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도와 장례희망 그 사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12.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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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장례희망, 그리고 삶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지구에 태어나 삶을 이루는 모든 존재는 몇 초 뒤에도 생명이 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실을 저 멀리 한 편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그러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을 떠나는 순간, 묻어두었던 그 진실이 불현듯 떠오르고, 우리는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웃으며 수다를 떨던 그날, 편찮으셨던 할머니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 나도 그랬었다. 그 뒤론 어떤 정신으로 본가에 갔는지 어렴풋이 느껴질 뿐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21세기 한국의 장례 시스템은 아주 체계적으로 굴러갔고 애도와 현실 사이에 휘청거리며 수많은 자기합리화와 소망, 상상을 거치면서 슬픔을 삼키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산 사람은 또 계속 살아야 하지’라는 엄마의 말처럼 살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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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도 그랬다.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의 대형 잡지사 ‘뉴요커’에 입사 후 커리어를 시작하던 중 사랑하는 형이 시한부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는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사람들과 경쟁해 치고 달려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인 ‘경비원’을 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힐 만큼 규모가 방대하다. 연간 7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만큼 늘 사람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매일 약 열 시간가량을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기척을 죽이는 일은 저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주었다. 사람들이 입장하기 전 아무도 없는 전시실에 서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관람객 유형을 분류하는 등 미술관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일상들을 느끼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갔다.

 

자신과 비슷비슷한 배경을 가진 지난 동료들과는 다르게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살아가는 ‘보안 예술가’들과 함께 웃고, 응원하고, 나누다 보니 고요하고 단순한 일이 자신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 그가 업무 마지막 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품고 갈, 삶의 시금석이 되어줄 그림인 15세기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며 남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옛 기독교 예술품과 거기에 깃든 빛을 발할 정도로 선명한 슬픔이 좋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이 그림이 톰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며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하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중략)…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 경비원입니다⟫ 319~320p 발췌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끝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게 던져지는 깊고 묵직한 질문 같다. 어떤 이들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슬픔과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또 어떤 이들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천천히 탐구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결국 죽음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넣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


물리학자 김상욱은 생명보다 죽음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들은 대부분 죽은 상태로 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모여서 살아있는 상태가 돼요. 생명이라는 정말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죽음’이라는 단어에 위축되고, 그 의미를 충분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언젠가 나에게 닥칠 일이라는 생각으로 미뤄둔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죽음이란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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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의 멤버인 가수 이찬혁은 2022년에 발매된 솔로 데뷔 앨범 ERROR를 통해 죽음이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닌, 오히려 삶의 일부로서 우리가 끊임없이 직면해야 하는 주제임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 정규앨범인 ERROR는 총 11곡이 담겨있으며 모든 곡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주인공 ‘이찬혁’은 자동차 사고를 당해 ‘목격담’을 뿌리며 ‘Siren’ 소리를 내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하게 된다. 사고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 간신히 의식만 남아있는 그는 “이렇게 죽을 수 없어”라고 외치며 아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파노라마’처럼 보게 된다. 그리고는 신에게 딱 한 번만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빌며 자신의 후회가 시간이 멈춰 막히길 바란다. (파노라마, Time! Stop!). 소원이 이루어져 찬혁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그녀를 만나러 가(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자존심을 버리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마지막 인사, feat 청하). 신의 소원이 끝나버렸고 그제야 자신이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사람인 줄 알았으나 삶에 미련과 후회가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뭐가). 온전히 혼자가 되자 자신이 홀로 있을 때마다 전화로 안부를 물어봐 준 엄마를 떠올리며 자신의 바람이 다 담겨있는 성에 사람들이 함께하는 꿈을 꾼다(부재중 전화, 내 꿈의 성).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좀 더 사랑하고, 솔직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라 전한다(A DAY).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됐고 장례식을 치르며(장례희망) 이야기는, 앨범은 끝난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것을 바란다. 각 트랙마다 숨겨진 의미가 많고 청자마다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해석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제 4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축하공연으로 화제가 된 마지막 트랙 ‘장례희망’ 속에서 들려오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노래 제목처럼 ‘자신의 장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나 역시 이 곡을 들으며 ‘장례희망’을 떠올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떠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죽음이 그들에게 단지 슬픔의 무게로만 남기보다는, 그 슬픔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가끔 그땐 그랬지 하며 허허 웃어주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까이 두고 생각할수록 삶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아 떠나는 사람이 될 수도, 남겨진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우리는 매 순간 이 진실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이 당신에게도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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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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