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 - 착한 대화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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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면 때때로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그때 그 이야기는 하지 말걸.',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이미 지나간 이야기임에도 그것을 곱씹으며 뒤늦게 떠오른 더 나은 대화 형태로,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된 후에 아예 말을 줄여버린다.
나의 경우에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하는데, 대개 누구와 다투고 온 경우, 혹은 다른 의견을 나누고 온 경우에 그렇다. 이 책은 뭐랄까, 왠지 그런 내가 별로기도 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면서도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되었다.
말의 풍경엔 사람이 있습니다. 동시에 말이란 뉘앙스와 맥락, 눈치, 억양을 피해 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정작 그 활자는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셈이니까요. 활자만 가지고 섣부른 판단을 해버리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보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잘한다, 잘해!'라는 말이 결코 칭찬으로 쓰일 수 없음을 아는 것처럼 언어는 우리가 어떻게 빚어나가느냐에 따라 때론 무례함으로, 때론 사랑으로 가닿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말은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까요, 살리고 있을까요.
내 선의가 무례가 될까 봐 침묵을 선택해버리는 목소리. 그걸 이 책에서는 '착한 대화 콤플렉스'라 가정해봅니다. 콤플렉스는 결핍이자, 갈구하는 마음이자, 불안인 동시에 애정을 대변하는 단어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선의와 무례의 기준 앞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해 본 이들에게 언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세상이라지만, 해석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라는 것.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해하다는 것. 그렇기에 정답은 없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착한 대화를 지키고자 하는 분들의 갈증이 다소나마 해소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내용 중에 우리나라의 언어에 대한 게 있었다. 그 글에 따르면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한국어를 금방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정말 기본적인 것에 불과한 말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게 어느 나라의 언어든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언어는 그 많은 언어들 중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하는데 원인은 용언의 활용에 있다. 가령 '먹다'라는 단어를 두고 먹는데, 먹어서, 먹었지만, 먹고, 먹으려면, 먹은, 먹든, 먹던, 먹히는, 먹다가 등으로 형태가 변하지 않는가. 이 책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더불어 우리는 분명히 발하지 않고 한 가지 말로 다양한 의미를 담아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유튜버가 방송을 통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가 어떤 물건을 구입하러 갔고, 주인 아저씨가 물건 관련해 다른 사람과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유튜버는 그가 전화하는 광경이 신기했다고 말했는데, 주인 아저씨가 전화 내내 '어'라는 말만 했기 때문이랬다. 주인 아저씨가 '어'라는 글자만으로 전화를 하고, 전화 상대는 그 말만 들으면서 모든 걸 알아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럿일까. 아마 목소리톤이나 맥락 덕분일 것이다.
"어?"는 "뭐라고?" 등의 되물음을, "어~"는 이해했음이나 호응을 "어..."는 거절이나 망설임을, "어!"는 강한 긍정이나 타이름 따위를 우리들은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이쯤되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무색하다. 일단 '어'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봐야 한국어를 이해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한국어의 '난이도'는 곧 무궁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음절 하나에도 이렇게 다채로운 뉘앙스를 담아내니 글자에 점 하나 빼고 더하고, 받침 하나 붙이고 말고에 따라 또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단 말일까.
단순히 한국어의 위대함이나 어려움을 말하고자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이렇듯 한 단어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우리말이기에,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남에게 갔을 때 다른 의도로 잔해질 가능성이 더없이 높다. 나는 누군가를 걱정해서 한 말이 그에게는 자신에 대한 거절로 전해질 수도 있듯. 우리가 말 하나를 할 때 오래 고민하고, 적당한 말을 찾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유독 눈이 갔던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언어 감수성, 잠재적 가해자 혹은 피해자, 직장 내 괴롭힘, 차별 언어, 갑질, 가스라이팅, 하루가 멀다 하고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단어들. 이 역시 공감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뉴스에 나오는 갑질을 보며 '세상에 저런 나쁜 사람이 다 있데?" 혀를 차면서도 정작 나는 그럴 사람일 리 없다는 믿음을 가지는 일, 감정 노동으로 고충을 토로하는 노동자 목소리에 공감하면서도 내가 불편함을 겼는 상황에선 분노를 표출해도 마땅하다 여기는 일. 과연 우리의 삶은 '공감'이란 단어에 얼마나 닿아있는 걸까. '진짜 공감'을 강요하는 주범에 우리 스스로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걸까. 자문해본다.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누구에게나 쉽게 던져놓는 버릇이 있었기에. 말은 그렇게 던져놓고도 사실은 상대방을 평가했던 건 아닌지. 그저 공감의 추임새만 열심히 던졌던 건 아닌지. 그러니 공감이란 이토록 갈 길이 먼 것이다. 가짜 언어들만 가지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정서. 하지만 진심으로 이해하는 순간 '맞아'라는 두 글자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주로 공감하는 상황에서 쓰일까,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쓰일까. 내가 보기에 이 말은 공감되지 않을 때 더 많이 쓰인다. '(나는 그러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지'의 형태로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반대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감되는 것도 아니기에 원만한 표현으로 구실 좋게 할 수 있는 말 중에 이보다 적합한 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구실 좋은 '그럴 수 있다'는 말이 사실 공감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이는 곧 더 가까이 다가가기는 귀찮지만, 멀어지기 싫다는 말일테니 말이다. 책에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창문 닫힌 공감보다는 '왜 그렇게 생각했어?' 등의 질문이 상대방과 저 가까워질 수 있는 길 아닌가 싶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무조건 니 말이 맞아, 그게 맞는 거 아니야?, 걔가 잘못했네 따위보다는 조금 더 그가 처한 상황에서 느낀 감정을 깊게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가 매일매일 하는 말에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을까,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을까를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어느 것을 많이 듣고 있는가도. 생각해보면 대놓고 부정적인 말을 내놓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부정적인 맥락과 부정적인 메시지가 있을 뿐이다. 하지 않아도 될 (좋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그들은 또 한 번 우리가 대화에 참여하지 않거 싶게 만든다.
사람들의 대화 방법은 다양하고, 의견을 전하는 방법 또한 각자 다르다. 누구는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여 본 의도를 확실하게 전하고자 할 테고, 누군가는 듣는 이의 기분을 생가해 최대한 돌려 말하는 것을 지향하듯 말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대화 방식이 있고, 그 차이로 인해 얼마든 갈등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민감하게 단어를 고르면서 대화를 하는 이유는 결국 모두 혼자 살 수는 없어니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 입장을 보았을 때 대화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 같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불편해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이게 과거와 달리 요즘 심해진 걸까 등의 생각을 자주 하는데, 전보다 불편한 게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그만큼 사람들이 전보다 많은 것을 알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 수 없다. 그걸 이해하고 나면 대화의 불편함이 마냥 밉지만은 않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내 고민이 해결됐다거나 책 전체에 동의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래도 시대를 많이 반영하였고, 읽는 독자를 높게 설정한 것은 아닌 건지 대체로 쉽고 가벼운 느낌이 많이 드는 책이었다.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이 우리가 한 번쯤 해봤을 생각, 겪어봤던 일을 토대로 하고 있어, 읽는 데 어려움은 없다. 언제부턴가 발언 하나하나가 문제가 될까 입을 다물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씩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박수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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