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다움을 부정당한 그대에게 -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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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반복을 여실히 느끼는 한 주였다. 공교롭게도 공연을 보고 글을 쓰기까지 일주일 사이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6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해제되는 새벽이 지나갔다. 지체없이 그간 겪었던 사회적 참사들이 떠올랐고,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다시 굽어졌다 이내 분노에 접어들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제 현존하는 모든 세대가 계엄을 경험한 나라가 되었다고.
이때다 싶어 국민의 환심과 권세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반복적인 퍼포먼스와, 탄핵이라는 중차대한 이슈 앞에서 발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민주주의라는 말이 둥둥 떠다닌다. 그 말을 높이 던져버리려는 권력가들과 목소리를 높이는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나선 유권자들. 더 나은 상황이라는 것은 올 수 있을까.
그러나 무력함에 젖어버리는 대신, 극이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어지러운 현실과 연결지어 몇 자라도 적어본다.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스무살의 청년 최영우가 일제 치하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참전하여 겪었던 실화를 적은 육필원고가 외손자에게 발견되면서 출간된 르포르타주가 원작이다.
극 중 최영우의 직책인 포로감시원은 아직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중 하나다. 이들은 일본군 소속으로 연합군 포로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수의 포로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포로감시원 상당수가 연합군의 전범재판 후 B,C급 전범이 되거나 수십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실화에 힘입어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일본군 소속이지만 정식 군인이 아닌 포로감시원이라는 신분, 일본인이 아닌 식민지인이라는 정체성, 미국, 영국 등의 서양인 포로들 사이에서 경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 바로 포로감시원이었다.
작품은 참담한 역사의 파고 속에서 어떤 이름도 남길 수 없었던 수많은 조선인 포로감시원들과,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그들의 복잡미묘한 상황을 조명하고, 이들을 대변하는 주인공 최영우를 통해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어느 평범한 청년의 좌절된 꿈, 고뇌, 회한 등의 다양한 심리를 자세히 극에서 다루고자 한다.
최영우의 손자 이경현의 시선으로 극은 시작된다. 관객이 바라보는 무대뿐 아니라 중앙 상단의 스크린으로 비치는 한뼘 더 가까운 시점의 배우들은 극의 깊이와 몰입감을 한층 더한다.
콘서트의 전광판은 이미 일반적인 연출이겠지만 극 중 배경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보여준다거나 이 미니어처와 배우를 겹쳐 장면의 이해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가장 좋았던 점은 거리상의 한계를 넘어 반(반한자) 매체적 성격을 더해 배우의 미세한 표정변화를 가깝게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배경에 놓인 인물, 인물 사이의 관계, 인물의 감정에 따라 거리를 달리하며 볼 수 있어 감상의 깊이가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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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는 인간다움을 부정당했다. 타 포유류를 포함한 짐승이라 부르는 것들과 인간이 다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유의지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고 생존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위해 판단하고 행할 줄 알기에 인간은 다르다. 이 관점에서 최영우는 집안 환경, 시대적 환경으로 인해 포로감시원이 되기를 이미 선택할 수 없던 상태였다.
이루고자 하는 바와 의지가 있어도 그것이 실현될 수 없던 역사 속에서 강제된 삶을 살다간 사람. 오직 집에 돌아갈 날만을 꼽아 기다리며, 대학공부에 대한 열망을 붙잡아 먹고살다 말그대로 운이 좋아 생존한 선조들 중 하나. 일제의 군인도 아닌 포로감시원이었으나 전범의 누명을 쓰고 이리저리 겹친 모순을 살아낸 청년.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가해자라는 프레임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를 책망했을 여린 영혼 앞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늘날의 청년은 어떻느냐는 극 말미의 물음에 마음이 이내 아리기까지 했다.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한 독립의 여파는 여전하다고, 배곯는 사람은 줄었어도 영혼이 아픈 사람은 늘어간다고. 이제 엊그제 새벽에는 비현실적인 공포가 다녀갔다는 답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고통이 휘발되기를 기다리지만은 않을 거라고. 상실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낼 수 있는 목소리와 움직일 수 있는 몸을 감각할 것이라고.
여전한 시대적 모순과 파고를 옆사람과 손잡고 거슬러보겠다고 조용한 편지를 갈무리한다.
[차소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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