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슴 속 ‘불씨’를 일깨우는 뮤지컬 '곤 투모로우' [공연]

‘조선이 조선으로 완전한 나라’를 꿈꾸며
글 입력 2024.12.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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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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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의 갑신정변, 김옥균, 그리고 삼일천하. 한국에서 역사 교육을 받았다면 누구나 익히 들어봤을 내용이다. 그러나 갑신정변 이후에 김옥균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떠한 최후를 맞이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는 혁명가로, 또 다른 이는 역적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갑신정변 및 이후 김옥균의 일본 망명 10년 동안의 삶 등 역사적 사건에 허구적 요소를 더해 만든 팩션 뮤지컬이다. 이 글에서는 갑신정변으로부터 140년이 지났고, 을사년을 앞둔 2024년이라는 시점에 <곤 투모로우>가 가진 의미와 매력 포인트를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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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투모로우>의 모든 전개가 역사의 고증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갑신정변과 작품 속 몇몇 등장인물은 실제 기록 속에 남아있지만, 이후의 내용은 대부분 재구성되어 무대에 펼쳐진다. “역사를 고증하는 건 다큐멘터리의 몫이고, 뮤지컬은 제3의 창작을 만드는 장르”라고 말했던 이지나 연출의 말처럼 이 극은 역사를 생생하게 다루기도, 역사에서 빗겨난 허구의 이야기와 인물을 더하기도 하면서 <곤 투모로우>만의 새로운 주제를 구현해낸다.

 

 

 

갑신정변, 46시간 동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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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투모로우>에서 극의 초반부 장면인 갑신정변은 급박하게 진행되며 넘어가는데, 이 부분의 대사와 연출에서도 역사적인 고증이 드러난다. 실제 김옥균과 개화당 동지들은 하늘을 뜻하는 ‘천(天)’을 정변 때 사용할 암호로 정했다. 밤에 진행되는 정변동안 어둠 속에서 동지를 확인하기 위한 암호였다. <곤 투모로우>에서 사용되는 이와 비슷한 암호는 김옥균의 대사에서 언급된다.

 

 

“암호는 ‘그대는 천을 아는가’에 만월로 응답한다.”

 


극에서는 ‘만월’이라는 암호가 추가됐다. <곤 투모로우>에서 ‘달빛’을 은유적 표현으로 자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김옥균이 어릴 적 달을 보며 지었다는 시와도 묘한 관계가 생긴다.

 

 

‘달은 비록 작으나 온 천하를 비춘다(月雖小照天下)’

 

 

실제 갑신정변의 기록과 유사한 점이 존재하는데, 갑신정변 중 고종이 개화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람을 죽이지 말라”라고 연거푸 외치는 모습은 ‘고종실록’에 기록된 내용과 일치한다.

 

 

임금께서 연거푸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마라”라는 전교를 내렸으나 명을 듣지 않았다. 이때 임금의 좌우에는 김옥균의 무리 십수 인이 있을 뿐이어서 임금이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어공도 제때 하지 못했다.

 

- 『고종실록』 고종 21년 10월 18일

 


이외에 실제 김옥균이 쓴 ‘갑신일록’에 기록된 개혁 내각 면면이 대사를 통해 언급되는 등 <곤 투모로우>가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갑신정변 장면을 치밀하게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영의정 이재원

좌의정 홍영식

전후영사 겸 좌초장 박영효

좌우영사겸 대리외무독판 우포장 서광범

(중략)

 

- 김옥균, 『갑신일록』 중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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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일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곧 위선이며

오로지 총과 칼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임을 인정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 ‘돌아올 수 없는 길’ 中

 

 

<곤 투모로우>는 ‘조선이 조선으로 완전한 나라’를 꿈꾸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담은 뮤지컬이다. 따라서 김옥균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닌, ‘조선’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건 사람들을 다룬다. 그중 극 중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이 바로 ‘헤이그 특사’이다. 실제 <곤 투모로우>에서는 이준 이상설이 등장하고, 극에 등장하지 않는 이위종 열사의 말은 위에 적힌 ‘한정훈’ 캐릭터의 대사에 녹아있다.

 

 

스테드: 여기서 뭘 하십니까? 왜 이 평화 회의에 파문을 던지려 하십니까?

 

이위종: 저는 아주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법과 정의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각국 대표단들은 무엇을 하는 겁니까.

 

스테드: 그들은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위종: 조약이라구요? 그렇다면 소위 1905년 조약(을사조약)은 조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황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체결된 하나의 협약일 뿐입니다. 한국의 이 조약은 무효입니다.

 

스테드: 하지만 일본은 힘이 있다는 걸 잊으셨군요.

 

이위종: 그렇다면 당신들의 정의는 겉치레에 불과할 뿐이며 기독교 신앙은 위선일 뿐입니다. 왜 한국이 희생되어야 합니까? 일본이 힘이 있기 때문인가요? 이곳에서 정의와 법과 권리에 대해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차라리 솔직하게 총, 칼이 당신들의 유일한 법전이며 강한 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겁니까?

 

- 1907년 7월 5일 <만국평화회의보>를 발행하던 영국 출신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와 이위종의 인터뷰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던 특사들의 외침은 단지 ‘파문’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곤 투모로우>에서 이준, 이상설이 만국평화회의장 앞에서 외치는 호소문은 마이크가 꺼져있어 관객에게 들리지 않는다. 목이 터져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노력했지만, 실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헤이그 특사들의 투쟁 상황을 은유적으로 반영하는 연출이다.

