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별로인 여행과 가득 찬 여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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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로인 여행을 했다. 누군가는 내게 바다를 더 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고, 누군가는 산을 더 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여유를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고, 구석구석 더 바쁘게 구경 다니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 의견들에 하나하나 해명해야 한다면, 뭔가에 대해 싫어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는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품은 적은 또 딱히 없었기에 아무것도 쉽게 콕 집어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감흥이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부터 감정의 샘이 다 말라버린 듯 마음 어디에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몇 달 전부터 티켓을 끊어놓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여행 출발일을 기다리던 동안에는 이따금 잠도 오지 않던 설레는 밤이 있었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는 지나치게 아무렇지 않았다, 다만 느낄 수 있던 건 매일 쉼 없이 야외를 돌아다니느라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인생 여행지’ 속에서 감동을 찾지 못하는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 다시 허락될지 모르는 3주간의 긴 여행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나 자신에게 죄스러웠다. 그래서 조급했고, 내일은 다른 여행을 해야겠다고 끙끙대며 나름의 대책을 찾았다. 그렇게 오늘은 무엇이 좋았고, 뭐가 힘들었으며 내일은 어떠해야 하는지 여행 일지를 적기 시작했다. 날이 지나며 그렇게 길어지는 일지 속에서 헤매다 뜬금없이 깨달았다. 난 여행을 잘못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까지의 인생 그 자체는 생각보다 더 잘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곧 공연이 올라갈 한 연극 작품을 각색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다른 작품의 홍보와 또 다른 작품의 드라마터그를 하고 있었으며, 그전에는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별도의 공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어떤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더 이상 노력할 의지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고, 내게 의지를 물어다 줄 만한 작업의 ‘재미’랄 게 아무 데도 없었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면서 정작 나에게 오는 감동은 없는 데서 찾아오는 자괴감만이 불쑥 느껴질 뿐이었다. 매사에 감흥이 사라졌다. 그렇게 언제인지 모를 순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다 점점 더 나를 지독히 괴롭히는 인생의 ‘노잼 시기’를 만났고, 난 무대와 연극이라는 1n년 간 갈구해 온 꿈을 잃었다. 그래서 떠났다. 활기가 사라진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열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간 세상 반대편에서 난 또 다른 노잼을 만나고야 만 것이었다.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는 게 이런 말인가 싶었다.
#2.
날씨가 좋아 하늘과 잎들과 건물의 모든 색채가 눈부시게 선명하다.
여행 셋째 날까지 일지에 적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여행의 ‘좋았던 점’은 이거 하나였다. ‘이곳의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보다 낮다’ 같은, 어떤 사실만을 전하는 듯 어조가 읽히지 않는 한 문장. 이 문장을 가지고 그래서 그다음에 대체 뭘 하겠다고 써야 할지 펜을 든 손에는 도무지 추진력이 붙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곧바로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아 또다시 의식적으로 끼니를 챙겨 먹듯 여행을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이 도시 이름을 치면 꼭 해보라고 나오길래, 장장 두 시간 반이 걸린다는 해안 길 트래킹 코스를 걸으러 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속에서는 내가 지금 얼음이 진작 다 녹은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계속 걷고 있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인지되지 못했다. 그러다 햇살이 너무 세고 다리가 아파 거친 바다가 보이는 한 바위에 앉았다.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멍하니 바다만 앞에 두고 있기엔 내가 시간을 그저 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급해졌다. 뭐라도 해보려고 ebook으로 결제해 놓고 잊고 있었던 한 시집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은, 뜻밖에도 내가 여행 중 만난 첫 번째 감동과 ‘유잼’의 순간이 되었다.
우연찮게도 시집은 다소 우울했다. 시인이 하루하루의 무기력과 지난함 속에 어떻게 잠겨지고 있는지, 그 속에서도 삶을 놓지 못하게 한 종잇장같이 얇은 생명력이란 무엇인지 한줄 한줄 적혀 있었다. 시인이 누구보다 지독한 ‘노잼’을 현재진행형으로 꼭꼭 씹어 넘기고 있는 흔적들이 가득했다. 흥미 없는 세상 속에 속으로 피 흘리고 있는 게 나 하나 뿐은 아니라는 사실에 갑자기 미동도 없던 맘에 눈물이 왈칵 났다. 그래도 또다시 숨을 내쉬며 살아야겠다는 시인의 죽지 않을 만큼 강인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제야 드러나는 눈물이 창피한지도 모르고 그냥 고개를 들어 내 앞의 바다를 눈 속에 담았다. 같은 내면을 가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들과 얇고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세상을 어떤 진동들로 가득 채웠고, 드디어 세상 앞의 내 내면은 요동쳤다. 바다와 하늘의 끝없는 맑은 파랑이 벅차도록 아득했고, 어린아이의 웃음에 어딘가 찡해졌다. 여행 일지에 쓸 다음 문장이 생각났다.
