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11월의 마지막 날에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를 보러 아르코예술극장으로 향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간 것이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그리고 조금은 낯선 단어인 ‘포로 감시원’이라는 단상만을 가지고 공연을 보러 간 것이다.
필자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공연 내용은 아마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룬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를 다룬 것이겠군.’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그러나 공연을 본 이후, 그러한 내 생각은 아주 좁은 식견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 동원된 ‘피해자’가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익히들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명확한 구도를 좇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군에 의해 강제 동원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일본군의 강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연합군 포로를 관리 및 감시하는 안타까운 ‘가해자’였던 포로 감시원 최영우라는 한 인물을 다룬다.
우리는 그 최영우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이긴 하지만, 단 한 번의 폭행으로 인해 그가 감시하던 네덜란드 포로 아드리안 하사는 고막이 터져 귀가 멀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전쟁이 종료된 후 집행된 제판에서 최영우는 ‘제네바 협약’ 위반 혐의로 사형의 위기까지 빠지게 된다.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폭풍 속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의 구분도 모호해진 채, 최영우를 포함한 수많은 ‘개인’들은 평생을 전쟁의 잔상을 겪으며 고통받는다. 19살에 불과했던, 좀 더 넓은 세상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던 최영우는 그렇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전범재판에서 최종 판결로 3년형을 선고받아, 결과적으로 6년만 에야 고향 땅 남원을 밟게 된다.
극 내내 제기되었던 최영우의 물건 혹은 집필한 원고 옆면에 적혀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사실은 고향 남원으로 가는 기차 시간표였다는 것을 엔딩 장면에서야 알게 되었을 때, 이로 말할 수 없는 아린 느낌이 필자 안에서 올라왔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20대를 보내고 싶어 했던 그의 소중한 20대를 나는 어떻게 보내왔는가.’ 하는 생각이 20대의 끝자락에 있는 필자의 20대를 돌아보게 했다.
연출의 측면에서 이 연극을 살펴보자면, ‘라이브필름 퍼포먼스’라는 소개에 맞게 이 극을 보는 관객은 연극을 관람하는 동시에 무대 중앙에 있는 화면을 같이 보게 되면서, 거창한 장소적 장치 없이 미니어처 건물과 소품을 이용한 극 내 장소의 이동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다.
필자는 사실 많은 공연 장르 중에서 연극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연극을 보게 되면서 연극이 가진 특유의 장점인, 연출된 장치를 통해 극의 흐름과 내용을 관객들이 상상하면서 이해하도록 이끄는 점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