 

 


역사와 허구 사이, <곤 투모로우> 속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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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곤 투모로우>는 ‘김옥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가 가졌던 사상과 신념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급히 피신하고, 일본 여러 곳을 떠돌며 10년의 망명 생활을 보내면서 자신의 정변이 미흡했던 점을 점차 깨닫는다. 그런 자신의 뜻과 깨달음을 한정훈에게 전하고, 이는 정훈의 ‘불씨’를 일깨운다. 역사적으로는 혁명가와 반역자의 경계에 놓인 인물이지만, 극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인물을 조명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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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우가 아닌, 한정훈

 

<곤 투모로우>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이 바로 ‘한정훈’이라는 캐릭터이다. 실제 역사에서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가 아닌, 홍종우의 이름으로 김옥균에게 접근하는 암살자 ‘한정훈’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설정이 변경되며 현실과는 사뭇 다른 전개를 담아냈다.


캐릭터의 변화는 <곤 투모로우>라는 극이 가지는 의미를 더욱 확장시켰다. 홍종우가 아닌 ‘한정훈’이 되면서, 역사에 다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개혁운동가, 독립운동가를 암시하는 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한정훈은 가상 인물이기 때문에 평범한 민중부터 독립 운동가까지 ‘조선인’이라면 가졌을 조국을 위하는 간절한 마음, ‘불씨’를 대표하는 인물이 될 수 있다.

 

작품 속 정훈은 방황하고, 고민하지만 결국 “작고 힘 없는 나라의 목소리는 무시당할지라도 해야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갑신정변이 간과한, 민중의 중요성과 그 불씨가 <곤 투모로우>를 통해 관객에게 전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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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엔지로

 

<곤 투모로우>를 통해 새롭게 조명된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와다’이다. 와다는 김옥균이 오가사와라로 추방되어 지낼동안 처음 만난 일본인 소년으로, 김옥균이 암살 당하기 직전까지 그를 보좌하며 마지막 길을 함께한 사람이기도하다. 실존 인물인 와다 엔지로는 김옥균을 진심으로 따르고 존경했다고 한다. 한국인을 진심으로 섬기고 존경하는 일본인 ‘와다’는 한국인이지만 친일을 하고 조선을 위험에 빠뜨리는 ‘이완’과 대조점을 보여준다.

 

 


가슴 속 ‘불씨’를 끌어내는 <곤 투모로우>가 가진 매력


 

<곤 투모로우>는 다소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뮤지컬이다. 우리 역사에 어둠과 같은 시기를 다룸에도, 시대를 뛰어넘어 이 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곤 투모로우>는 어떻게 관객들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을까? 이 극의 매력 포인트를 함께 탐구해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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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간의 관계성

 

<곤 투모로우>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성이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주요 인물들의 관계는 스토리가 진행될 수록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김옥균을 암살하려고 찾아왔으나 점차 그의 사상에 감화되는 한정훈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극의 재미 요소 중 하나이다.

 

한정훈이 믿을만한 자인지 시험하기 위해 김옥균과 한정훈이 바둑을 두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고, 암살 직전 뱃머리에서 김옥균이 한정훈에게 춤을 배우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진다. 둘의 심리를 추측하며 스토리를 따라갈수록 극에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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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까지 이어지는 극의 메시지

 

 

'"그 곳엔 꽃들이 필까

그 곳엔 새들이 날까

푸르른 하늘과 넘쳐나는 햇살

잠들면 그 곳에 갈 수가 있나"

 

- 해뜨는 나라& 조선의 붕괴 中

 

 

<곤 투모로우>가 다루는 시간대는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10년 한일합병까지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주는 여운과 의미가 작품 속 가사에 잘 드러난다.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가 지내던 정훈이 조선을 떠올리며 부르는 ‘해뜨는 나라’의 가사는 이후 한정훈의 마지막 거사 장면인 ‘조선의 붕괴’에서 다시 등장한다. 김옥균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이 조선으로 완전한 나라, 사람이 사람으로 당당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정훈은 그런 세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소 어둡고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볼 수 있는 <곤 투모로우>의 이야기는 ‘내일은 없다’라는 뜻을 가진 제목에서도 암시된다. 그러나 <곤 투모로우>는 마지막 넘버인 ‘저 바다에 날’에서 죽은 김옥균이 가졌던 희망과 의지를 다시 관객들에게 상기시킨다. 마지막 넘버를 통해 관객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조선이 조선으로 완전한 나라”를 외치던 <곤 투모로우> 속 인물들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주었기에 이 시대를 살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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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투모로우>는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의 여지도 존재하지만, 허구적인 역사를 다뤘기에 가지는 의의가 존재한다. 의도적으로 역사를 빗겨가고, ‘한정훈’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하는 걸 알아도 목숨을 기꺼이 바쳤을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곤 투모로우>는 정훈의 마음에 ‘불씨’가 피어, 그 불씨가 ‘불꽃’이 된 것처럼 ‘현실의 문제에 함께 일어서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럴지라도 해야합니다. 먼 훗날 혹자는 우리에게 우매하다 정세를 알지 못한다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어떤 행동으로 옮겼는지 그 흔적을 남겨 우리의 내일을 오늘로 살아갈 자들에게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도록.”

 

- 한정훈 대사 中

 

 

[소인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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