있었다. 평소 재즈를 즐겨듣는다고 한들, 재즈를 공부하며 듣진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이 연주하는 재즈를 나의 식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이번 공연은 재즈 초심자도 이해하기 쉽도록 진행되었다. 20세기 초 등장한 재즈라는 장르의 역사 순대로 곡을 배치해 시대별로 달라지는 재즈의 특성을 이해하기 쉬웠고, 덕분에 그 매력을 좀 더 세심히 알아갈 수 있었다.

 

그 선두에 선 곡은 1940년대 비밥 재즈를 대표하는 곡이자 찰리 파커의 ‘Anthropology’였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며 긴장감을 확 끌어올리는 곡이었다. 장르 자체가 고도의 기교를 자랑하는 장르인 만큼 상당히 실험적인 시도가 드러나는 연주였는데, 드럼이 꽤 긴 시간 독주로 리듬을 깔고 나면 피아노와 기타, 베이스가 차례대로 들어와 호흡을 맞췄다. 특히 곡 중간부터 귀에 확 꽂히는 플루트의 청아한 음색이 인상적이었다.

 

그다음으로 그들이 연주한 곡은 재즈 리스너, 연주자라면 너무나도 익숙할 찰리 파커의 ‘Donna Lee’였다. 여기서 이 재즈계의 스탠더드 명곡에 관한 한 가지 재미있는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 곡의 작곡가가 사실 찰리 파커가 아니라 또 다른 재즈계의 대표자 마일즈 데이비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섬세한 지식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게 오프라인 공연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었다.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Donna Lee’는 원곡에 비해 훨씬 박진감 넘치고 리드미컬했다. 비밥 재즈가 가지고 있는 거친 스타일을 훨씬 드러낸 듯했다.

 

이후 1950년도, 쿨재즈의 시대로 넘어가 들려준 곡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All Blues’였다. 이들이 재작곡한 ‘All Blues’는 마치 Ravel의 볼레로처럼 특정한 리듬이 반복되면서 중후한 매력을 드러냈는데, 그 무게감과 안정감이 앞서 팽팽하게 달려왔던 분위기를 한층 진정시켰다.

 

이날의 모든 연주 중에서 나에게는 이 곡이 제일 친숙했다. 나는 평상시 재즈를 들을 때 연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연주를 듣는 상황을 즐기는 편인데, 이 곡을 듣는 동안에는 얼음 소리가 달각거리는 주황빛의 칵테일 바가 떠오르기도 했고 짙은 우드향이 나는 카페에서 독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록 쿨재즈라고 불리지만 그 무엇보다 따뜻한 곡이기도 했다.

 

이 세대별 재즈 마스터피스 릴레이에 마침표를 찍은 곡은 비밥 장르에 리드미컬을 더한 하드밥의 대표곡, 조 핸더슨의 ‘Black Narcissus’였다. 안개 속 트렌치코트를 연상시키는 짙고 무거운 멜로디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함을 자아냈다. ‘All Blues’보다도 더 깊은 무게가 홀의 빈 공간마다 들어가 메우며 나른함을 지우고 금세 미묘한 텐션을 만들어 냈다.

 

그 뒤를 이어서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만의 오리지널 재즈곡 세 곡이 연주되었다. 첫 번째 곡은 열기가 가득 담긴 경쾌한 곡, ‘Stolen Yellow’였다. 다시금 트럼펫이 존재감을 확 드러내며 텐션을 끌어올렸고,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세계관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신기하게도 같은 재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들어온 재즈와는 다른 리듬과 연주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들려왔다. 특유의 보컬 사운드가 현란한 선율과 어우러지면서도 순식간에 뒤얽히며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건 물론, 순식간에 경쾌한 분위기로 홀을 장악했다.

 

이후 이어진 최정수 작곡가의 초심과 열정, 영감이 담긴 ‘Nach Wien 224’는 서정적인 느낌이 인상적인 곡이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파동을 일으키면 그에 답응해 다른 악기들이 풍부한 소리를 더해왔다. 곡 내내 당장 교양 프로그램의 BGM으로 쓰여도 손색없을 정도의 안정감과 온화함이 돋보였다.

 

마지막 곡인 ‘QUASAR’는 모더니즘을 넘어서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은 곧 익숙함으로 바뀌고, 광활한 선율의 끝이 어디일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가 특히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했는데 위로 쌓이는 보컬과 금관악기들의 당찬 연주가 웅장하고 신비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덕분에 완벽하게 ‘피날레’에 걸맞은 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곡을 듣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끝까지 낯섦을 잃지 않는 이 공연의 끝에서 나는 과연 어떤 감상을 가지고 이 성수아트홀을 나가게 될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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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뒤바뀌는 무드와 선율, 그 복잡하면서도 기묘한 조화를 함께 향유하며 제일 크게 느껴졌던 감정은 ‘불안’과 ‘안정’이었다. 재즈라는 음악을 들으면서 다음 멜로디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악기가 갑자기 튀어나와 자유롭게 노래할지 모르니 말이다. 또 같은 선율이라도 시시각각 다르게 연주될 수 있다는 점이 재즈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이번 공연에서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만의 ‘재작곡’을 거친 곡들과 이들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곡들을 감상하는 순간마다 나는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낯선 감각은 당연하게도 ‘불안’이라는 상태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불안이 말 그대로 스트레스로 다가온 건 절대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연주가 여러 번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불안을 느끼는 상황’ 자체가 안정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불안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변화무쌍한 재즈와 그 재즈를 더욱 변화무쌍하게 연주해 버리는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가 선보인 세계는 그러했다. 이들의 연주는 ‘불안’도 반복되면 ‘안정’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낯섦을 감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이들은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재즈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니 나는 불안을 기피하는 사람으로서 재즈를 더욱 가까이해야겠다는 결론을 냈다. 변화무쌍한 재즈만큼이나 이 세상은 시시때때로 변화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변모하며 나에게 끊임없는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재즈를 가까이하고자 함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일 감미로운 다짐이다.

 

마지막으로 장르와 세대를 한계 없이 오가며 거침없이 그들만의 오롯한 스타일로 재즈를 즐기고 향유해준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에게 감사를 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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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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