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말 쓰면 안 돼”란 막연한 언어 공포 현상에 “왜?”라는 질문을 날카롭게 던진 걸 넘어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라는 고민까지 더해준, 저자의 노고에 더없이 감사하다."] - 남형도 기자(《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저자) 추천사 중에서
책 뒤표지에 쓰인 남형도 기자의 추천사를 읽자마자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쓰면 안 되는 단어가 많아지고,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그거 쓰면 안 되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세상 아닌가. 이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언어를 가지고 소통할 수 있을까.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저자가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을 미워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쓴 책이다. 우리네 선의가 무례가 될까 봐 침묵을 선택하는 목소리를 ‘착한 대화 콤플렉스’라고 정의하고, 언어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 머리 싸매고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언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는 언어의 풍경이 꽤 많이 등장한다.
<나는 솔로> 16기 광수가 토씨 하나로 사랑을 잃은 이야기, 콜 센터 상담사의 ‘공감 호응’이 고객에게 부담으로 와닿은 이야기는 분명 낯선 모습이 아니다. 대화의 맥락이 잘린 상태에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우리네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단절을 택하는 일까지 떠올리면 스쳐 지나가는 일화가 꽤 많았다.
거의 모든 일화에 공감하며 읽었지만, 특히 ‘노인’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 크게 공감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나이가 드는데, 언제까지 노인을 타자화할 수 있을까. ‘노인’의 이미지를 미디어가 소비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리라는 마음으로 지하철 무임승차를 언짢게 바라보는 일부 청년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대에 따라 바뀌어 온 노인을 부르는 호칭은 언제까지 영원할까.
이렇게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우리네 삶에서 한 번은 스쳐 지나갔을 언어와 그 사회적 맥락을 예리하게 조망한다. 그러면서도 특정한 단어 사용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며 우리에게 무작정 순한 말을 사용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 '꼰대', '라떼' 등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한 단어를 무작정 미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단어가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 같이 고민하기를 권장한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매일 타자를 인식하고, 언어로 타자를 굴절시킨다. 달리 말하자면, 특정한 사람을 놓고 나와 비슷한 결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실망하기도 한다는 소리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만큼 타자를 이해할 수 있다면, 타자를 포용하고 사랑하기 위한 언어는 어떠한 언어여야 할까?
궁금하다면 “착한 대화 콤플렉스”를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