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빛을 파고드는 여성들의 이야기 – 사일런트 스카이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글 입력 2024.12.0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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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가 연말을 맞아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달 29일에 막을 연 이 작품은 아름다운 별의 이야기와 여성 천문학자의 삶에 음악과 로맨스 코미디를 적절히 섞어 무대에 옮겨온 작품으로 이달 2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극의 배경이 된 19세기 초 여성이 아직 참정권도 갖지 못하던 시절 헨리에타 레빗과 그의 동료 ‘윌러미나 플레밍’, ‘애니 캐넌’ 등은 현대 천문학의 열쇠가 될 주요한 성과들을 내보였다.


극의 주인공인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은 세페이드 변광성 연구를 통해 인간이 연구할 수 있는 우주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연구로 인해 우리는 별의 밝기와 거리를 측정하고 우리 은하 너머의 우주를 인식할 수 있게 됐다.


헨리에타 레빗이 연구한 세페이드 변광성은 대표적인 맥동 변광성이다. 변광성은 시간에 따라서 밝기가 변하는 별을 말하고 그중에서도 맥동 변광성은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면서 밝기가 변하는 별을 뜻한다. 이 별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관측이 가능할 만큼 밝아 다른 별이나 외부 은하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으로 쓰이며 ‘우주의 등대’라고 불리고 있다.


그녀는 변광성들이 며칠에 한 번씩 밝아지고 어두워지는지 변광 주기를 측정하며 변광성의 밝기가 더 긴 주기로 천천히 깜빡일수록 그 별의 실제 밝기가 더 밝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레빗의 법칙(Leavitt’s law)이라고 불리는 이 비례관계는 별의 밝기와 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측정 지표로 현재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최초의 하버드 계산원이었던 윌러미나 플레밍은 말머리성운, 백색왜성 등을 최초로 발견했고 애니 캐넌은 별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는 하버드 항성 분류법을 완성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 은하라는 좁은 범위에만 갇혀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이뤄낸 성과는 시대와 사회상을 넘어 오늘날까지 천문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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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 스카이 원작은 역사·과학·문학 분야의 여성 인물들을 주로 조명하는 미국의 극작가 로렌 군더슨(Lauren Gunderson)의 작품이다. 윤색과 연출은 맡은 김민정은 “우주와 음악이 연결되어있다니. 여기에서 파생된 호기심과 기쁨이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밀려왔다”며 “아름다움의 영역이 무한으로 확장되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민정 연출가의 언급처럼 아름다운 음악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다. 주제와 잘 어울리는 음악과 피아노 선율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고 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조명 연출과도 적절히 어우러져 극 전반에 아름답고 포근한 인상을 준다. 극 중에서 헨리에타 레빗의 동생인 마거릿 레빗이 연주하는 피아노는 자연스럽게 극에 배경음악으로 기능하며 사일런트 스카이만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마거릿이 남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오페레타를 쓴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오페레타는 이탈리어어로 ‘작은 오페라’라는 뜻으로, 오페레와 비슷하지만 오페라보다 더 대중적이고 가벼운 음악이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언니가 하버드로 떠난 사이 여성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전통적인 의무를 다하던 그녀가 여자로써의 역할이 아니라 자신의 소명을 찾아가는 서사 역시 주목할 지점이다.


앞서 소개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룬 여성 천문학자들에게도 처음에는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컴퓨터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망원경을 만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하루 종일 건판(별빛을 검은 반점으로 남긴 유리판)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그조차 여성에게는 더 적은 임금을 지급해도 된다는 이유로 고용됐던 것이었다.


당대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천문학자라는 말도 붙여지지 않았고 연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플레밍은 1899년에 여자로서 최초로 하버드 천체사진 큐레이터로 임명받았고 애니는 1925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됐으며 1938년에 하버드의 천문학자로 정식 임명됐다. 헨리에타 레빗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암울한 사회상에서도 스스로를 증명하고 작품 속 대사처럼 ‘미래를 위한 선례’로 남았다.

 

지금은 중고등학교에서 배울 만큼 일상적인 지식들이 실은 얼마나 치열한 노력과 지난한 시간을 통해 이룩된 것인지 작품을 보며 떠올렸다. 그리고 그건 작품에 언급됐던 여성 참정권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지금 온 국민이 마주하고 있는 대통령의 폭정과 민주주의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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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인 헨리에타 레빗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추민하 선생 역으로 유명한 안은진 배우가 맡았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다 7년 만에 연극으로 돌아오는 안은진 배우는 한층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동생인 마거릿 레빗은 홍서영 배우가 맡았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아마데우스’, ‘광화문 연가’ 등 다양한 작품을 이어오고 있는 배우다.


윌러미나 플레밍 역에는 다수의 연극은 물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주목받았던 박지아 배우가, 애니 캐넌 역에는 ‘활화산’, ‘당신에게 닿는 길’, ‘보존과학자’ 등 연극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는 조승연 배우가, 하버드 대학 천문대장의 제자 피터 쇼 역에는 ‘햄릿’, ‘와이프’, 등의 연극과 ‘LTNS’, ‘뫼비우스:검은태양’ 등의 드라마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정환이 캐스팅 됐다.


번역에 신혜빈, 무대에 김종석, 조명에 최보윤, 의상에 유미양, 영상에 이수경, 분장에 김소희, 소품에 김혜지, 음악에 박현민, 음향에 신동원, 조연출에 한아정 등의 제작진도 각각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며 충실한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배우의 연기나 대사, 연출은 물론 무대 위의 존재하는 어떤 요소도 부족하거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없었다. 인터미션 없이 120분을 꽉 채운 공연이었음에도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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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공연을 함께 보는 장소다. 조그만 방에서도 언제든 혼자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지만 불특정 다수와 함께 공연을 보는 경험이 주는 만족감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뒷자리의 웃음소리가 작품의 재미를 더해주고 쓸쓸한 장면이 나와도 외롭지 않은 그런 경험 말이다. 명동 한복판에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 있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꾸준히 선보여줄 공연들도 기대가 된다.

 

연말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수놓아줄 여성 천문학자들의 이야기 ‘사일런트 스카이’는 올해 말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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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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