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로를 날려줄 그들의 좌충우돌 여행기 [드라마/예능]

'핀란드 셋방살이'를 통해 여행 예능을 알아보다
글 입력 2024.12.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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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피로한 12월을 보내고 있었다. 늘 읽던 책이 손에 잡히지 않고 영화를 봐도 집중이 금세 깨졌다. 해야 할 일을 하다가도 어느새 포털 사이트 뉴스 칸을 정독하고 있었다. 자기 전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처음으로 뭔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바로 tvN의 새 예능 <핀란드 셋방살이>의 방송이었다. 우연히 재방송을 보다 핀란드의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근히 ‘힐링 여행 예능’이라는 포맷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었지만, 정신적 피로감을 크게 느끼던 나에게 <핀란드 셋방살이>는 잠깐의 평화로움과 재미를 선사했다. 더불어 해당 예능을 시청하며 비슷한 포맷의 예능이 가진 한계점과 진정한 행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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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능의 필수요소, 풍경과 힐링


 

<핀란드 셋방살이>는 네 명의 연예인이 세계 행복지수 부동의 1위인 핀란드에서 직접 살아보는 내용의 예능이다. 자연의 경치가 아름다운 ‘라플란드’라는 시골에서 현지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 보며 그 안에서 정말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 체험한다.


여행 예능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아름다운 자연을 화면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 셋방살이>역시 핀란드의 라플란드라는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대한 푸른 산과 맑고 깨끗한 호수, 마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야생동물까지. 우리가 유럽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환상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도시의 삭막한 분위기에 지친 시청자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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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핀란드 셋방살이>만의 독특한 점은 바로 여행보다 ‘살이’에 가까운 형태라는 점이다. 기존의 여행 예능의 경우 대체로 도시의 숙소를 전전하며 다양한 여행지를 탐방한다. 그러나 이들은 핀란드 시골 마을의 오두막에서 살림을 차린다. 외국의 여행지를 전전하고 탐방하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에 인간을 맞춰나간다. 분명 외국 여행 프로그램이지만 관광이 아닌 거주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여행 예능과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다.

 

게다가 이들은 ‘NO 전기, NO 수도’인 오두막에서 살아가야 한다. 기존의 여행 예능이 휴양지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즐기는 ‘쉬운 여행’이었다면 이 예능은 출연진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해야 하는 ‘생존’에 가깝다. 이들은 전기도 전파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일정 기간 ‘살아야’ 한다. 직접 장작을 패 불을 때야 하고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수도도 없어 먼 곳에서 샘물을 길어와야 한다.

 

 

[크기변환]핀란드 이제훈.jpg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땐 ‘유럽형 삼시세끼’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도시 생활에 익숙한 출연진들이 타지의 시골 마을에서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는 내게 재미를 주고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특히 이동휘, 이제훈, 곽동연 배우와 가수 겸 배우인 차은우라는 네 사람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상을 보내던 네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서로가 교류하는 모습에서 쏠쏠한 재미가 더해졌다.


전반적으로 출연진 대부분이 도시형 삶에 익숙한 편이라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마을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동휘 배우는 핀란드의 오두막에서 처음으로 장작을 패는 모습이 나오는 데, 초반에는 감을 잡지 못해 실패하기 일쑤였다. 또 넷 중 나이가 어린 곽동연 배우만 유일하게 자취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나이 서열과 관계없이 곽동연 배우의 지침에 따라 요리와 각종 집안일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힐링 여행 예능, 어디까지 와 있나


 

사실 <핀란드 셋방살이> 방송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약간의 우려가 들었다. 이미 국내 예능 콘텐츠 시장에 ‘힐링 여행 예능’이라는 포맷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핀란드 셋방살이>의 경우 여행보다는 거주에 초점을 맞춘 힐링 예능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지만, 결국 이 예능 역시 유럽 시골이라는 이국적인 풍경과 독특한 음식 등 여행 예능의 기본적인 요소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을 배경으로 한 힐링 예능 포맷은 언제부터 흥행했을까? 국내 주요 도시와 마을이 배경인 예능은 단연 <1박 2일>이지만, 이는 ‘힐링’보다 게임이라는 요소가 중심이 된 버라이어티 예능에 가까운 형태였다. 본격적으로 ‘힐링 예능’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은 단연 2010년대 중반 방영된 <삼시세끼>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하드하고 자극적인 게임 위주였던 버라이어티 예능 시장에서 배우들이 국내의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삼시세끼>는 당시 다른 예능과 큰 차별성이 있어 인기를 끌었다.

 

 

[크기변환]삼시세끼 고창.jpg

 

 

그러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잠시 주춤했던 여행 콘텐츠가 다시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이제 힐링 여행 예능은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여유와 힐링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과, 현지에서 벌어지는 자극적인 에피소드를 강조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출연진이 직접 외국으로 떠나는 방식과, 관찰형 예능의 포맷을 결합한 방식 등 다양한 유형으로 나뉜다.


현재는 여행과 힐링이라는 카테고리를 세분화하여 프로그램마다 나름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추세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큰 카테고리에서 봤을 때 여행 관련 콘텐츠는 포화상태이고, 늘 비슷한 구조와 포맷을 따른다는 한계가 있다. 시청자의 힐링을 목적으로 제작되지만 결국 시청자에게 반복을 통한 피로감을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핀란드 셋방살이>를 보며 핀란드라는 배경 자체가 이국적이고 낯선 느낌이라 흥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12월의 대한민국에 있는 내가 처한 현실과 너무 대비되어 약간은 씁쓸하기도 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뉴스 특보를 확인하는 나와, 화면 속의 대자연에서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출연진의 모습에서 접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괴리감은 이전의 다른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느꼈던 부분이었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의 외국을 배경으로 하는 여행은 그 장면 자체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온전한 공감을 제공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는 해당 작품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포맷을 가진 예능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한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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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핀란드 셋방살이>를 보며 힐링과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사실 아직도 행복이 무엇인지 명확히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내가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낄 때 그 원인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조건에는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휴양지나 자연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당연히 힐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행과 힐링이 오직 그런 형태로만 정의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나의 삶 속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나만의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 때로는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당장의 내 삶에 잠깐의 쉼표를 주는 일들은 무한하다.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위한 내면의 조건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셋방살이>를 보며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개인의 행복에 국가와 문화라는 외부적 요인이 어느 수준으로 영향을 미칠까? 여전히 잠깐의 여행이나 정착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내가 생각하는 힐링과 행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분 관리 이론에 따르면 시청자는 현재 기분을 최적 상태로 바꾸기 위해 코미디와 같은 프로그램을 선택한다고 한다. 특히 흥분 수준이 정상보다 높을 때 이를 낮출 수 있는 차분한 콘텐츠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긴장과 피로, 분노의 연속이었던 12월의 나에게 <핀란드 셋방살이>는 기분을 잠시 전환하도록 돕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드넓은 호수와 빽빽한 산의 풍경, 따뜻한 오두막 안팎에서 장작을 패고 요리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을 보며 아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나아가 나에게 행복이 어떤 의미인지, 또 나는 내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힐링과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긴장을 완화하는 짧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다음 행동을 위한 응축된 힘이 된다. 그동안 너무나도 피로했던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잠시나마 힐링을 느끼며 다음 발걸음을 위한 에너지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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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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