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문화외교를 주제로 한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한국이 자신을 어떤 나라로 묘사하는지부터 그 이미지를 위해 선택하고 또 등한시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배우는 ‘최애’ 강의다. 내가 바라보는 것의 뒷면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어렵고 또 흥미롭다.
그런 맥락에서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이미 생각했어야 할 것을, 역사가 놓친 부분을 집어주는 연극이었다. 1930년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포로 감시원으로 활동했던 3,200여 명의 조선 청년들.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이 고루한 역사책으로 느껴졌던 몇십 년 전의 기록에서 걸어 나왔다.

이들은 사실 대한민국이 유구히 쌓아온 ‘순수한 피해자’의 이미지와 불합하는 증거다. 그렇기에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상관의 절대적인 지위 아래 학대당한 식민의 피해자임에도 포로들에겐 폭력의 얼굴을 한 가해자였다.
2024년의 우리가 보이게도 이들의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데, 당시의 본인들과 재판관들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사형을 당한 이도, 감형되어 최영우와 같이 길지 않은 형을 산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재판에서 제기된 질문이 생각거리로 남았다. “무엇이 그들을 포로 학대의 범죄자로 만들었는가?” “만약 그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다면 포로 감시원들의 포로 학대는 면죄되어야 하는가?” 그들은 일본군에 ‘자원’ 입대했고, 일본 이름을 썼다. 그러나 군대 안의 상하관계 속에서 그들은 조선인으로 취급받았고, 가장 말단의 실무자로서 포로들과 상관 사이에서 항상 시달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폭력은, 학대로 인한 상처와 죽음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시대의 급류 속에서 방황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참 복잡했다.

공연이 끝나고도 연극이 던지는 질문을 곱씹고 있는 데엔 영화와 연극을 접목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
영화와 연극을 접목했다는 이 실험적인 연출이 꾸준한 몰입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걸 선호하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특히 미니어처와 다양한 각도의 재생산된 화면 연출 덕에 전통적인 연극에서 보기 힘든 연출을 즐길 수 있었고, 중간중간 극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화면을 통한 관객 시선의 분산이 얼마큼의 가치를 갖는지는 잘 모르겠다. 함께 연극을 관람한 동행인의 경우,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극으로의 몰입을 깬다는 평을 했다. 배우의 감정 표현과 연기에 집중하는 실시간성이 최고 강점인 연극의 특성상, 시선의 분산과 혼란이 배우로 향하는 관객의 집중도를 낮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을 통해 연극이라는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문화의 발전이라는 거창한 말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수작이다. 극을 관람하면서 모든 순간 알맞은 자리에서 연기하는 배우, 카메라 감독들의 현장 퍼포먼스에 감탄했다. 일인 다역, 장면이 끝난 후 미니어처를 움직이는 것까지 도맡아 열연하는 배우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끔은 달리지 말고 걸으라고들 하던데, 어쩌면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빨리, 매 순간 달리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우리가 여전히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경제 발전에 급급해 놓쳐온 사회적 문제들을 조명하는 연극을 통해 지워진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