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고독할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롭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자신만의 가치를 어디서 찾았고, 어디에서 그것을 따를 의지가 나온 걸까.
<고독의 지리학>은 그런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비추는 주인공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의 세이블섬에서 몇십 년째 살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1971년 처음 세이블섬에 도착한 이후 그곳에 매료되었다. 그 섬을 이루는 식물들에, 섬에 사는 말들에, 곤충들에게 말이다. 그녀는 그곳에 홀로 남기로 결심했다. 영화는 2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루커스의 삶을 다룬다. 그녀는 말의 분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연구하고, 말들의 탄생과 죽음을 기록해 말 각각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고, 곤충을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며 세이블섬의 생태학을 연구하는 장본인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세이블섬이라는 배경 자체다. 영화는 시작부터 섬의 모습만을 담는다. 루커스는 주인공이지만 영화 내내 나오지 않고, 남은 자리를 세이블섬의 동식물이 채운다. 별빛에 노출 후 해초에 현상한 필름, 칼로소마 딱정벌레에 전극을 붙여 생성된 음악 같은 것들이 스크린을 메운다. 말이 죽은 후 그 자리에 남은 곤충들, 서서히 생성되는 모래언덕, 바닷가에 모여 있는 회색 물개들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함으로써, 세이블섬의 아름다움을 느낌으로써 우리는 루커스의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말이다. 루커스가 하는 것은 세이블섬의 생명 목록을 작성하는 것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세이블섬을, 나아가 세이블섬처럼 아름다운 지구의 환경을 지키고자 한다. 바닷가의 쓰레기를 모으고 정리함으로써 말이다.
그녀는 세이블섬으로 떠밀려오는 풍선을 모두 모으고, 미세 플라스틱을 걸러내고,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 썩지 않는 물건들을 세척해 정리하고 그 모든 폐기물을 목록화한다. 어떤 물건들이 떠밀려오는지, 그것이 어느 나라의 물건인지, 어느 시기에 주로 발견되는지를 말이다. 예를 들어서 그녀는 풍선 색깔을 통해 날짜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핼러윈에는 주황색과 검은색 풍선이, 크리스마스에는 붉은색과 초록색 풍선이 주로 세이블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세이블섬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그녀의 작업은 북서대서양의 오염을 연구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이러한 루커스의 삶을 보다 보면 그녀가 하는 일이 곧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곁에 살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가 막을 내리고 한 문장이 나온다. “루커스는 아직도 세이블섬에 산다.” 영화 안의 모습은 루커스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을 프레임화한 것이고, 내가 극장에 앉아 있는 지금도 그녀는 세이블섬에서 풍선 조각을 모으고, 말을 관찰하고, 플라스틱 조각들을 건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영화관을 나선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영화를 만든 재클린 밀스는 전주국제영화제에 보내온 인사 영상에서 이 영화를 “사랑으로 한 일(labor of love)”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4살 때 루커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항상 그녀는 자신의 영감이 되었다고. 무언가를 향한 사랑은 그것을 지키도록 추동한다. 루커스가 세이블섬에 살면서 하는 일이, 재클린이 루커스와 세이블섬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한 일이 그것이다. 사랑에 붙잡힌 자들은 그 사랑으로 무언가를 창조한다. 그리고 종종 그 창조물은 동력이 되었던 그 사랑을 초과하곤 한다.
『진리의 발견』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름다운 삶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은 인생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루커스가 불행해 보인다고, 고독해 보인다고 말할 테지만 나는 영화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을 쥐고 있는 한 인간을 보았다고 믿는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인간을 앞설 수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그 고독한 순간들에 있을지 모른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별빛에 노출한 뒤 해초에 감광한 필름이 보여준 그 아름다움 말이다. 영화에서 20대의 루커스가 화면을 응시하며 말한 “저는 이 섬을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에는, 재클린이 “이 작품은 사랑으로 한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어떤 힘이 있다. 그러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고귀한 삶에 대해, 무언가를 사랑하고 그것을 끝끝내 지키는 일에 대한 영화이자, 그 사랑의 실천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