날씨가 좋아 하늘과 잎들과 건물의 모든 색채가 눈부시게 선명하다.
그 모든 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수천 년 전부터 너 같이 울적한 사람들이 살아내는 걸 내가 여기 서서 목격했으니, 너도 살아도 좋아.”라고.
이때 나는 한국에서 보던 것과 다른 세계의 풍경을 마주한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지구 반대편으로의 물리적인 이동, 그 자체가 아니었다. 심장 뛰는 리듬과 속도가 나와 비슷한 어느 다른 이들, 그들이 풀어나간 서사와의 만남, 그것이 나를 다른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왜 이걸 미처 몰랐나 싶었다. 나는 연극을 하면서, 매일같이 대본에 적힌 누군가의 서사와 만나고, 프로덕션 인원 하나하나가 이를 자신의 인생 속에서 새로이 풀어내는 무수한 서사를 감각하고, 서사와 나의, 서사와 배우의, 서사와 관객의 심박수를 맞추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매일이 내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과정이었던 것이고, 내 일이 곧 여행이었다. 그토록 ‘노잼’이었던 것들을 결국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멀리하고 나니 알아차렸다. 그것들이 결국 내가 늘 필요로 해왔던 것임을.
#3.
여행 일지에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는 과정이 참 오래 걸린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반복하는 한 가지 절차를 발견했다. 어떤 것이 좋았다고 적다가, ‘정말 이게 좋았나?’하고 고민한 다음, 쓴 것을 도로 지우고 다시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세상에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존재할 수 없기에, 일지가 채워질 리 만무했다. 더구나 나는 ‘이걸 정말 여행 중 좋은 추억으로 기록해도 되는 것인지’ 그 여부마저도 검열하고 있었다. 비싼 돈 내고 여기까지 여행을 왔는데 고작 이런 걸 가장 좋은 기억으로 꼽는 게 부끄럽지 않은 일인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누구 보라고 쓰는 일지도 아닌데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워 그냥 무턱대고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 가다가 사람 발걸음에 후다닥 도망가던 도마뱀을 봤을 때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파란 빛깔 새를 봤을 때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시끌벅적한 수다를 떨던 오래된 수공예품 시장을 통과할 때
낮고 낡은 중고 서점들에서 엽서 구경하다가 요거트 아이스크림 먹었을 때
밤늦게 누워있는데, 아직 잠들지 못한 밤 축제를 알리는 1층 술집의 비트 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때
쓰고 나니 어딘가 후련했고,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행 속의 특별한 하루처럼 떠올리면 흐뭇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나 오늘 아무것도 안 했어’였다.
그러니까, 정말 아무 행위도 안 했을 리는 없다. 단지 무언가 1분 1초도 안 쉬고 숨 가쁘게 몰두한 대상이 없거나,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목록을 써 내려가며 알았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냈든, 내지 않았든 간에, 나는 분명히 매 순간 ‘보고’, ‘구경하고’, ‘듣고’, ‘걷고’ 있었으며, 결국 분명히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또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그걸 기억에 남을 정도로 즐겁다고 느끼면서. 단지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산성의 기준으로 검열하고 그것을 없는 셈 치며 부정했을 뿐이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자책은 틀린 말이었다. 나는 평생 ‘아무것도 안 한’ 순간 없이, 매 순간을 무언가로 열심히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행을 와서는 모든 사소한 순간이 모여 내 하루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일상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럴 수 있었다면 인생이 진작 조금 더 여행처럼 느껴졌을 수 있었을 텐데.
여행이 별로였다지만, 그 덕에 여행 일지는 가득 찼다. 여행을 보다 더 잘 하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에서 시작했달까. 나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이 여행이 어쨌든 소중해서, 아무리 지난해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재미없는 일로 보람 없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초조했다. 생각해보면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가 함부로 그만두지 못하고 늘 나를 채찍질하며 사는 이유는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삶이 그만큼 소중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날 당시 했던,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의 삶을 저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삶과 나의 길고 긴 관계 속에서 일종의 반항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일지 속에서 여행을 ‘여행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요소들이 내 삶의 곳곳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다만 그 모든걸 깨달을 약간의 시간마저 나에게 주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리 빛나는 랜드마크라도, 한 곳에 다닥다닥 세워 놓고 몰아 본다면 거기에 둘러싸여 있는 여행객은 눈부셔 어지러워하며 불쾌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익숙한 곳을 걸을 때와 처음 가는 여행지를 방문했을 때, 우리의 걸음 속도는 다르기 마련이다. 익숙한 곳에서는 목적지만을 위해 빠르게 걷지만, 낯선 여행지에서는 스치는 모든 것에 호기심과 경외감을 품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이제 내 삶의 모든 빛나는 랜드마크들을 빠른 걸음으로 어지럽게 훑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소중히 살펴봐야지.
다소 별로인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결코 ‘대유잼’이기는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아는, 하지만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긴 일생이란 여행길에 다시 오른다.
[박보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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